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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도 미식마침내, 백반 미식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2023년 07월호


밥과 국이 있고 메인이라 할 만한 요리에 김치 외 여러 반찬이 나오는 형태를 백반이라고 부른다. ‘가정식’ 백반이라고도 부르는데 냉장고에서 설설 꺼내 찬을 차리고 국 하나 끓이고 요리 하나 볶아 내는 일반적인 가정식을 모방했기 때문이다. 매식(買食)의 가장 만만한 기본 형태인데, 역설적으로 흡족한 한 끼 백반을 만나기가 가장 어렵기도 하다. 

허름한 가격에 비해 노동집약적이기도 하다. 새로운 매식 형태의 식당들이 일품요리에 공장 김치나 쥐똥고추 장아찌, 단무지 반찬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한다. 백반에 낼 콩나물무침 하나를 하려 해도 다듬는 데서부터 일이 한가득하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온 곳이 아니고서는 찬 하나하나 차려내는 백반집을 찾기가 어렵게 됐다.

“전주는 김밥천국도 맛있다.” 한 10여 년 전엔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정말로 그랬다. 전주는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엘 가서 라볶이만 시켜도 찬이 네댓 개는 더 깔렸다. 하물며 백반집은 7찬, 8찬이 기본이고 한정식 이름이 붙은 곳을 가면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낸 이모저모를 받아들게 된다. 

내가 운영하는 계절미식에서 판매할 다품종 과일과 식재료를 찾느라 전국 곳곳을 다니고 있다. 숙박을 하게 되는 일이 많은데 가급적 신도시 동네는 슬슬 피해 다닌다. 오래된 백반집이 남아 있는 구도심으로만 다니게 된다. 먹이환경이 한결 나으니까. 

얼마 전 출장 간 곳이 전주의 농촌진흥청이라 기대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김밥천국도 맛있는 전주에서 백반 한 끼라니! 굳이 전주 시내에다 숙소를 골랐다. 전주에서 백반 하면, 내 생각엔 제육볶음이다. 목표는 제육볶음과 찌개에 7찬 이상이 나오는 백반집. 그러면서 혼밥도 가능해야 한다는, 어느 지역을 가나 고난도 과제에 해당하는 목표다. 

새로운 곳엘 가보고 싶어 SNS 집단지성의 추천을 받았다. 믿을 만한 사람이 알려준 곳이 아중리에 있는 백반집이었다. 이런 골목에 식당이 있나 싶은, 상업시설도 없는 그야말로 주택가. 블로그나 SNS, 유튜브에서 유명한 곳도 아니다. 어떻게 봐도 그 동네 사는 이들이 이른 저녁부터 왁자지껄한 모임을 하고 있었다. 

밥, 찌개, 반찬만 나오는 백반에 메인요리로 제육볶음이 보태진 메뉴를 주문했다. 가격은 카드 결제로 1만1천 원. 별 바쁜 주방도 아니었는데 한참을 기다리게 되자 나는 기대감이 또 한번 치솟았다. 시간이 들수록 더 손이 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이니 이건 기대해도 좋다는 신호다. 

아니나 다를까, 갓 볶아 양파가 아삭하게 살아 있는 제육볶음이 나오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미리 해둔 것과 바로 한 것은 스타일도 완성도도 차원이 다르다. 돼지 부위도 돈피를 제거하지 않은 오겹살을 써서 도톰한 지방에 촉촉한 살코기가 어우러졌다. 양념도 음전해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찌개는 무와 애호박, 두부가 들어간 된장찌개. 미리 끓여 둔 것을 작은 뚝배기에 자박하게 새로 끓여 내왔다. 찬도 기대한 대로다. 제철인 마늘종 무침, 새콤하게 입맛을 돋우는 우뭇가사리 무침, 고추를 듬뿍 넣은 멸치볶음, 브로콜리 데침과 초장, 무채를 버무렸을 뿐인데 손이 자꾸 가는 무생채 그리고 며칠 전 직접 담근 티가 물씬 나는 겉절이김치. 흡족하다. 

이런 백반을 앞에 두면 배가 불룩하게 차오를수록 가슴 한구석에서 원통함도 분노도 아닌 무엇인가가 나긋하게 치민다. 이런 백반을 조우하기란 ‘마침내’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됐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가정의 백반을 모방한 가정식 백반을 찾아 가정 밖으로 떠돌게 됐을까. 더 이상 가정의 백반을 가질 수 없어서, 그리고 가지길 포기해서이기에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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