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상이 되면 건강 검진 결과를 들을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바로 ‘암’ 같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내 삶에 등장할까 봐서다. 암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만병의 황제’라는 무시무시한 별명까지 붙었을까. 하지만 ‘불치병’ 암의 정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최근 들어 항암 치료제의 개발에 가속도가 붙은 것도 그 영향 때문이다.
요즘 주목받는 항암 치료제의 결정적인 특징은 우리 몸 면역 반응과의 협업이다. 정말 최신의 의과학 이슈니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리 몸속 세포는 여러분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시점에도 끊임없이 분열하면서 헌것을 새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렇게 세포 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돌연변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돌연변이가 심각한 암으로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몸의 면역계 때문이다. 면역계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서 뭔가 수상한 돌연변이 세포를 귀신같이 찾아 제거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면역계가 맹활약하는데도 암이 발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노화’ 탓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의 세포가 분열할 때 생기는 돌연변이 숫자는 많아진다. 반면 그 돌연변이를 찾아내서 제거하는 면역계의 효율은 떨어진다. 범죄자는 늘어나는데 경찰의 숫자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 틈에 초기에 제거되지 못하고 몸속 어딘가에 자리 잡는 돌연변이 세포가 증식을 시작한다. 그것이 암이다.
암세포는 원래는 내 것이었지만, 여러 이유로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이 된 골칫거리다. 당연히 암세포를 조사해 보면 정상 세포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이 대목에서 다수의 과학자가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암세포는 면역계를 어떻게 속이는 것일까? 일본의 혼조 다스쿠 같은 과학자가 그 질문의 답을 찾아서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비유하자면 암세포는 면역 세포를 기만하며 손짓한다(PD-L1, PD-L2 단백질). 이 유혹에 면역 세포가 홀딱 넘어가서 손(PD-1 단백질)을 내밀고 악수하면(결합하면) 암세포는 장애물 없이 승승장구한다. 혼조 등의 과학자는 이 발견에 뒤이어 ‘면역 세포가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못하게 하면(암세포와 면역 세포가 손을 잡지 못하게 하면), 우리 몸의 면역계가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 아이디어가 현실이 된 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면역 항암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가진 최악의 피부암을 낫게 해서(2015년) 화제가 된 ‘키트루다’가 이 원리로 만들어진 약이다. 당연히 우리 몸의 면역계가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 면역 항암제는 피부암 같은 한 가지 암세포뿐만 아니라 다양한 암세포를 제거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의 암 정복은 시간문제일까? 아직 낙관하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나온 면역 항암제가 암 치료에 인상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환자에 따라서 면역 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천차만별이라는 것. 사람마다 면역계의 특징과 효율이 제각각일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면역 항암제는 그 환자의 면역계와 협업하니까!
바로 이 대목에서 요즘 뉴스에 나오는 ‘암 백신’이 등장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어떤 독자는 머리가 아플 테고, 지면도 이미 넘쳤으니 암 백신 이야기는 다음 달에 계속하자. 한 가지만 귀띔하자면, 암 백신은 이름처럼 암을 예방하는 약은 아니다. 하지만 면역 항암제와 함께 쓰면 암 치료 방법을 혁신할 잠재력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