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신비복숭아는 광풍이었다. 속은 백도의 맛이 나고, 껍질은 털이 없는 천도복숭아다. 외국 품종인데 누군지 작명을 기막히게 잘했다. 먹기 간편하면서 반전 속살을 지닌 복숭아 등으로 알려지며 6월 복숭아 시즌의 시작을 여는 요란한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나 역시 복숭아를 무척 좋아한다. 여름마다 복숭아 먹는 낙으로 더위를 견딘다. 다채롭고 깊은 그 예쁜 향을 견딜 수 없다. 게다가 복숭아는 질리지도 않는다. 이유는 다양하기 때문이다.
복숭아는 털복숭아(peach)와 천도(승도)복숭아(nectarine)로 크게 나뉜다. 털복숭아는 다시 백도와 황도로 나뉘고 ‘딱복’과 ‘물복’으로도 나뉜다. 분류도, 품종도 다양하다. 대개 노지에서 재배하는 복숭아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기간이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로 짧기 때문이다. 수확한 복숭아는 노화를 촉진하는 에틸렌 가스를 스스로 내뿜어 사과나 배처럼 저장해 두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니 복숭아 과수원들은 한 가지 품종을 많이 심어 한꺼번에 수확하는 것보다는 여러 품종을 심어 분산된 기간에 분산된 양을 출하하는 쪽을 택한다. 아무리 작은 농장이라도 대여섯 가지 품종은 기본으로 재배한다. 그 덕분에 시장에는 복숭아 품종이 그 어떤 과일보다도 다양하게 넘쳐난다. 품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향, 맛, 질감, 수분도 등 다양한 요소의 조합으로 무한대의 서로 다른 개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매해 여름 이 품종 저 품종 옮겨 타며 복숭아를 즐긴다. 6월 하우스 복숭아로 시작해 9월 만생종까지 복숭아를 제대로 먹자면 수십 가지 품종을 섭렵할 수 있다. 향기 좋은 황도 ‘치요마루’는 빨리 수확하는 것 중 가장 맛있는 복숭아다. 쫀득한 백도 ‘유명’, 딱딱이 백도 ‘경봉’, 향 진한 백도 ‘그레이트’, 향수 그 자체인 ‘강황도’ 등이 유명 품종 중 챙길 만한 품종이다.
본격적으로 맛있는 복숭아는 8월부터 시작된다. 과일이든 곡식이든 무엇이든 만생종으로 갈수록 맛있어지니까. 나무에 오래 매달려 시기를 기다린다는 낭만은 덤이다. 8월부터 나오는 품종 중 향이 좋고 달콤한 백도 ‘선미’, 가을 신비복숭아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속이 흰 천도 ‘설홍’ 같은 국내 육성 품종은 꼭 한번 먹어볼 만하다.
요사이 열풍인 납작복숭아도 복숭아 먹는 재미를 더한다. 일반 복숭아와 달리 도넛처럼 납작하게 눌린 모양을 한 복숭아다. 속의 씨가 상대적으로 작아 먹기도 한결 편하다. 일반 복숭아처럼 털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백도와 황도로 품종도 다양하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거반도’라고 하는 중국계 털 있는 백도가 유일했는데, 최근엔 ‘황유반도’ 등 품종이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런 납작복숭아를 포함해 몇 가지 인기 품종이 고정되면서 ‘복케팅’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나처럼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정 품종을 사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주문이 열리면 몇 초 만에 동이 나 여느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 못지않다.
비가 많은 올 7월은 복숭아에 엄혹했다. 어느 작물이나 그렇지만 복숭아는 수확 직전 일조량이 무척 중요하다. 색도, 맛도, 향도 잘 익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올해는 흐리고 온통 비다. 수확기에 비가 오는 것도 최악이다. 맛이 차올랐다 해도 죄다 비에 희석된다. 이제까지 올해 복숭아는 예년만 못했다. 가락시장 새벽 경매에 참관해 복숭아들을 시식해 봐도 ‘전멸’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다품종 과일가게 ‘계절미식’과 함께 일하는 농장들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나주의 농장은 특히 심각해서 집중호우 기간에 수확기를 맞은 몇몇 품종은 출하까지 포기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1년 농사를 스스로 포기하다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 “하늘이 주는 만큼만 받아야죠”라고 하는 남원의 농장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저희는 이만하면 나은 편이니 다행으로 여깁니다”라는 충주의 농장도 행간에서 피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누구나 속상함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8월의 복숭아가 무사히 맛있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안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