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누나·백호 『이웃집의 백호』
나에게는 몇 명의 랜선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다. 반려견과 반려묘의 사진들 그리고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부지런히 SNS에 올려주는, 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너무나 고마운 분들 덕에 알게 된 아이들이다. 가장 오래 지켜봐 온 내 마음속 첫째는 알고 지낸 지 거의 8년째가 돼가고, 다른 아이들도 2~5년 정도 됐다. 같은 아이들을 같은 마음으로 지켜보는 두 명의 친구와는 마치 각자 자기네 가족 이야기하듯 카톡으로(“너 대박이 병원 다녀온 거 알아?”, “너 생강이랑 순순이 만난 거 봤어?”) 아이들 안부를 종종 나누기도 한다. 가끔 잠들기 직전까지 아이들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을 넘겨 보며 부디 아픈 데 없기를, 부디 매일이 신나기를 속으로 기도한다.
주변에서 만나거나 마주치는 동물들을 넘어서 이렇게 만나본 적도 없는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동물권 자체에도 예전보다 훨씬 더 관심을 갖게 돼 관련한 일이 있으면 기부나 서명으로라도 동참하려고 노력하게 된 건 앞에서 잠깐 언급한 내 마음속 첫째, 백호에서부터 시작됐다. 2014년 여름 무렵 견생 2개월 차 아기 웰시 코기 백호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어쩐지 그 이후로 자꾸 생각이 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요 녀석이 잘 크고 있는지 참을 수 없이 궁금해져서 찾아가 보게 됐고, 조금씩 자라는 백호를 보는 게 너무 즐거워서 매일같이 찾아가게 됐다. 그렇게 하루하루 백호에게 깊이 정이 들고, 위트 넘치는 사진과 글을 올리는 백호누나에게도 정들고, 어느새 내 삶 어딘가에 백호가 당연한 듯 들어와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백호누나가 백호와 함께 산책하는 행사 ‘산책회’를 열었을 때 350명이 몰렸을 정도로 백호의 인기는 대단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백호는 한 번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개니까. 백호누나는 백호의 높은 ‘견지도’를 알뜰히 사용해 ‘백호 굿즈’들을 만들어 백호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거기서 생기는 상당한 수익금을 몇 년간 꾸준히 유기동물센터에 기부했다. 유기된 동물을 구조하고 보호자를 찾는 일에도 늘 앞장섰다.
5월 6일, 투병 중이던 백호가 떠났다. 그 소식을 본 수많은 사람이 분명 나처럼 주저앉아 펑펑 울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슬픔이 떠나질 않아 백호누나가 백호와 함께 쓴 책 『이웃집의 백호』를 꺼냈다. 나만의 조용한 애도로 읽고 넘어가려던 책을 여기에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소중해서다. 하나의 새로운 존재가 주변 인간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가는지, 어떤 대상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사랑이 세상에 어떤 선한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이 책만큼 소박하면서도 진실하게 가르쳐주는 책은 잘 없다.
아주 나중에 백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많은 분들께서 아주 이따금씩 백호를 추억해주실 때, ‘백호가 좋은 일 참 많이 했어’ 하고 한 번씩 더 기억해주실 수 있기를 바란다. 백호가 매일매일 행복하도록, 또 계속해서 백호의 이름으로 선한 영향력을 나누며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p.217
백호누나는 백호가 수많은 사람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눈부신 백호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눈 속에 담으며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어떤 부분들은 백호 덕분에 행복하게 자랐다는 것을. 백호가 나를 키웠다. 백호가 동물들에게, 타인에게, 세상에 좀 더 다정해진 인간들을 키워내고 갔다. 정말 고마워 백호야, 나의 첫 랜선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