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던 애정이 갑자기 식는 때가 있는가 하면 별 관심 없던 대상을 향한 애정이 일순간 불타 오르는 때도 있다. 가수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떤 곡 또는 음반이 계기가 돼 팬심에 불을 질렀다는 증언이 도처에 차고 넘친다.
나에게도 그런 뮤지션이 한 명 있다. 바로 박효신이다. 처음엔 시큰둥했다. 아니, 비단 박효신만이 아닌 당시 활동한 이른바 ‘소몰이 창법’ 가수·그룹에 크게 감동하지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 소몰이 창법을 바탕으로 하는 노래들은 감정 과잉이었다. “저렇게까지 울먹이며 노래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박효신의 ‘바보’는 좋았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바보’는 내가 시간이 흐른 뒤 박효신이라는 가수를 다시 주목하게 해준, 꺼지지 않는 불씨가 돼준 곡이었다.
무엇보다 박효신 하면 빠지지 않는 수식, 바로 ‘가창력’이다. 그는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라는 수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래 잘하는 가수의 대명사다. 다른 가수도 마찬가지겠지만 박효신이 특히 유명한 건 특유의 완벽주의다. 스튜디오 녹음은 물론이요 방송이든 콘서트든 라이브를 할 때도 꼼꼼하게 모든 요소를 다 챙기는 뮤지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공연에 언제나 사람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다.
박효신의 히트곡은 여럿이지만 앨범 단위로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다음 작품이 돼야 마땅하다. 7집 〈I Am A Dreamer〉다. 글쎄. 세보지는 않았지만 이 음반에 대해 정말 자주 글을 썼다. 아무리 못해도 이 글이 5번째는 될 것이다. 중언부언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이 앨범에 품고 있는 애정의 총량이 그만큼 큰 거라고 여겨주기 바란다.
거론해야 할 곡이 여럿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음반의 투 톱이라 할 ‘야생화’와 ‘숨’의 존재감이 어쩔 수 없이 여타 곡들을 압도한다. 박효신표 발라드의 정점이라 할 이 두 곡에서 박효신은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이 왜 ‘왕’들 중 한 명인지를 증명한다. 중요한 게 있다. 이 곡들과 음반 전체에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7집의 박효신과 기왕의 박효신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어느덧 감정 과잉의 소몰이 창법은 완전히 사라지고, 정확하면서도 그것을 감정의 영역으로 끌어낼 줄 아는 보컬리스트가 탄생한 것. 우리는 통상 기술적 역량과 예술적 감동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주 가끔, 박효신 같은, 이 둘을 통합하는 위대한 예외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박효신의 팬들이 애정하는 곡은 부지기수다. 그중 공연에서 첫 곡으로 어울릴 만한 곡을 꼽으라면 역시 ‘Shine Your Light’일 것이다. 7집에 실린 이 곡은 서서히 고조되는 분위기를 통해 ‘이제 시작’이라는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기존 셋리스트를 보면 공연 중반부와 후반부는 ‘The Dreamer’나 ‘눈의 꽃’, ‘야생화’ 등이 맡을 때가 많았다. ‘숨’은 앙코르를 위해 아껴두면 좋을 것 같다.
다음은 이런 흐름을 바탕으로 설계해 본 박효신 셋리스트다. 딱 열 곡 뽑았다. 앙코르 ‘숨’까지 더하면 열 한 곡. 굳이 공연에 가지 않더라도 이대로 쭉 들어보면 박효신의 세계를 느끼는 데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