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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녹아 있는 나라
박대희 KOTRA 영국 런던무역관 과장 2023년 11월호
영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때 만 6개월도 되지 않았던 필자의 아들은 어느덧 2살이 됐다. 지금은 아이가 커서 유치원에 다니지만, 영국 생활 첫 1년간은 주변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느라 꽤 고군분투했다. 언어와 환경이 다른 곳에서 육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가 부담 크고 정부의 양육비 지원 적어도 양호한 출산율과 높은 아동 인구 비율 유지

육아를 시작하면 싱글일 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아이와 함께 여행하거나 이동할 때 유아차가 필수다 보니 도시 인프라가 가진 편의성과 안전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를테면 보도블록과 횡단보도 사이의 턱이 높지는 않은지, 도로 설비가 유아차 이동의 편의성을 고려했는지, 지하철 혹은 버스 안에 유아차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지, 각종 시설 내에 유아용 화장실이 갖춰져 있는지 등이다.

영국은 사회적 약자인 아동에 대한 배려가 도시 곳곳에 녹아 있는 나라다.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도시 인프라의 편의성 문제로 고생할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또한 아이가 있는 가정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우리에 비해 상당히 우호적이다. 영국에선 아이와 함께 외부 활동을 하는 데에 사회적 제약이 거의 없고 오히려 아이와 함께하는 바깥 활동을 장려한다. 식당이나 카페에 아이와 함께 가는 건 흔한 일이고, 술집(pub)에 아이를 데려가도 특별히 문제 삼지 않는다. 놀이터와 공원은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이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에서도 부모와 함께 관람 나온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복지 강국들만큼은 아닐 수 있겠지만, 영국은 가정 친화적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강한 국가다. 미국 시사주간지 『U.S. 뉴스 & 월드리포트』 발표에 따르면 영국은 ‘가정 친화적인 나라’ 14위에 올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7위로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20위), 싱가포르(24위)보다 뒤처져 있다.

영국에선 단순히 아이와 함께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불편한 시선을 받을 일이 없다. 유아차를 끌고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엄마들을 차별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고, ‘노키즈존’이라며 문전박대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영국이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용인한다는 건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부모가 아이들을 잘 교육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인지 영국의 아동 인구 비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 2021년 기준 영국의 만 0~14세 아동 인구 비율은 17.66%인 반면, 우리나라는 11.89%로 매년 떨어지는 추세다. 괄목할 만한 건 영국이 지난 10년간 아동 인구 비율 17%대를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아동 인구 비율이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출산율이 뒷받침된다는 뜻이다. 2021년 기준 영국의 합계출산율은 1.53명으로 선진국 중에서 준수한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로 출산율이 하락하기 전에는 합계출산율이 1.9명으로 유럽에서 꽤 높은 편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2021년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OECD 평균 1.58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영국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지난해 영국 공영방송사 BBC는 ‘한국 여성은 출산 파업 중’이라는 멘트가 담긴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저출산 문제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둔감하게 반응하는 느낌이다.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미래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경제적 측면을 놓고 본다면 영국이 우리나라보다 비용적 부담이 더 큰 상황이다. 영국은 살인적인 물가로 생활비, 집값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양육 정책도 우리나라와 비교해 혜택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각종 수당과 유아교육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아이가 태어나면 영아수당과 양육수당 지급은 물론 유치원 학비까지 지원한다. 물론 영국도 자국민을 위한 양육 지원책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주당 24파운드의 양육수당(Child Benefit)을 만 16세까지 지원한다. 우리 돈으로 한 달에 약 17만 원이 조금 넘는데 영국의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상당히 적은 금액이다. 런던 지하철 편도 이용요금은 6.7파운드로 1만 원이 넘는다. 쉽게 말해 주당 24파운드라는 금액은 일주일에 지하철을 겨우 3번 탈 수 있는 액수다.

유치원의 경우 만 3세부터 공립 유치원에 다닐 수 있지만, 이 시기 정부가 지원하는 수업료는 하루 3시간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립 유치원은 만 1세가 되기 전에 보낼 수 있지만, 그 비용이 월 300만 원을 호가한다. 필자 같은 주재원들에게도 대학 등록금 수준의 금액을 매달 유치원비로 내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영국에서 육아하며 늘 미스터리였던 것은 ‘대체 영국 사람들은 이 비싼 나라에서 어떻게 애를 낳고 키우는 걸까’라는 것이었다. 영국 사례를 보면 많은 전문가가 말하는 것처럼 비용 지원 방식의 육아 정책이 저출산을 막는 근본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저출산 문제 해결에 비용 지원보다는 출산·양육 친화적 사회 분위기 형성이 중요

영국이 우리보다 출산율이 높은 비결은 가정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와 함께 육아를 엄마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가족 전체의 의무라고 보는 사회적 인식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자녀 출산 후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은 여성이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는 데 큰 문제가 없고 가정 내 육아 분담이 잘 이뤄진다. 아빠가 아이의 등하굣길을 책임지고 학교 모임이나 자녀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동행하는 모습은 이곳 영국에서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최근에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전업 육아를 선택하는 영국 아빠의 수가 30%가량 증가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요즘 한국에선 결혼은 고급재, 출산은 사치재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들었다. 취업은 어렵고 물가는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결혼, 출산, 육아….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포기해야만 할 수도 있는 삶의 영역이 돼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 출산·양육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성원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가가 양육을 지원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사회 구성원의 인식뿐 아니라 기업문화 또한 가족 친화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비단 저출산에 따른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그려나갈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1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 우리나라도 영국만큼 가족 친화적인 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길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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