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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평초저출산 위기를 사회개혁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홍석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3년 10월호

인구학자로 알려진 토머스 맬서스는 1800년 전후에 활약한 대표적인 고전경제학자다. 그의 이론을 모르는 사람도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그의 주장은 익숙할 것이다. 인구 급증으로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1990년대까지 펼쳐진 적극적인 인구 억제 정책의 주요 근거로 활용됐다.

근대 경제학 이론이 체계화되기 전인 1789년에 출간된 맬서스의 『인구론』은 인구변화를 기반으로 생활수준의 결정을 다룬 경제 이론을 담고 있다.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인구가 늘면 노동 공급이 증가해서 임금이 낮아지고 위생환경이 열악해지는데 그로 인해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낮아지면서 인구가 줄어든다는 이론이다. 반대로 인구가 줄면 생활수준이 개선되면서 인구가 늘어난다고 봤다. 인구변화와 생활수준의 변화가 이런 사이클 내에서 반복되는 것은 소위 ‘맬서스 함정’이라 불린다.

맬서스는 인구변화의 요인인 생활수준을 임금과 위생으로 단순화했지만, 이를 포괄적인 사회경제환경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사회경제환경이 악화하면 사망률이 높아지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인구가 감소한다는 가정은 예나 지금이나 타당하다. 또한 맬서스 함정의 사이클은 장시간의 틀에서 반복되므로 인구변화의 거대한 흐름은 사회경제환경을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좌우한다는 함의를 제공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인구와 사회경제환경의 연쇄적인 관계로 형성되는 맬서스 함정의 균형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성공적인 산업화를 통해 경제 지표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끝도 없이 추락하는 것은 포괄적인 사회경제환경이 결혼과 출산을 하는 데 필요한 수준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치열한 경쟁, 높은 교육열, 남성 중심의 가족·기업 문화 등 압축 성장을 지탱했고 베이비붐 시대를 주름잡던 사회구조환경이 저출산 시대상에 맞춰 혁신적으로 변하지 못한 결과다.

초저출산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은 결혼, 출산, 양육에 드는 직접 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기회비용을 낮춰 결혼과 출산의 합리적 선택을 가능케 하는 사회경제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미흡하다고는 하나 양육 지원, 주거 지원, 일·육아 병행 지원 등 핵심 정책들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도 좀처럼 출산율 반등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고착화된 사회구조적 문제가 저출산 정책의 효과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 문제는 초저출산 현상만을 초래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출생미신고 ‘유령 아동’ 사태, 무너진 교권과 공교육 실태, 잇따른 흉기난동 사건 등은 계층 간 불평등, 과도한 입시경쟁, 초경쟁사회 등 다양한 사회구조적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며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던 문제가 곪아 터져 나타난 현상이다. 따라서 사회구조의 개혁은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해 필요하며 초저출산의 함정에서 벗어날 근본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중세 암흑기를 거치면서 유럽이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인구 증가와 식량난이었고 이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탄생한 주된 배경이다. 그런 사회적 난제를 풀어낸 것은 수백 년 동안 고착화된 낮은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기술혁명이었고, 여기서 출발한 영국의 산업혁명은 수 세기에 걸쳐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 인구 위기를 계기로 삼아 사회 발전의 기회를 창출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엔 더 이상 미루기 힘든 교육, 노동 등 개혁 과제가 겹겹이 쌓여 있다. 초저출산 문제는 사회개혁의 최우선 목표는 아니지만, 사회개혁을 추진할 충분한 명분과 강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인구 위기를 사회개혁의 기회와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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