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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세 개의 점, 세계의 눈
김욱진 KOTRA 미국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2024년 01월호
실리콘밸리에서의 3년을 마감하려니 점(點) 세 개가 남는다.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지도 위의 점이기도 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나는 2021년 1월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내게 할당된 기간은 3년이었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다짐했다. 1년에 하나씩은 실리콘밸리를 해석하는 나만의 관점을 탑재하리라고. 관점은 추상적이지만 이를 드러내는 방식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3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세 개의 공간이 남았다. 근무하며 틈날 때마다 찾았던 장소 세 곳을 소개한다.
 

휴렛팩커드 캠퍼스, 지리적·역사적 시각

실리콘밸리 근무 초창기, 가장 공들인 일은 실리콘밸리를 하나의 실체로 인지하는 것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지리적 개념이 모호한 가상의 공간이다. 통계 기준만 봐도 그렇다. 매년 민간에서 발간하는 『실리콘밸리 인덱스』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는 샌타클래라, 샌머테이오, 앨러미다, 샌타크루즈 4개 카운티를 포함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 노동통계는 여기에 콘트라코스타와 샌프란시스코 카운티를 더한 6개 행정구역을 대상으로 수치를 집계한다. 이처럼 구획이 불분명한 실리콘밸리 대신 현지인들은 ‘베이 지역(Bay Area)’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실리콘밸리를 지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틈날 때마다 걸었다. 운전할 때도 웬만하면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 가려고 애썼다. 주말에 산책하다가 베이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을 발굴했다. 집에서도 걸어서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지도로 보면 움푹 들어간 샌프란시스코만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힘들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새로운 공기를 마셨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휴렛팩커드에서 분사한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의 캠퍼스가 있었다. 2022년 초까지만 해도 클라우드 서비스 등 컴퓨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 HPE의 본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HPE가 본사를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전한 지금은 혁신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베이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휴렛팩커드를 모태로 하는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캘리포니아주는 휴렛팩커드를 공동 창업한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1938년에 작업을 시작한 차고를 ‘실리콘밸리 발생지’로 지정했다. 이처럼 휴렛팩커드의 창업과 실리콘밸리의 시작은 궤를 같이한다.

혁신 생태계의 정신적 근간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실리콘밸리가 미국에서도 서부, 서부에서도 샌프란시스코를 둘러싼 베이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화적으로 실리콘밸리는 1950년대에 태동한 비트 문학(제도·관습으로부터의 일탈, 저항과 반체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세대의 문학)과 1960~1970년대로 이어진 히피 운동(주류 미국 문화를 거부하는 반문화 운동)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갈구했던 비트 세대와 히피 세대의 열망은 기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젊은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1975년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를 작업한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 사후 10주기 특별판에서 잡스를 ‘평생 우주와의 영적 연결을 추구한 구도자’로 정의했다. 이처럼 문화적·정신적 배경을 빼놓고는 실리콘밸리를 논할 수 없다.

 

문화적·정신적 시각, 시티라이츠 서점…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의 과학적·기술적 시각


문화적으로 실리콘밸리를 이해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티라이츠(City Lights) 서점을 찾았다. 1953년에 문을 연 이곳은 비트 문학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한 층이 통째로 비트 문학관으로 구성돼 있다. 『길 위에서』의 작가 잭 케루악, 시 ‘울부짖음(Howl)’을 쓴 시인 앨런 긴즈버그와 같은 인물이 시티라이츠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히 긴즈버그는 자신의 시를 발간할 출판사를 찾지 못하자 시티라이츠에서 독립출판을 실험했다.

비트 문학의 영향을 받은 미국 대중가수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밥 딜런이다. 스티브 잡스가 평생 밥 딜런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잡스가 애플의 초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후에도 지속될 정신적 유산을 남기는 과정에서 비트 문학과 히피 운동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안정된 공간에서 문화적으로 변화의 씨앗이 움트고 있던 20세기 중반, 실리콘밸리에는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 자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 정부는 태평양 연안을 방어하는 데에 공들인다. 이를 기점으로 서부 해안을 따라 형성된 도시로 대규모 연구 자금이 몰려든다.

가장 큰 수혜자는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로 대표되는 베이 지역의 대학이었다. ‘린 스타트업’ 흐름을 주도한 경영학자 스티브 블랭크는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대학들이 진행하던 기술연구 자금의 3분의 1 이상이 육군에서 나왔다”며 “일례로 1966년 스탠퍼드대는 전자기기 개발에 투입된 전체 금액의 35%를 국가 기밀 프로그램에서 지원받았다”고 말한다.

개별 대학의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대학과 대학 사이에서 정보를 교환하는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도 커졌다. 특히 현실적 위협으로 떠오른 핵 공격이 초래할 통신 파괴에 대비해 연구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태평양 표준시(PST)로 1969년 10월 29일 오후 10시 30분, 스탠퍼드대와 UCLA의 컴퓨터가 최초로 교신에 성공했다. 이때가 바로 인터넷이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여진 시점이다.

인터넷 발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도 베이 지역의 버클리에서 나왔다. 1986년 10월, UC버클리와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를 연결하는 통신선 속도가 급속히 느려졌다. 이를 유심히 살피던 연구원 반 제이콥슨은 기존의 전송 제어 프로토콜(TCP)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혼잡 제어 알고리즘을 재설계했다. 당시 인터넷은 등장한 지 20년 가까이 됐음에도 전 세계 사용자가 1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제이콥슨의 노력으로 인터넷은 방대한 데이터를 원활하게 주고받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 이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연구환경과 수준 높은 과학·기술 인재의 끝없는 노력은 실리콘밸리의 밑바탕이 됐다.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UC버클리 캠퍼스 뒤편 산에 있는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를 찾았다. 전망이 탁 트인 이곳에서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을 내려다봤다. 물고기는 자신이 물속에 사는지 모른다. 일과 생활에 치이다 보면 내가 존재하는 시공간의 의미를 잊기 십상이다. 버클리 캠퍼스의 산꼭대기에서 금문교를 바라보며 여러 각도에서 실리콘밸리의 가치를 재해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3년이 지났고 이 여정을 마감할 시점이다. 이제 시공간을 대한민국으로 옮긴다. 실리콘밸리는 세 개의 점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총체적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고 싶었다. 벅찬 일이었지만 시도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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