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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처음 보는 얼굴들과 처음 듣는 나이들
김혼비 에세이스트 2024년 01월호

아마존을 비롯한 산간 오지를 드나들며 동물을 연구하고 그에 관해 세상에 다시없을 눈부신 책들을 쓴 생태 동물학자이자 자연 칼럼니스트인 사이 몽고메리가 생사의 기로에 놓인 돼지를 입양해서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이야기를 담은 책 『돼지의 추억』을 각별히 아낀다.(이와 별개로 그의 저서 중 가장 그리고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은 『유인원과의 산책』이다. 부디 꼭 읽어보시기를!) 이 책을 읽다가 현대 사회에서 돼지의 평균 수명이 6개월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돼지들이 식용으로 키워져 체중이 100kg이 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즉시 도축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사이 몽고메리의 돼지는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을 그의 반려로서 살아가는데, 그러니까 나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늙어가는’ 돼지의 이야기를 본 셈이고 그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돼지뿐만이 아니다. 닭, 오리, 거위, 말, 소 등 음식으로 소비되기 위해 사육된 농장동물 대부분은 생후 6개월이 되기 전에 죽음을 맞는다. 농장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도 나이 든 동물의 얼굴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이런 현실에 커다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동물을 오직 인간을 위한 소비재로써 이용하는 축산 농가나 동물원 같은 공간에 대항해서 만든 곳이 ‘생추어리’다. 저런 식으로 착취당하고 학대당해 온 동물들, 여러 이유로 버려지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한 동물들을 구조해서 그들이 자연스레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보호하는 시설이다. 동물들이 노년을 맞을 수 있는 곳, 나이 들 자유를 얻는 곳, 바로 이(미국 전역의) 생추어리들을 10년 남짓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노년을 맞은 동물들의 사진을 찍는 작업을 해온 사진작가가 이사 레슈코이고, 이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이 『사로잡는 얼굴들』이다.

동물들의 얼굴을 초상사진처럼 한 명 한 명 담담하게 담아낸 이사 레슈코의 사진들은 더없이 미덥고 그래서 감동적이다. 동물의 병들고 나이 든 상태를 두드러지게 찍어 노화나 고통을 낭만화하거나 논쟁적이고 충격적인 강렬한 이미지로 이슈화되려는 의도를 철저하게 배제하되, 그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깃든 디테일은 흔들림 없이 잡아냈다.

무엇보다 사진 속 동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엄하다. 그리고 그런 사진들 아래에는 “열두 살의 블루 슬레이트 품종 칠면조 간달프는 어느 호더(저장강박장애자)의 사유지에서 이루어진 구조작업 중, 죽어가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같은, 한두 줄의 짤막한 소개가 붙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늙은 수탉이나 늙은 당나귀의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것도 충분히 영혼을 뒤흔들 만한데, 그 아래 붙은 설명 속 그들의 나이(열두 살의 칠면조 간달프, 스물여덟 살의 거위 브루, 서른한 살의 소 페니파워, 서른네 살의 말 스타, 열세 살의 돼지 테레사…)가 영혼을 헤집는다. 이런 숫자가 가능했던 거구나.

본 적 없는 얼굴들에 들은 적 없는 나이들. 매년 500억 명가량의 동물들이 영영 갖지 못하는 얼굴들과 나이들. 그동안 우리가 빼앗아 온 노년들로 가득한 이 책을 잘 보이는 곳에 곧게 세워두면서 적어도 지난해보다는 몇 걸음이라도 더 그들이 존재하는 방향으로 발을 옮기리라고 굳게 다짐한다.

농장동물도 우리 인간이 원하는 것들을 원한다. 평안하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비참하게 살다가, 너무 어린 나이에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런 상황을 바꿀 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다. 남은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할 의지가 있는가,이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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