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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반드시 들어야 할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김혼비 에세이스트 2023년 08월호
 

얼마 전 정부가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의결한 ‘비전문(E-9) 이주노동자의 숙식비, 사업장 변경 및 주거환경 관련 개선방안’이 발표됐다. 그 의결안에는 이주노동자들이 같은 업종 내에서라면 전국 각지의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기존의 권리를 축소하고, 9월에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부터는 그들이 최초로 근무를 시작한 지역과 정부가 지정한 일정 권역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한 ‘지역 이동 제한’ 조항이 들어 있었다. 사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을 3년간 3회까지만 할 수 있게 제한한 ‘3회 이동 제한’ 조항도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로부터 ‘기본권 침해’라는 강한 비판을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강력한 ‘지역 이동 제한’이 더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왜 정부는 사업장 지역 이동 제한을 의결한 것이며,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은 여기에 반발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든다면 부디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작가 우춘희가 쓴 『깻잎 투쟁기』를 읽어주면 좋겠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아주 기본적인 존중도 전혀 받지 못한 채 참혹하고 위험천만한 주거환경과 노동환경에서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막연하게 알았을 뿐이지, 제도나 법이 이토록 촘촘하게 오직 고용주인 한국인들의 이익‘만’을 보장하고 이주노동자들의 희생, 아주 많은 경우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고 ‘일생’이 좌지우지되는 타살에 가까운 희생을 잔인한 방식으로 견고하게 착취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의 체류기간이 초과된 이주민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부르는 것이 그들을 불법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기에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과(정말이다. ‘불법’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오해란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미등록 이주민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불공정한 법과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 함께 살아가는 중요한 존재로서 미등록 이주민들이 보장받아야 할 제도적 보호와 권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싸워야 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왜 이렇게까지 몰랐을까’ 자책을 넘어 의문이 들 무렵 우춘희를 비롯한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말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삶처럼 눈에 띄지 않게 묻혀 있고 외면받는 사회문제도 잘 없다고. 대부분이 동네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비닐하우스 근처나 논밭 근처에서 거처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고립돼서도 그렇다. 그들에게 한국인들에게 차별당한 경험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사업주 말고는 한국인들을 거의 못 만나기에 차별당한 경험이 없다”라고 답했다는 부분에서 그들이 고립된 정도가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없이는 한나절의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로 그들의 노동이 삶 곳곳에 이렇게나 가까이 스며 있는데. 그러니 부디 이 책을 열고 그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그들이 겪는 불합리에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도록. 오늘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의 결과물인 각종 농산물이 올라온 밥상 앞에 앉았었다면 더더욱.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인력’이 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력 빈칸을 메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보따리 안에는 삶도 있고, 꿈도 있고,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밥상도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