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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 곁의 철학한때의 나와 잘 이별하기 위하여
허유선 『인생에 한 번은 나를 위해 철학할 것』 저자 2023년 10월호

이별은 보통 일이 아니다. 때로는 짧은 만남도 그리 애틋하고 이별의 순간을 견디기 힘들다. 애정이 깊던 사람과의 이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람과의 이별만이 힘든 것은 아니다. 애착을 가졌던 모든 것, 반려동물, 살던 동네와 집, 오랫동안 쓰던 물건 등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가를 필요 없이 이별은 쉽지 않다. 때로는 이미 헤어졌으나 나 홀로 이별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별은 보통의 일이다. 우리는 숱한 이별을 겪으며 살아간다. 졸업이라는 이별은 일종의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이별이 사람에게 보통의 일인 것은,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한 달, 한 계절, 일 년이 흐르고 나이 들어간다는 뜻만은 아니다. 내가 시간 속에서 만나고, 관계 맺고, 내던져진 조건 및 상황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우리에 머물 수 없고, 과거의 조건이나 상황들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조건은 시간과 함께 변해가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지만 수없이 잦고, 어렵기까지 한 이별. 그러나 때로는 이별이 필요하거나, 이별이 나를 구원해 줄 때가 있다. 바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 믿던 것이 크게 흔들렸을 때,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다. 그럴수록 우리는 무언가를 움켜쥐려 하고, 어떻게든 과거의 루틴을 이어가려 한다.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으면 끝날 것 같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를 두고 한계상황이라 불렀다. 기존의 나는 더 이상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는데,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바로 한계상황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니 피해 도망치고 싶지만, 회피할수록 한계상황은 끝 모를 바닥이 된다. 회피하면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별(離別)이란 떨어져 갈라지는 것이다. 나를 위했던 모든 방식, 내가 이 삶에 적응하고 이뤄왔던 것, 내가 지금까지 나와 너 그리고 세상과 삶을 바라봤던 관점…. 한때는 나를 이루고 지지하고 달래줬던, 내 것이었던 무언가가 더 이상은 내게 붙어 있지 않고 떨어져 나가고 있다. 원래 붙어 있던 것이 떨어져 나오니 흔들리거나 힘들지 않을 리 없다. 당황스럽고 힘들고 분노하게 되고 황망하고 무기력해진다. 때로는 마음이 마비된 것처럼 그저 살아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계상황이란 일종의 이별인 셈이다.

그럴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모든 이별을 대하는 자세가 나의 한계상황에서도 요구되는 것 같다. 이별을 위해서는 ‘이별할 수도 있다’는 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절대 그럴 수 없었는데, 남은 겪지 않는데 나에게만 벌어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만이 겪는 진통이라 오롯이 나만의 몫이기도 하다. 모두가 겪는 이별이라 해도, 내게 온 이별을 수용하기는 무척 힘들다. 내가 무엇과 이별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 떨어져 나간 것, 한때 나였던 모습은 무엇인지 하나씩 헤아려보자.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이별을 마주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며 나아가 내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 또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을 그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때로는 떠나오고 때로는 남겨진다. 한때는 붙어 있고 연결돼 있던 것이 떨어진 자리, 모든 이별은 흔적을 남긴다. 떨어져 나가는 일은 설령 그것이 기다렸던 일일지라도 아픔을 동반한다. 그 어떤 무엇과 이별한다는 것은 나의 경계선을 새로이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이 그린 경계선을 마주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그 이별이 남긴 흔적의 의미를 알게 된다. 내가 도저히 잃을 수 없고 떠날 수 없고 그것이 곧 나 자신이라고 느꼈던 나와 이별할 때, 그제야 볼 수 있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아마 새로이 그려진, 같지만 또 다르게 살아갈 나 자신이다. 드디어 이별을 온몸으로 겪고 통과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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