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모이면 우리의 대화는 어김없이 연애 예능프로그램인 <환승연애2>로 흘러가곤 했다. 실제로 이별한 커플 4~5쌍이 한집에 모여 살면서 서로 누가 누구의 전 애인인지는 비밀에 부친 채로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날지 전 애인에게로 돌아갈지를 결정하는, 다소 파격적인 이 프로그램에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빠져들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고 자주 생각했던 장면들은 주로 여성들끼리 모여 있을 때 나왔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성이 때로 질투하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우정을 나누고 응원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도 연적으로 만난 두 여성이 서로를 시기하지 않고 좋아하는 내용이 담긴 어떤 작품을 보고 울프가 신선한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다. 우린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드라마와 책 속에서, 연애조언의 형태로 내려오는 무성한 말들에서, 남자 한 명 끼어들면 곧바로 적이 돼 ‘캣파이트(catfight)’를 벌이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봐왔고, 이성과의 사랑이야말로 여성끼리의 우정 대신 당연히 쟁취해 마땅한 가치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봐왔다. 이런 편견은 중세에도 있었을 만큼 유구해서 훨씬 다채로운 여성서사를 접할 수 있는 요즘에도 여전히 ‘여자=질투’의 공식으로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다.
저널리스트 케일린 셰이퍼가 작정하고 쓴 『여자들을 위한 우정의 사회학』은 남성의 우정에 비해 홀대받아 왔고 너무나 오랫동안 비열한 언어로 짓밟혀 온 여성의 우정을 사회적 관점에서 세밀하게 조명하고 재정의한다. 그런 비열한 언어 중 하나로 앞에서 썼던 ‘캣파이트’가 있다. 방송 중 여성 출연자끼리 의견이 충돌하는 장면을 편집한 숏폼 콘텐츠에는 ‘캣파이트’라는 제목이 붙기 마련이지만(한국버전으로는 ‘여자들의 기싸움’이 있겠다) 남자들끼리 같은 장면을 연출하면 ‘캣파이트’나 ‘말다툼’ 대신 ‘논쟁’이라는 점잖은 말이 붙는 식이다. ‘논쟁’을 하는 남성들은 이성적이지만 ‘싸움’을 하는 여성들은 ‘여적여’ 프레임에 갇혀 서로 미워한다고 단정한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쳐 만든 단어 ‘프레너미(frenemy)’는 99퍼센트의 비율로 여성에게만 쓰이며, ‘여자들은 겉으로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굴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한다’는 사회적 시선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편견의 절정은, 폴 페이그 감독이 연출한 <고스트버스터즈>나 게리 로스 감독의 <오션스8>처럼 여성이 단체로 주연인 영화의 경우 언론매체나 업계 동료들에게서 “여자들의 싸움으로 최악의 현장이 될 것”이라는 경고나 “여배우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냐” 같은 질문을 흔히 받는다는 것이다. 남자배우들이 단체로 나오는 영화에서는? 그런 질문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도 여배우들이 기싸움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여배우들>은 있지만 <남배우들>은 없다.
우리는 정상에 서기 위해 산에 혼자 오르지 않는다. 그게 무슨 재미란 말인가. 나는 내 여자친구들과 함께 산 정상까지 올라가 파티를 하고 싶은 것이다.(에린 왓슨)- p.212
이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도 내면화돼 있는 여러 편견과 마주하며 충격받을 테지만 그것들을 깨부술 논리와 용기도 같이 주는 책이다. 되찾을 우정을 되짚어 보고 새로운 우정의 지도를 그리게 해준다. 누구로도 대체 불가능한 소중한 여자친구들의 의미가 다시 새겨지는 기쁨을 꼭 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