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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평첨단기술 ‘딥리스킹’ 시대의 경제안보 전략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2023년 08월호

지난 5월 말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의 최대 이슈는 대중국 정책이었다. 정상회의에 앞서 미국과 일본은 강도 높은 대책을 시사했지만, 결국 G7 국가들의 최종 입장은 중국과의 거래를 중단(디커플링)하는 것이 아니고 디리스킹(de-risking)하는 것이었다.

사실 디리스킹은 ‘탈위험’ 혹은 ‘위험 줄이기’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EU 주도로 G7이 합의한 대중국 대응방식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첨단기술에 대한 위험 관리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필자는 디리스킹보다는 첨단기술 ‘딥리스킹(deep risking)’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군사안보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의 합의다. 물론 G7 정상회의에서는 세계 상품 생산과 국제무역의 절대강자인 중국이 상품을 무기화하지 못하도록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논의됐다. 하지만 첨단기술 딥리스킹에 비하면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과거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고관세 부과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진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으로 미국 기업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중국이 생산한 값싼 범용 상품을 무리하게 대체하는 것은 비효율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부추길 것이 분명했기에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식 디커플링 정책에 적지 않은 고민을 해왔다.

EU의 사정은 미국보다 더 복잡했다.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은 민주주의, 평화, 인권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데 앞장서 왔지만, 경제적 이해관계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적극 지지하기는 어려웠다. EU의 최대 주주인 독일과 프랑스가 중국과의 비즈니스 거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중국과 러시아가 야기하는 국가안보적 위협에 EU가 대응해야 한다는 압력이 고조됐다.

즉 EU는 중국과 경제교류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에 동참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이에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서방세계의 첨단기술이 중국 등 우려 국가로 유출되는 것은 방지하면서 경제 의존의 무기화 가능성을 줄이는 것을 ‘디리스킹’으로 규정하게 됐다. 그는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에서 디리스킹을 처음으로 언급했고, 얼마 후 중국 전문 연구기관인 독일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MERICS)에서의 강연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또한 지난 3월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의를 갖고 중국의 경제 강압, 경제적 종속의 무기화, 비시장 정책 및 관행 등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했으며, 수출통제와 투자 심사 강화 등을 통해 중국을 포함한 우려 국가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로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공개강연을 통해 대중국 정책을 밝혔다.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첨단기술에 대한 지원 확대와 국내 공급망 구축을 서두르는 한편 중국으로의 첨단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중국과의 첨단기술 격차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EU와 대중국 정책의 접점을 맞춘 후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이고, 전 세계적으로 기술보안은 앞으로 더욱더 강화될 것이다. 세계 기술 선진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우리나라도 첨단기술 관리 체계를 종합 점검해 딥리스킹 시대에 부합하는 경제안보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