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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양구의 과학토크노화의 비밀, 어디까지 밝혔나?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4년 01월호


서른 살 안팎의 심경을 노래한 불후의 명곡을 들을 때마다 이건 마흔 살 언저리의 감성이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노화’라는 말이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 실감 나는 나이가 40대부터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은 노화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에 어디까지 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갈 길이 멀다.

현대 과학도 가능한 한 나이가 들어도 활력을 유지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죽는 시점을 늦추는 일을 꿈꾼다. 한때는 ‘노화 유전자’ 같은 걸 찾아 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노화 유전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조작할 수 있으면 늙는 일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단 하나의 노화 유전자 따위는 없었다.

DNA 압축 포장의 비밀

뜻밖에도, 노화의 과학은 ‘환경’ 요인을 주목한다. 지금부터 아주 기초적인 과학 지식이 나오니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보자. 우리 유전정보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각각 절반씩 왔다. 우리 몸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체세포에는 온전한 유전정보 한 벌이 들어 있고, 난자나 정자의 생식 세포에는 절반이 들어 있다. 

그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화학물질이 바로 DNA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사람의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DNA는 길이가 2미터나 된다. 그런데 이 DNA가 들어 있는 세포핵은 고작 지름 100마이크로미터다. 2미터의 DNA를 이 작은 세포핵에 우겨서 넣으려면 1만분의 1 정도로 크기를 줄이는 압축 포장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세포핵 안의 DNA는 압축 포장돼 이리저리 꼬여서 뭉친 형태로 존재한다. 여기서부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아직 실리지 않은 최신 과학 지식이다. 우리 몸의 구성 성분인 세포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이 압축 포장된 DNA가 풀리고(해당 부분의 유전자가 켜지고) 싸매는(해당 부분의 유전자가 꺼지는) 일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 몸의 피부 세포는 시도 때도 없이 각질로 떨어져 나가는 죽은 피부 대신 새 피부를 계속해서 생성한다. 이때 피부 세포 DNA 안에 들어 있는 2만2천 개의 유전자 가운데 피부 생성을 책임지는 유전자는 압축 포장이 풀려서 켜지고, 나머지 기능의 유전자는 싸매서 꺼져야 한다. 만약 이 과정이 엉망진창이 되면 피부에서 뼈가 자라는 기이한 일이 생길 테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만들어진 수정란(아기씨)이 엄마 배 속 자궁에서 아기로 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정란의 세포핵마다 들어 있는 압축 포장된 DNA가 제때 풀리고(특정 유전자가 켜지고) 싸매야(특정 유전자가 꺼져야) 머리, 장기와 뼈대, 사지, 성기 등이 순서대로 제대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우리 몸에는 DNA 압축 포장을 풀었다 싸매는 정교한 조절 시스템이 있다. 바로 이 조절 시스템을 연구하는 최신의 생명과학 분야가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다. 앞으로 후성유전학 연구에서 노벨상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우니, 이참에 과학 상식으로 이 단어 정도는 기억해 둬도 좋겠다.

노화의 새로운 정의

그렇다면, 도대체 후성유전학은 노화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앞에서 ‘환경’을 언급한 사실을 떠올려 보자. 압축 포장된 DNA가 풀리고(유전자 ON) 싸매는(유전자 OFF) 일에는 여러 변수가 관여한다. 특히 그중에서 스트레스, 흡연, 음주, 화학물질, 전자파, 운동, 설탕, 심지어 어젯밤 먹은 야식 등의 환경요인이 중요하다. 

이런 식이다. 엄마가 임신 중에 (전쟁이나 기근, 심지어 다이어트 때문에) 영양 섭취의 균형이 깨지면 자궁 안에서 자라던 아이의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 일에 혼선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애초 켜졌어야 할 유전자는 꺼지고, 꺼져야 할 유전자가 켜지면 어떻게 될까? 그 영향은 고스란히 태어난 아이의 삶에 각인된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싱클레어 같은 과학자는 좀 더 과감한 견해를 펼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환경요인이 DNA의 유전정보를 켜고 끄는 일을 방해한다. 그런 부정적 영향(‘후성유전적 잡음’)이 계속해서 늘어나서 DNA의 유전정보를 조절하는 일의 오류가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몸의 전반적 상태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싱클레어는 노화의 본질이 바로 DNA의 유전정보 조절을 방해하는 부정적 영향의 축적이라고 주장한다. 부정적 영향이 쌓인 결과로 암이나 치매가 생기고, 좀비 세포(노화 세포)가 제거되지 않아 염증을 일으키고, 염색체 끝의 텔로미어 길이도 짧아진다. 이 부정적 영향, 즉 후성유전적 잡음의 축적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결국 죽게 된다.

싱클레어는 이런 노화 과정을 낡은 DVD에 비유하기도 했다. DVD(DNA) 안에는 음악이나 영상의 디지털정보(유전정보)가 들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DVD 표면에 크고 작은 긁힘이 생긴다(후성유전적 잡음).

DVD가 낡아서 표면의 스크래치가 한계치를 넘어서면 결국 더는 디지털정보(유전정보)를 읽지 못해서 버려야 한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사망! 물론, 개인차가 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나길 건강해서 후성유전적 잡음을 견뎌내는 힘이 큰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별것 아닌 후성유전적 잡음에도 버튼이 눌려서 젊은 나이에 암이나 치매가 발병할 수도 있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가 이 복잡한 인과 관계를 해명하고자 밤을 지새운다.

지금 데이비드 싱클레어 같은 과학자는 몸속에서 후성유전적 잡음의 축적을 막아주는 방법을 찾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살짝 귀띔하자면, DNA를 풀고 싸매는 일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화학물질이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돕는다면 노화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싱클레어는 이런 아이디어를 밀어붙여 노화 예방 신약을 개발 중이다.

뜻밖의 반전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다이어트 방법 가운데 간헐적 단식이 있다. 이 간헐적 단식이 후성유전적 잡음의 축적을 막아서 노화를 예방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다. 실제로 전 세계 장수 마을의 공통 특징 가운데 하나가 소식이었다.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놓고서는 과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 한번 정리해 보겠다.)

하지만, 후성유전학이 말하는 노화의 본질을 알고나니 새삼 다시 들리는 얘기도 있다. 흡연과 과한 음주를 피하고, (어렵겠지만) 스트레스를 덜 받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깊은 잠을 자고, 가능하면 미세먼지같은 오염물질을 피하라는 이야기. 평소 건강을 위해서 귀가 닳도록 들은 얘기가 사실은 노화를 막는 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반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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