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은 24시간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도시다. 베이징의 핵심 도로인, 자금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순환도로는 밤낮없이 정체가 이어지고 시내 주요 도로도 항상 차가 많다. 물론 처음부터 차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체류했던 1993년 베이징의 거리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도로 공사였다. 시내를 관통하는 순환도로인 3환선이 공사 중인 관계로 어딜 가든 차가 막혔다. 공사를 제외한 교통체증 최대 요인은 바로 자전거였다. 도로 위에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많아 우선주행은 늘 자전거 차지였다.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건널목을 기다리던 수백 대의 자전거가 우르르 쏟아져 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지만 엉켜서 다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자가용이라는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차량은 샤리(夏利)와 빵차라고 불렸던 택시, 시내버스와 전차 등 대중교통이었다. 공해 유발이 심한 차종들이었으나, 자전거가 핵심 교통수단이었던 때라 공해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자동차로 공해 문제 심각해지자
친환경차로의 전환 적극 추진하며 수소산업 육성에 나서
그러나 도로 위 풍경은 빠르게 변해갔다. 1990년대 중후반 자가용과 오토바이 보유가 많아지면서 자전거가 줄었고, 교통체증의 원인도 자동차로 바뀌었다. 증가한 자동차만큼 공해 문제도 심각해졌는데, 겨울이면 하늘은 늘 잿빛을 띠었고 강풍이 부는 날에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에 중국 정부는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차선을 좁혀 차선 수를 늘렸고, 공해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된 빵차와 샤리 택시를 퇴출하는 조치도 취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본격적으로 자가용 시대가 열리며 도로를 달리는 고급 세단과 슈퍼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자전거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그만큼 공해가 더 심해지며 파란 하늘을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당시 중국에서 공해의 최대 주범은 공장이 아닌 자동차라는 발표도 있었다.
2010년대 중후반 중국의 공해와 미세먼지가 여전히 큰 문제인 상황에서 도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중국 정부가 친환경차 육성과 내연기관차 퇴출을 위한 강력한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을 취득하기가 복권당첨마냥 어려웠는데, 친환경차는 번호판을 무상으로 발급해 줬고 보조금도 지급했다. 정책이 실효를 거두며 친환경차가 도로를 누비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도 전기 오토바이로 완전히 대체됐다.
2020년대는 본격적인 친환경차 시대가 됐다. 중국은 친환경차산업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올해 7월에는 친환경차 출고 누적 2천만 대를 달성했다는 소식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이제 도로에는 친환경차를 나타내는 초록 번호판이 훨씬 많이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소차를 상용화하고 더 나아가 수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수소산업 육성은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며 시작됐다. 수소는 깨끗하고 소재가 풍부해 안정적 사용이 가능한 자원으로, 중국 정부는 수소의 이런 특성에 주목하고 수소차와 수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2021년 양회(兩會)에서 발표한 ‘14.5 규획 및 2035년 장기목표 개요’에 수소에너지·저장 등 기술 및 산업을 육성할 것임을 명시했고, 2022년 ‘수소산업 발전 중장기규획’은 수소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하고 단계별로 육성해 나갈 것임을 명시했다. 또한 ‘13.5 교통 분야 과학기술혁신 항목규획’에서 수소차를 중점 육성 산업에 포함하고, 2021년에는 베이징, 상하이, 광둥성, 정저우, 허베이 등 총 41개 도시군을 수소차 시범운영 도시로 지정했다.
이런 정책의 영향으로 2022년까지 중국 내에서 판매된 수소차 1만2천 대 중 광둥성, 상하이, 베이징, 산둥성, 허난성 순으로 판매 대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중국 정부는 14.5 규획에 2025년까지 수소차 5만 대 보유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 지방정부도 수소차 및 수소산업 육성을 위한 자체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제조-저장-운송-충전-활용 등 전 부문에 걸쳐 산업망 및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광둥성은 2025년까지 수소차 1만 대 이상 운영, 연간 수소 10만 톤 이상 공급, 충전소 200개 이상으로 확충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산둥성도 2025년까지 수소 분야 핵심 경쟁력 보유 기업 10개사 육성, 연간 수소엔진 및 수소차 생산능력 각각 5만 대와 2만 대로 확충, 충전소 100대 설치 등의 목표를 수립한 바 있다.
기술력 보완과 인프라 확충 위해 외국과 적극 협력…
우리 기업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될 것
중국 정부가 수소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여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중국은 연간 수소 생산량이 4천만 톤을 넘는 세계 최대 수소 생산국이지만 생산 단가가 높고 청정수소 비중이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주요 산지가 서북 지역인 반면 소비 지역은 동부 지역이어서 장거리 수송 등을 위한 기술력 확보와 대규모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아울러 2022년까지 전국에 건설된 수소충전소는 총 274개로 그 수가 많이 부족할뿐더러, 설비의 국산화 수준이 낮고 건설비용이 높아 충전소 확충 속도도 느린 상황이다. 게다가 수소차는 고비용 문제로 개인이 운영하기에 부담이 크고 기초인프라가 부족해 아직은 중장비 트럭, 버스, 탑차 등 상용차 부문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보다 공격적인 정책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고, 부족한 기술력 보완 및 인프라 확충을 위해 외국과의 협력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외국 기업과의 기술협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일례로 상하이 린강에 중일 지방발전협력시범구를 건설해 일본 기업과 양자 교환막 연료전지, 연료전지시스템, 수소저장시스템 등의 분야에서 기술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럽과는 연료전지와 에너지저장 분야에서 R&D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다국적 에너지기업 쉘과 선넝(申能)그룹이 합작회사를 설립해 2030년까지 30개의 수소 충전소를 설립하고 3천 대의 수소트럭·버스에 연료를 공급할 예정이다.
한중 기업 간 협력사례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기업과 합작법인을 만들고 광저우에 연료전지시스템 생산공장을 설립해 지난 6월 1일 준공식을 열었다.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연료전지시스템 6,500기이고, 상용차 외에도 선박, 도시철도 발전 등의 분야로 활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두산퓨얼셀은 중국의 ZKRG 스마트 에너지 테크놀로지와 합작회사를 설립 중이며, 연료전지 및 부품 생산공장을 건축하고 있다.
수소산업은 환경보호를 위한 미래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중국은 수소산업을 자동차에 국한하지 않고 전 분야에 걸쳐 산업망을 구축해 공업·건축·발전 등 다양한 분야로 넓게 확장하고자 한다. 올해 2월 각 지역별로 발표한 중점 수소 프로젝트만도 35개로 총투자액은 490억 위안이며, 수소 생산부터 산업망 구축, 제조설비, 충전·저장 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중국의 수소산업 육성이 이제 시작 단계인 만큼 한국과 중국 양국 정부 및 기업 간 협력이 가능한 분야가 매우 많다. 이는 우리 기업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와 기업 모두 중국 수소산업에 보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