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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여울의 나란히 한 걸음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건축의 힘
정여울 작가 2023년 12월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과 모든 예술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심지어 사람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건축은 시간과 장소에 대해 말해야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 프랭크 게리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가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건축이 있다. 도시의 전체적인 인상과 ‘여행의 이유’까지 바꿔버리는 그런 건축. 내게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이 있는 바르셀로나와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빌바오가 그랬다. 

바르셀로나에 그 맛있다는 감바스를 먹으러 갈 수도 있고 저 유명한 축구를 보러 갈 수도 있고 아름다운 플라멩코를 보러 갈 수도 있지만, 나는 가우디의 건축을 보러 가고 싶었다. 가우디의 유일무이한 정신세계가 담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나 구엘 공원은 오직 바르셀로나에만 있다. 그 유일무이한 무언가를 깊이 알아보고 싶어서 바르셀로나에 여러 번 방문했다. 한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시의 운명 자체를 바꿨다. 잿빛 공업도시로 ‘관광하기에는 볼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으로 완벽한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철저한 우연에서 탄생한 축제적 광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든 구엘 공원이든 까사 밀라든, 모든 가우디 건축에 녹아 있는 예술가의 영혼은 디오니소스의 축제적 광기가 아닐까. 구엘 공원의 타일 구조물 하나하나를 보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가우디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디자인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술자의 성격이나 솜씨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타일을 깨뜨려서 얼기설기 부정형의 입체적 구조를 만들었다. 질서와 균형을 중시하는 건축가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형상이다. 시공하는 기술자의 재능과 기분에 따라, 그러니까 철저히 우연에 맡기는 건축이라니. 그 자신감과 유쾌한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예술과 기술의 극한까지 인간을 밀어붙이는 광기 어린 흥분으로 충만하다. 구엘 공원은 햇살이 내리쬐는 대낮에는 축제적 명랑함이, 석양 무렵에는 서글픈 애상으로 물들며 모든 쾌락에는 피할 수 없는 끝맺음이 있음을 아련하게 일깨워 주는 것 같다.

프랭크 게리는 춤추는 건물, 헤엄치는 건물, 바다의 배처럼 떠 있는 듯한 건물의 이미지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는 건축가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상자 안에서 생활하고 일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네모난 상자처럼 천편일률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면서도 그곳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 내가 사는 곳이 사실은 그저 ‘네모난 상자’였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나는 더 아름다운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도록 하는 것이 건축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집을 단지 ‘부동산’이라는 재산 가치로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삶을 창조적으로 꾸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건축의 방향성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장소가 바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가면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건축의 꿈을 키우게 된다. 공해도 심하고 공장 위주의 건물 일색이라 아무런 매력도 지니지 못했던 도시 빌바오를 일약 ‘건축의 메카’로 만든 건물이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상하이처럼 엄청난 고층건물이 많은 곳도 아닌데 이 건물 하나가 도시의 운명을 바꿨다.

프랭크 게리는 상업적 건축의 가장 큰 문제가 ‘건축이 인간성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건축에서 미니멀리즘은 인간성을 모두 삭제해 버린 채 최소한의 선만을 남겨둔다. 미니멀리즘은 경제적인 관점에선 무척 효율적이지만, 감성적인 문제에서는 너무도 무미건조한 건축이 돼버리기 쉽다. 단조롭고 획일적인 직선이 아니라 복잡하고 풍요로운 곡선으로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의 마음속에는 오직 네모진 직선적 세계만을 추구하는 기존 건축에 대한 비판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곳이 보통의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공공건축이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처음에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이 워낙 아름다워 그 안의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건축의 탁월함이 미술작품의 탁월함을 앞질러 버린 것일까.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일까. 오히려 나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건축과 미술의 눈부신 하모니’를 봤다. 건축 또한 그 아름다움 때문에 미술의 일부였고, 미술 또한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건축의 일부였다. 

게다가 구겐하임 미술관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2003년에 빌바오에 방문했을 때는 작품의 수가 많지 않았지만(그래서 ‘여백의 공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또한 아름다웠다), 2023년에 방문했을 때는 엄청나게 많은 현대미술 작품으로 풍요로운 컬렉션을 구성하고 있었다. 2023년의 피카소 특별전은 그야말로 또 다른 피카소의 진면목을 보여준 멋진 컬렉션이었다.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에서도 멋진 피카소 특별전을 봤지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마치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피카소의 환상적인 매직쇼를 보는 느낌이었다. 전시 공간이 미술작품의 의미와 아우라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살아 있음’의 변화무쌍함 

서울의 고층건물들에서 가장 지배적인 색깔은 무엇인가. 바로 회색이다. 회색이 무난하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비용’ 때문이라고 한다. 회색으로 짓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회색빛 도시에서 지내다 보니 독일 함부르크의 주황빛 지붕들이나 이탈리아 친퀘테레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던 것 아닐까. 구겐하임은 ‘은빛 건물’이 지닌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보여준다. 이 은빛은 햇빛의 방향이나 스펙트럼에 따라, 밤에는 주변 조명의 변화에 따라 매번 ‘다른 빛깔’로 반짝인다. 마치 거울처럼 도시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빛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겐하임 미술관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러니까 거대한 돌고래들의 군락처럼 빌바오의 강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웠다. 새벽, 아침, 점심, 저녁의 빛깔이 다 다르고, 구름 낀 날, 햇살 가득한 날, 눈 오는 날의 구겐하임이 모두 저마다의 다채로운 빛깔로 눈을 즐겁게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시와 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변화하는 구겐하임의 변화무쌍함을 닮고 싶다. 자기 고유의 형체를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주변 환경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웅장한 하모니를 이루는 구겐하임의 유연함을 닮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도 그렇게 눈부시게 풍요로운 다양성의 스펙트럼으로 매일 빛나기를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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