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구(SEZ; Special Economic Zone)는 국가경제성장 등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과 차별적인 규제 및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구역을 의미한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수출자유지역 등 특구 제도를 적극 활용했으며,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외자 유치를 위해 외국인투자지역(1998년), 자유무역지역(2000년), 경제자유구역(2003년) 등 다양한 경제특구를 운영해 왔다.
한편 광물자원 부국으로서 중남미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오고 있는 페루는 원자재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어 글로벌 경기변동에 다소 취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경제구조로부터 탈피해 외자 유치를 통한 경제성장을 꾀하는 페루 통상관광부의 수요를 바탕으로, 2022~2023년 페루 KSP(Knowledge Sharing Program)사업은 ‘페루 경제특구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를 위한 로드맵 수립’을 주제로 추진됐다.
KSP 사업은 한국의 경제발전경험을 공유하는 지식공유사업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발전경험이 모든 협력국에 적용 가능한 모범답안이 될 수는 없다. 협력국이 처한 환경은 한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던 당시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한국의 모든 경험이 성공적이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특구 선정 및 관리 경험도 마찬가지다. 이에 이번 사업은 한국의 경제특구 정책경험을 바탕으로 페루의 경제특구 발전 단계별로 적용할 수 있는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했다.
기초 인프라와 인센티브 제도 마련 및
앵커기업 유치, 옴부즈만 제도 도입 제안
경제특구 활성화에는 기업이 입주하기 매력적인 입지 여건인지가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입지 여건에는 ‘인프라 여건’과 ‘인센티브 여건’이 있는데, 기초 인프라 구축은 경제특구 활성화에서 무엇보다 선결돼야 하는 과제로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페루 조프라타크나(ZofraTacna) 경제특구에 입주해 있는 벽돌 제조기업 라드릴레라 맥스 관계자는 실태조사 인터뷰를 통해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철도나 컨테이너 시설 등 물류 인프라 지원이 절실함을 호소했다. 마타라니 경제특구 관계자 마르코 카스트로 씨도 “전력 부족 문제로 투자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며 “전력, 수도 등 기초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최초의 수출자유지역으로 항만 인근에 조성된 마산 수출자유지역이 최적의 입지 선정 사례로 소개됐다. 페루 수출협회 관계자인 후안 카를로스 레온 씨는 사업 최종보고회 토론 세션에서 특구 입지 선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운송비 절감이 가능한 공항이나 항만 인근 지역에 추가적인 경제특구 지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으로 경제특구 입주기업에 제공되는 인센티브 제도도 입지 여건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다. 페루의 경우 현재 그런 인센티브로 세제혜택이 유일하다. 이에 이번 KSP 사업에서는 임대료 감면, 금융지원 등 세제 혜택 이외의 다양한 인센티브를 소개했다. 아울러 현재 페루와 같이 개발 초기단계에 있는 경우에는 투자 재원 조달 여건과 산업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전방위적인 조세감면 인센티브가 유용한 반면, 개발 후반기에는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금융 지원 인센티브에 중점을 둬야 함을 강조했다.
단기과제로 기초 인프라와 인센티브를 통해 입지 여건을 개선했다면, 해당 경제특구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앵커기업 유치가 필요하다. 앵커기업은 특정 산업이나 경제 생태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규모 기업으로, 특구 내 앵커기업 유치는 다양한 기업의 연계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구 활성화에 효과적인 전략이다. 즉 앵커기업 유치를 통해 특정 산업 특화에 성공한 경제특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페루 생산부 루이 안토니오 그라시아 디아스 정책국장은 세부 실태조사 인터뷰를 통해, 생산부 차원에서 경제특구 활성화로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제조업의 고도화임을 피력했다. 페루의 경우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한 1·2차산업을 우선 특화한 후 점진적으로 부가가치를 증대해 제조산업의 고도화를 꾀할 수 있는데,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앵커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산업 고도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앵커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경제특구에 입주한 외국인 투자기업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병행돼야 한다. 이는 입주 여건 개선과도 일맥상통하는 데, 이번 KSP 사업에서는 관련 제도로 한국의 외국인투자옴부즈만 제도를 소개했다. 외국인투자옴부즈만 제도는 대통령이 직접 위촉한 단장으로 옴부즈만을 구성해 한국 내 다국적 기업이 제기한 고충을 해결하도록 돕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페루 조프라타크나 경제특구 관계자 멜리사 사마메 씨는 KSP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페루 정부의 행정 처리가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외국인투자옴부즈만 제도 도입을 통해 이런 고충을 처리·개선한다면 투자를 추가적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페루는 2018년 OECD 가입을 신청했으며, 2022년 2월 OECD는 페루를 비롯한 6개 국가의 가입 논의가 시작됐음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페루 통상관광부는 이번 KSP 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이전부터 경제특구 내에서 제공되는 조세 관련 인센티브 제도가 OECD 권고 기준에 저촉되지 않도록, 즉 유해조세경쟁(harmful tax competition)에 해당되지 않도록 하고 있음을 강조해 왔다.
기후변화, 식량안보 등
전 지구적 문제 대응하는 방향성도 제시
이런 상황을 고려해 OECD 기준 이외에도 기후변화와 식량안보,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등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대응하는 미래 방향성까지 포괄해 ‘지속 가능한 경제특구’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했다. 예컨대 페루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경제특구 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범 구역을 지정해 운영하는 등 경제특구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실험의 장’으로 활용할 것을 제언했다. 이 과정에서 새만금 특별구역이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센티브가 제공된 사례이자,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특구 운영 사례로 소개됐다.
2022~2023년 페루 KSP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 관련 내용은 통상관광부 장차관에게 수시로 보고됐을 뿐 아니라 대내외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다양하게 보도됐다. 더불어 협력부처인 통상관광부와 경제특구 관계자를 비롯한 페루 재정경제부, 생산부, 투자청, 리마 상공회의소, 수출협회 등 유관 부처 및 기관 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페루 내에서 이 주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시의성이 높은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번 KSP 사업의 최종 정책자문보고서는 페루 관계자에게 모두 배포됐으며, 향후 정책제언의 추진경과 및 성과를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로드맵은 특정 목표 또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경로를 의미한다. 페루 경제특구가 활성화돼 FDI를 유치하기까지는 선결돼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번 사업의 정책제언을 통해 제시된 발전 단계별 로드맵이 페루의 FDI 유치, 나아가 우리 기업의 페루 진출 및 양국 간 경제협력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