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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도 미식사과 한 알이 있다면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2023년 09월호
계절을 환기할 정도로 너무나 맛있는 사과였다. 사과 사탕을 녹여 먹는 듯 달콤하고 새콤한 맛도 균형이 좋고 질감은 아삭아삭하고 수분이 그득했다. 이건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사과다. 소고기에서 ‘부처스 컷(정육사만 알고 먹는 고기 부위)’이 있다면 이 사과는 마치 일반 소비자는 대부분 모르고, 사과 농부라면 누구나 알고 조용히 먹고 있을 법한 그런 사과다.

정체를 밝히면 실망부터 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아오리 사과. 늦여름부터 나오는 푸릇푸릇한 사과 품종이다. 이 사과는 일본에서 온 품종으로 ‘쓰가루’가 본명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홍옥의 피를 받은 품종이라 쭉 익히면 홍옥처럼 새빨갛진 않더라도 부사처럼 빨개진다. 문제는 이 품종의 나무가 사과가 다 익기도 전에 뉴턴의 사과처럼 툭툭 떨어트려 버린다는 것. 그러다 보니 익기 전에 따서 푸릇푸릇한 채로 먹는 품종이 됐다. 익지 않은 사과이기 때문에 산미가 강하고, 과육은 당화가 채 다 진행되지 않아 마치 날고구마처럼 전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아오리 사과를 익히면 빨개진다는 것은 몇 해 전부터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파는 곳이 없기에 먹어볼 수는 없고 발 동동 궁금해하기만 했다. 드디어 익힌 아오리를 먹게 된 것은 계절미식 일을 하다 만나게 된 사과밭에서였다. 일정량만 매달아 뒀다가 떨어지기 전 최대한 익힌 후 따서 판매해 주시기로 해, 감사히도 그 황홀한 맛을 봤다. 참고로 이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는데, 시장경매에 출하하는 아오리는 조금이라도 붉은빛이 돌면 제 가격을 못 받기 때문이다. 맛있게 더 익은 아오리가 냉대받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며 사과 품종의 시간도 흘러간다. 아오리 다음으로 달콤한 홍로, 그다음으로는 큼직한 감홍과 배 같은 질감의 시나노 골드가 등장한다. 가을이 깊어 겨울로 가기 직전에 부사 품종을 수확한다. 우리가 한 해 내내 먹는 사과 품종이다. 저온으로 저장해 놓고 조금씩 유통하는데, 봄으로 넘어가면서는 푸석거리는 질감이 도드라져 되도록 다른 제철 과일을 먹는 것이 좋다. 신품종으로도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다. 골든볼, 루비에스, 이지플, 컬러플, 아리수, 아리원, 황옥 등이 아직은 적은 면적에 재배되며 새로운 팬층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과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겨울이 오고 감귤과 딸기의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사과 한 알이 있을 때마다 군침 도는 모의를 해볼 생각이다. 사과를 갈아 졸이는 사과잼은 기본 중 기본이고, 모과청처럼 나박나박 썰고 설탕에 재워 탄산수와 사과 슬라이스 한 쪽을 더해 에이드로 먹는 것도 시도해 볼 참이다.

사과는 간식으로도 좋지만, 토마토만큼 요리 재료로 활약하는 과일이기도 하다. 우선 사과 감자 샐러드. 삶은 감자와 사과를 두툼하게 썰어 건포도, 견과류 등과 함께 마요네즈에 버무리는 스타일, 또 삶은 감자를 으깨 잘게 썬 사과와 양파, 소금에 절인 오이 그리고 핵심 재료인 삶은 달걀을 마요네즈에 버무리는 스타일. 둘 중 나는 후자를 압도적으로 좋아한다. 그대로 먹어도 좋고 식빵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로 먹어도 한 끼로 든든하다. 샌드위치라고 하면 사과 샌드위치도 빼놓지 못한다. 속을 가른 치아바타 사이에 사과를 얇게 썰어 여러 장 끼워 넣고 고다, 그뤼에르 등의 경성 치즈를 살짝 더한다. 사과는 치즈의 감칠맛과도 좋은 궁합을 이루는 재료다.

의외의 조합도 있다. 사과는 고기와 찰떡궁합이다. 특히 돼지고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돼지고기를 구울 때 도톰하게 썬 사과도 같이 구워 가니시(garnish)로 곁들여 보자. 새콤달콤한 사과는 가열돼 고소한 맛이 더해지고 돼지고기의 달달함과 어우러져 박수가 절로 나오는 조합을 이룬다. 사과를 굽는 것이 성가실 때는 사과잼으로 대체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