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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도 미식미식과 와인의 상관관계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2023년 12월호
와인에 취향을 갖는 일은 흔히 ‘우아하다’, ‘고급스럽다’라는 얕은 평가를 받곤 한다. 와인은 어려운 데다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선입견들은 모두 사실이다. 와인은 어렵다. 복잡하게 생긴 와인오프너로 코르크 마개를 잘 여는 방법도 알아야 하고, 와인을 오픈하기 전 각 와인마다 적정한 온도로 식혀둬야 하는 점도 부산스럽다. 와인은 품종과 지역에 따라 각기 걸맞은 잔이 있고…. 거기까지 들어가면 정말이지 외울 것이 한둘이 아니게 된다. 

저렴한 와인은 저렴해서 만족스러울 때가 있고, 고가의 와인은 고가임에도 불만족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고가의 와인에는 저마다 값비싼 이유가 있다. 고가의 와인에서 얻는 만족감은 저가의 와인에서 찾을 수 있는 합리성과는 동떨어진 미식의 지평에 있는 것이라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와인은 그런 의미에서 분명한 미식이다. 길거리 떡볶이나 오뎅으로부터도 만족은 얻을 수 있지만, 잘 차린 풀코스 식사가 보여주는 복잡미묘한 맛의 세계가 주는 만족은 얻기 힘든 것과 같다. 단지 ‘맛있다’라는 한 줌짜리 감상이 아닌, 와인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만큼은 아니더라도 장광설을 유도하는 미식평이 따르게 하는 것이 와인이다.

간만에 와인 모임이 있었다. 이번 경우 주제는 와인이 아닌 음식, ‘꽃게’였다. 이 글을 쓰는 11월 기준으로, 저물어가는 가을 꽃게를 백숙(찜)부터 게장, 찌개에 볶음밥까지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서울 신사동의 ‘신사꽃게당’을 장소로 잡았다. 애초에 꽃게를 푸지게 먹고 가을을 보내자는 의기가 투합돼 있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어떤 와인을 마실 것인가라는 문제뿐이었다.

군침 도는 꽃게 백숙에는 뭐니 뭐니 해도 샤르도네 품종을 꼽는다. 대개는 부르고뉴나 샤르도네 중 선택하겠지만 부르고뉴 옆 쥐라 지역의 장 프랑수아 갸느바 샤르도네 매그넘을 선택했다. 양조 과정이 살짝 달라 산미가 좀 더 농후하고 부드러우며 과실향이 두툼하다. 꽃게 백숙의 달큼한 맛을 배가해 주는 마리아주였다. 두 번째 와인으로는 같은 쥐라 지역의 뷰롱포스 사바냥을 골랐다. 갸느바 샤르도네와 동일한 특성에, 견과류 뉘앙스가 도드라지는 품종이다. 직선적인 맛이 임팩트 있게 치고 지나가는 이 집 양념게장과 견주며 좋은 조화를 보여줬다. 

조금 까다로울 수 있는 꽃게찌개 페어링은 레드가 걸맞다. 한국인 양조사가 단 몇 해만 운영했던 양조장 ‘메종 데 종’의 피노 누아를 골랐다. 피노 누아의 본산인 부르고뉴 중에서도 알록스-코르통 지역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치우침 없이 술술 들어가는 감칠맛 좋은 꽃게찌개와 피노 누아가 가진 감칠맛과 보드라운 꽃향이 서로 다투지 않고 감싸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꽃게볶음밥은 소금 간으로 달걀을 더해 볶은 중식풍 볶음밥으로, 남은 샤르도네 매그넘과 즐기기에 마침맞았다. 모든 와인을 모임 장소에서 오픈했기 때문에 ‘열리는(와인이 공기와 접촉하며 부드럽게 풀리는 것)’ 데에 시간이 좀 필요했는데 딱 좋게 열린 타이밍이었다.

와인에 취향을 가진 이들은 미식에 탐닉하는 공통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 와인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과의 조화, ‘마리아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황에 따라 음식에 맞춰 와인을 고르기도 하고 와인에 맞춰 음식을 고르기도 한다. 이 상관관계는 서로 시너지를 낸다. 꽃게가 생각나면 꽃게 요리에 맞는 와인이 떠오르고, 부르고뉴의 뫼르소 샤르도네를 생각하면 꽃게 백숙이 떠오르는 무한한 반복이기도 하다. 이 꼬리 물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영 이어지는 모습이 재미있게 여겨진다.

와인에 취향을 갖게 되면서는 음식에서도 더욱 섬세한 선택을 하게 된다. 와인을 망치는 음식이란 게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좀 더 방점이 찍히는 푸드 칼럼니스트로서, 좋은 페어링을 찾아내는 것이 와인 취향의 묘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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