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외직접투자(ODI) 1호 대상은 어느 나라였을까? 놀랍게도 그 국가는 세계 경제규모 1위이자 70년간 동맹 관계를 유지한 미국도, 최근 20여 년간 한국의 수출시장 1위였던 중국도,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국 일본도 아닌 인도네시아다. 당시 정부의 차관을 지원받은 우리 기업 K사는 칼리만탄 지역 개발 및 에너지 확보를 위해 1968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서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한국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에 관한 관심은 뜨거웠다. 한국 조미료 1호로 유명한 종합식품기업 D사는 1973년 인도네시아에 바이오 생산공장을 수출했다.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플랜트 수출이었다. D사는 인도네시아에 법인을 설립하며 인도네시아 시장진출을 본격화했다. 이후에는 신발, 봉제, 악기 등 노동집약적 산업 기업들이 인건비가 덜 드는 생산기지 확보 차원에서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2억7천만 명의 거대 내수시장을 직접 공략하고 아세안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한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우리 기업들은 현지에 법인을 신규 설립하거나 생산기지를 세우거나 현지 회사들과 합작 투자법인을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인도네시아에 적극 진출했다.
자원 부국이자 아세안 핵심 시장으로 전 세계 이목 쏠려…
세계 4위 인구 대국인 데다 1인당 GDP도 빠르게 성장
최근 인도네시아 진출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데다 아세안의 핵심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제조사 H그룹은 국내 배터리 제조사 L사와 인도네시아 현지 배터리셀 공장 설립을 위한 11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2021년 체결했고, 2024년부터 전기차 15만 대분의 전지를 양산할 계획이다. 전지의 핵심 원료인 니켈 세계 1위 보유국 인도네시아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공고히 하고 현지 이차전지시장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다. 글로벌 핸드폰 제조사 S사는 중국 생산공장 철수 이후 집중된 베트남 생산 비중을 축소하고 인도네시아에서의 생산을 기존 대비 50~70%까지 늘리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해외 글로벌 기업들도 인도네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차 제조사 T사의 경우, 인도네시아에 전기차 생산기지 ‘기가팩토리’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최대 종합화학기업 독일 B사도 프랑스 광산업체 E사와 함께 26억 달러를 투자해 인도네시아 현지 니켈 제련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니켈 벨류체인 종합기업 N사는 2021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이차전지용 니켈 습식제련공장을 설립했으며, 한국의 철강기업 P사와 합작해 연간 생산 12만 톤 규모의 니켈 중간재(MHP) 공장을 세우고 2025년부터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인도네시아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인도네시아는 유망한 거대 내수시장을 가진 국가다. 올해 7월 기준 인도네시아 인구는 약 2억7,760만 명으로 인도, 중국, 미국에 이은 세계 4위다. 유엔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인구는 2045년까지 약 20.2% 늘어 3억2천만 명의 초거대 내수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8년 처음으로 2천 달러를 돌파한 이후 2010년 3천 달러, 2019년 4천 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가 올해 5천 달러를 돌파하고, 2027년에는 7천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잠재 소비자가 많은 데다 빠르게 성장하는 1인당 GDP로 구매력 또한 커지면서 인도네시아는 소비재 기업들이 주목하는 차기 수출시장이자, 금융 및 프랜차이즈, 문화콘텐츠 등의 서비스산업 기업들이 앞다퉈 선점하고 싶은 시장이 됐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단일국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를 보유한 국가다.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제조, 가공, 유통 등이 이뤄진 할랄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슬람협력기구(OIC)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는 약 2억2,960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있으며 할랄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약 1,840억 달러에 이른다.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이슬람 경제지표(GIEI)에서 종합 4위를 기록하며 명실상부 샤리아(이슬람 율법) 경제벨트를 이끄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2019~2024년 인도네시아 샤리아 경제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고 할랄 특화 산업단지를 건립하는 등 할랄산업 육성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 기업들에 인도네시아는 할랄 상품과 관련한 좋은 테스트베드이자 약 21억 명 규모의 글로벌 무슬림시장으로 나아가는 창이 될 것이다.
세종시를 롤모델 삼아 행정수도 이전 진행 중으로
연 500억 달러 규모 해외 건설사업 발주
인도네시아는 한국 제1의 건설 프로젝트 수주 지역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기업은 97개국에서 580건의 해외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그 액수가 총 310억 달러에 달한다. 그중 11%인 36억7천만 달러가 인도네시아에서 수주됐다. 인도네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한국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시장 1위에 오른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34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수도 이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총 4단계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내년까지 대통령궁과 주거단지, 전력, 수도, 도로 등 주요 수도 인프라를 건설하고, 2035년까지 중앙행정부와 주요 경제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이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부분은 한국의 세종시가 인도네시아 행정수도 이전의 롤모델이 됐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 이전과 관련한 건설,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IT, 문화 인프라 등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을 좋은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27년까지 매년 수도 이전 프로젝트에서 파생될 연 5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건설을 수주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원팀 코리아’ 수주지원단을 구성했다. 우리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수주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민관협력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천연자원 부국으로 최근 니켈, 보크사이트 등 핵심 광물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세계금속통계국(WBMS)에 따르면,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니켈의 경우 세계 매장량의 약 21%가 인도네시아에 매장돼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2019년 니켈 원광석 수출을 금지했다. 이는 자원산업을 고도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외 기업들이 단순히 싼 값에 니켈을 사 가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내에 니켈 제련에서부터 이차전지·전기완성차 생산에 이르는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고 투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전기차 밸류체인에 속해 있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네시아 자원시장에 투자하면서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 대비 44% 증가한 440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를 맺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한·인니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되는 첫해다. 아세안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방한을 통해 공급망, 경제 안보 등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 기업들은 인도네시아 각 분야에서 많은 결실을 맺었다. 인도네시아와의 향후 50년 더 깊은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보다 많은 우리 기업이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