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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 곁의 철학아름다움을 느끼기 좋은 날은?
허유선 『인생에 한 번은 나를 위해 철학할 것』 저자 2023년 05월호

서울 마포의 한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 ‘오늘은 웃기 좋은 날’이라는 스티커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웃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좋은 날은 언제일까?’ 와르르 쏟아지듯 피던 봄꽃이 지나간 자리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기 좋은 날을 생각해 본다.

사실 ‘아름답다’는 말은 우리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요즈음에는 ‘아름답다’라는 말보다 ‘힙(hip)하다’, ‘핫(hot)하다’라는 말이 더 찬사처럼 들린다. 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힙하거나 핫한 것이 꼭 아름답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은 고대철학과 근대철학에서 특별한 개념으로 간주했지만, 어째서 특별한지에 대해서는 둘의 관점이 사뭇 다르다.

최근에 뭔가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을 떠올려보자. 바로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답다는 말을 각자 다른 순간에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을 쓸 정도의 대상은 귀엽고 예쁜 것을 넘어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내가 최근 느낀 아름다움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특별히 아름답다고 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아름답다는 말은 어쩐지 거창하고 훌륭하다는 느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고대 철학자들과 유사한 관점으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철학자들은 ‘아름답다!’라는 느낌은 아무 때나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이는 누구나 감탄할 만한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대상을 만났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찬란한 빛 같은 것이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언제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그림 또는 꽃이 아름답다면 그것들에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는 느낌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가 마주하는 ‘대상’에 달린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객관주의 미학’이라고 한다. 이때 아름다움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대상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이 감탄하는 영화나 음악이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자아내지 않을 때도 있다. 섀프츠베리, 흄과 같은 근대 미학자는 ‘개인의 마음’에 좀 더 집중한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다를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해도 매번 다르게 느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퇴근길 버스 너머로 보이는 해 질 녘 하늘이 어느 순간에는 깊은 감흥을 주지만, 어느 순간에는 수많은 타인의 모습과 섞인 흔한 배경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느낄지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상태’,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 아닌가? 이런 관점이 ‘주관주의 미학’의 바탕이 된다.

칸트는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일 때 아름다움을 느끼는지 탐구했다. 칸트가 밝혀낸 아름다움의 비밀은 마음의 자유와 반성이었다. 이때 반성은 잘못을 살피고 뉘우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다. 나의 마음이 다른 의도나 관심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울 때,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음미할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딱히 얻은 것이 없고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만족스러워서 특별하게 기쁜 마음 상태가 아름다움이다. 이때 아름다움은 내 마음 밖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스스로 자유로워진 순간을 맛보는 것이다.

나에게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것일까, 자신의 마음 안에서 맛보는 것일까? 당신의 관점이 어느 쪽이든 오늘이 당신에게 ‘아름다움 느끼기 좋은 날’이 되기를 바란다.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내 마음의 자유를 음미하는 시간을 허락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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