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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브라질은 왜 미국에 까칠할까?
배상범 KOTRA 브라질 상파울루무역관장 2023년 07월호

브라질 사람은 친절하다. 친절을 베푸는 데 신중하거나 수줍어하지 않고 간혹 과다할 만큼 적극적이다. 축구 최강국으로 명성이 높지만, 개인적으로 브라질에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현지인의 친절이라 생각한다.

브라질이란 나라 자체도 적대감이나 호전성과 거리가 멀다. 미국 본토보다 땅이 넓은 브라질은 10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14개국과 이웃한 중국 및 러시아의 이웃 나라와의 관계 그리고 국경분쟁 사례를 감안하면, 브라질은 세상 순한 나라다. 인구, 영토, 경제 규모가 남미에서 압도적임에도 브라질이 ‘힘의 외교’를 과시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미국과 이웃한 캐나다, 멕시코마저 부러워할 정도다.

특히 올 1월 룰라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브라질은 우호적 외교 범위를 더 넓혀 가고 있다. 중남미 주요국은 물론 베네수엘라 같은 ‘소외국’까지 앞장서 끌어안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분쟁 사이에서도 중재자를 자처한다. 이런 브라질이 최근 ‘까칠하게’ 구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탈달러화 구심점으로 주목받는 브라질

브라질은 룰라 대통령 재집권 이후 대미 관계의 첫 번째 사건부터 세계와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주브라질 미국 대사를 통해 미국이 공식적으로 반대했음에도 룰라 정부는 이란 군함의 브라질 기항을 허가했다. 취임 한 달 만에 미국을 방문한 룰라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였다. 과거 미국·이란 간 핵 협상 중재 이력이 있는 룰라가 앞으로도 과감히 ‘브라질식’ 비동맹 외교와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두 번째 대립은 훨씬 심각했다. 룰라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미국 ‘책임론’을 직접 거론했다. 미국과 유럽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중립자·중재자의 선을 넘은 듯한 개입에 미국과 서방은 즉각 반박했고 룰라는 중립 지대로 물러섰다.

세 번째 포문은 달러화 패권이다. 지난 4월 중국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브라질과 중국은 양국 간 무역거래 시 중국 위안화와 브라질 헤알화 결제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5월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남미 정상회의에서는 남미 공동화폐 도입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 전통적 비동맹 중립 외교를 넘어 탈달러화의 구심점으로 브라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에 대한 브라질의 이런 태도는 과거 미국이 중남미에서 먼로주의를 실현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열강의 미주 대륙 진출·개입을 배척하는 먼로주의는 미국 국력 신장과 함께 일방적 선언에서 실효적 외교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미주 지역에서 한 세기 이상 유일한 패권국으로 남았다. 공짜는 없다. 먼로주의 기반 외교·안보 정책으로 미국은 중남미에서 배타적 지위와 함께 ‘배타적 책임’도 안게 됐다.

중남미 지역의 ‘반미’, ‘반패권주의’ 성향은 유럽, 아시아보다 강한 편이다. 유라시아 국가들이 겪은 구소련·러시아·중국의 군사적·외교적 압력을 중남미 국가들은 거의 경험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적·군사적·안보적 지원과 결속은 냉전의 최전선인 유라시아 국가에 집중됐다. 상대적으로 지원보다 미국식 개입에 익숙한 먼로주의는 중남미에서 미국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강압적이란 인식을 남겼다.

브라질과 브라질 사람 모두 거만함과 거리가 멀다. 다만 외교 무대에선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구석이 있다. 특권 의식이 아니라, 중남미를 대표해 ‘외부 패권 세력에 대항하고 중남미 국가 간 결속을 선도해야 한다’는, 좋게 보면 ‘책임감’에 가깝다. 경제 규모와 인구, 영토, 자원 모두 브라질에 근접한 수준을 갖춘 이웃 나라가 없고 멕시코마저 미국 의존도가 더 커지는 형편이니 그럴 만하다. 한때 세계 5위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경제력은 브라질 27개 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상파울루 1개 주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인접국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의 경제 규모를 합해도 농업 중심의 파라나 1개 주에도 미치지 못한다.



브라질이 국력에서 확연한 우위를 갖추고 있음에도 주변국과의 화합·결속, 비동맹 중립 외교를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라질은 의미 있는 경제 규모와 인구, 영토를 가진 나라 중 미국 다음으로 자급자족에 가까운 경제 운영이 가능한 나라다. 불안정한 국경선이나 에너지·자원·식량 공급망, 안보 불안 요소도 거의 없다. 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영국 등 전통적 강대국도 갖지 못한 강점이다. 대외적으로 브라질의 잠재적 불안 요인은 지역 내 국가 간 관계보다 외부 패권국가의 개입이다. 불간섭·비동맹 외교정책은 이를 배제하거나 견제하는 데 유용하게 작용한다.

외부 세력의 진출과 개입을 배제하려는 목적 측면에서 브라질의 불간섭·비동맹 원칙은 먼로주의와 닮았다. ‘브라질식 먼로주의’는 미국과 달리 중남미 국가 간 결속과 통합으로 공동 대응하려는 형태다. 남미 공동시장 메르코수르를 통한 단일 경제권, 남미국가연합 같은 국가공동체 부흥을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의 탈달러화 정책도 위안화·루블화 대체 결제 확대보다 지역 공동화폐 도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브라질식 먼로주의’로 중남미 국가 결속해
미국에 공동 대응


브라질식 먼로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라질의 지형적 특성과 경제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브라질의 광활한 국토, 2억이 넘는 인구, 풍부한 원자재·에너지·식량 자원은 외형적으로 미국과 견줄 만하다. 외형만 그렇고 실상은 강점보다 약점에 훨씬 더 노출돼 있다. 개발 비용이 적게 드는, 자연적으로 쓸모 있는 땅은 제한적이고 주요 지역은 가파른 경사지나 절벽으로 단절돼 있다. 열악한 지형과 물류 인프라는 비용을 엄청나게 상승시킨다. 세계 최대 미개발 농경지는 개간 이후 일반 경작지보다 훨씬 많은 비료와 농약을 투입해야 한다. 2억 명이 넘는 내수시장에도 자본축적과 확대 재생산이 어려운 경제구조다. 식민지 시대 이후 극소수 부유층이 생산수단을 과점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브라질이 악조건을 극복하고 경제적 도약의 기회를 잡은 건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결합 덕분이다. 중국의 자유무역 편입과 경제 성장은 세계적 원자재 수요 붐을 일으켰고 브라질은 수혜자가 됐다.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대두와 철광석이 대표적 예다. 기존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세계적 수요가 없었다면 브라질 대두와 철광석은 미국산 및 호주산과 경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브라질의 기회는 수출시장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신규 외국자본 투자가 증가하고 확대 재생산이 가능한 선순환이 시작됐다. 이 시기가 브릭스(BRICS) 시대, 룰라 집권 1, 2기(2003~2010년)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공급망이 분절되고 자유무역은 불안정해진 시기, 룰라 집권 3기가 시작됐다. 중국은 미국과 공급망 단절이 본격화되자 브라질로부터 곡물, 자원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자본의 브라질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이고 미국은 브라질의 최대 직접 투자국이다. 중국이 위축되면 브라질은 수출 경쟁력을 상실하고 미국 투자자본도 이탈한다.

브라질의 대미 외교는 앞으로도 ‘미국과 적당한 거리 두기’가 될 것 같다. 중국이 위축될수록 ‘적당한 거리’는 더 멀어지고 반대의 경우 좁혀질 수 있다. 브라질을 통해 미중 분쟁 전세를 읽는 것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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