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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달 1음반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존재
배순탁 음악평론가,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2023년 09월호


영화 <밀수> 열풍이 거세다. 더불어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처럼 <밀수> 음악의 핵심 키워드는 1970년대다. 하긴 그렇다. 1970년대 밀수에 가담한 해녀 집단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결과물인 만큼 음악 역시 당대에 발맞춰야 했을 것이다.

음악은 장기하가 맡았다. 그는 1970년대 한국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기하가 맡은 건 딱 스코어까지다. 영화에 등장하는 ‘연주’ 음악을 창작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 밀수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수많은 1970년대 명곡을 ‘선곡’한 주인공은 장기하가 아니다. 류승완 감독이 직접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장기하가 참여한 곡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바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딱 한 곡에 장기하의 지분이 들어 있다.

사정은 이렇다. <밀수>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라 할 액션 장면에 이 곡을 쓰고 싶었는데 정작 곡 길이가 아주 약간 모자랐다는 거다. 장기하, 류승완 감독과 함께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장기하는 “곡의 길이를 줄이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늘려야 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비밀이다.”라고 밝혔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1978년 공개된 산울림 2집 수록곡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5년 전 노래인 셈이다. 다시금, 산울림이 얼마나 위대한 밴드였는지를 곱씹어 보게 된다.

우리는 음악을 감상할 때 관성적으로 계보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계보는 일종의 권력형 피라미드 구조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음악 역사에 더 중요한 존재로 간주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위켄드의 음악은 마이클 잭슨을 떼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브루노 마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1960, 1970년대 솔·펑크 음악의 흔적을 느낀다. 여성 가수가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면 휘트니 휴스턴이나 머라이어 캐리 또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거의 반자동적으로 언급되는 이유 역시 이와 같다.

한데 산울림의 음악은 계보에 속해 있지 않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들은 계보 바깥으로부터 계보의 틈새를 찢고 들어온 위대한 예외였다. 그야말로 ‘갑툭튀’, 영어로 하면 아웃 오브 노웨어(out of nowhere). 그러고 나서 그들은 예정되지 않은 탐사로 가득한 길을 걸었다. 그 음악은 펑크이기도 했고, 포크이기도 했다. 사이키델릭이기도 했고, 발라드이기도 했다.

1977년 데뷔작에 실린 ‘아니 벌써’가 파격이었다면 이후 아이유가 커버한 ‘너의 의미’는 산울림 서정 미학의 정점이었다. 또한 그들은 비단 사운드만이 아닌 노랫말에서도 ‘틀’을 깨부순 혁명가였다. 예를 들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등의 가사에서 만날 수 있던 산문적 글쓰기는 기왕의 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한 시도였다. 김창완은 이렇게 증언한다.

“가사에 어떤 일정한 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틀이 저희(산울림)에겐 도리어 이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꼭 정형화된 언어로 운율을 맞춰 노랫말을 전개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죠. 물론 하다 보면 기본적인 운율은 필요하지만 산울림 때부터 지금까지 음악어법은 글 아닌 말로 하는 방식, 구어체입니다.”

글쎄. 확언할 수는 없지만 과연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산울림만큼 혁명적인 존재가 또 등장할 수 있을까. 지난 8월 6일 김창완은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간판공연자)로 무대에 섰다. 수많은 젊은 관객이 그의 음악에 압도적인 환호를 보내는 광경을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뮤지션은 나이 먹어도 위대한 음악은 나이 먹지 않는다. 그들의 음악은 그래서 곧 영원한 젊음의 찬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