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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여울의 나란히 한 걸음살바도르 달리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여울 작가 2024년 01월호
 

볼 것이 넘쳐나는 대도시는 아니지만 한 예술가의 온전한 흔적이 남아 있기에 수많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들이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 스페인 피게레스가 바로 그런 곳이다. 피게레스는 바르셀로나에서 1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소도시지만, 살바도르 달리의 수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는 것은 물론 그의 유해까지 안장돼 있는 ‘달리 극장 박물관(Dali Theatre Museum)’ 덕분에 한겨울에도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한때는 폐허였던 피게레스의 오래된 극장을 살바도르 달리를 위한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달리가 직접 관여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이 박물관이 하나의 블록이나 미로, 또는 위대한 초현실주의적 오브제가 되기를 원했다. 마치 연극을 구경하는 것처럼 박물관 전체가 ‘살바도르 달리의 자서전’처럼 느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달리 극장 박물관은 나란히 늘어선 거대한 달걀로 장식돼 있는데, 달걀은 예수의 부활, 생명력, 완전함과 충만함을 상징한다. 한때는 도시를 대표하는 극장이었으나 이제는 살바도르 달리라는 한 예술가에게 헌정된 이 박물관에서 달리는 실제로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살바도르 달리의 유년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중에 화가로 데뷔했을 땐 그의 작품을 처음 공개적으로 전시한 장소다. 이후 스페인내전 당시 불에 타버려 폐허가 된 채로 남아 있던 이곳은 1960년 박물관으로 재건하기로 결정돼 1974년에 재개관하게 된다.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을 향한 예찬을 평생 멈추지 않았는데, 그의 나르시시즘적 성향은 그의 자서전 『달리, 나는 천재다-어느 천재의 일기』에서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깨어나면, 나는 최고의 기쁨을 경험한다.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 그리고 나는 그가 오늘 어떤 놀라운 일을 할 것인지 나 자신에게 묻는다.” “만족감이 너무 커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면 이렇게까지 확신에 찬 발언을 할 수 있을까.



호기심 가득한 천재 예술가

자신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으로 가득한 이 독특한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의 가장 크고 다채로운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피게레스 달리 극장 박물관이다. 달리는 당시 가장 혁신적이고도 파격적인 실험을 많이 한 아티스트로 유명했는데, 그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며 패션, 인테리어, 연극 무대감독, 가구, 설치미술, 주얼리 등 수많은 시각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작품 중 하나는 <메이 웨스트 립스 소파(Mae West Lips Sofa)>라는 작품이 있는 설치미술 전시실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미국 영화배우 메이 웨스트의 입술과 코, 눈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서 도톰한 입술은 매우 푹신하고 안락한 소파이기도 하다. 또한 여기엔 엘 그레코, 윌리암 부게로, 마르셀 뒤샹, 존 드 안드레아에 이르기까지 살바도르 달리가 수집한 다른 예술가의 작품들도 있다. 거대한 유리 돔 형태로 만들어진 큐폴라가 오래된 극장의 지붕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살바도르 달리는 마치 인생이라는 극장 맨 아래에서 그 모든 연극을 지휘하는 듯 무대 지하실에 묻혀 있다. 그의 작품 <비 오는 택시>(1938년)에서 영감을 받은 실물 크기의 캐딜락 자동차도 관람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는 『달리, 나는 천재다-어느 천재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수많은 예술가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영감을 받아 미술작품은 물론 수많은 일상 속 사물들을 창조해 왔다. 흘러내리는 듯한 시계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공예품이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고, 긴 망토, 지팡이,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 하늘로 치솟은 듯한 화려한 콧수염은 살바도르 달리라는 일종의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살바도르 달리는 말년에 큰 화상을 입어 죽음의 위기에 처한 뒤에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재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되며, 인류의 진보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 갈라가 죽은 이후에 극심한 우울증과 영양실조를 겪었지만, 그런 힘겨운 시간에도 끊임없이 창작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돈키호테』의 삽화를 그리는가 하면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사탕 ‘츄파춥스’의 브랜드 로고 이미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시각 이미지 거의 전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놀라운 호기심은 평생 그칠 줄 몰랐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과학과 수학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과 탐구열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흐르는 듯 부드러운 시계의 이미지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절대적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는 혁신적 이미지기도 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직후에는 그의 작품에 원자 입자 이미지가 나타나기도 했고, 1950년대 중반에는 DNA의 모습이 작품 속에 드러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그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담론들과 함께 성장하곤 했다. 예컨대 초현실주의 시대에는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내면세계나 무의식에 관심이 많았기에 꿈속의 이미지들을 주로 그렸고, 과학의 시대에는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저서들을 탐독하곤 했다. 당대인들을 매혹한 수학과 과학을 ‘그림’의 이미지로 옮겨놓는 것이 달리에게는 커다란 영감의 원천이 됐던 것이다.

꿈과 사랑을 찾아 결국 다시 돌아온 곳

살바도르 달리의 컬렉션을 관람하고 나서 피게레스 거리를 산책하며 옛 도시의 흔적을 더듬어봤다. 피게레스의 거리는 중세도시의 느낌이 아직 남아 있는 곳도 있고 현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곳도 있다. 피게레스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메모를 하고 있는데,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 지금은 어디에서 묵고 있냐는 물음이었는데, 한국에서 왔고 바르셀로나에서 묵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하면서. 나는 “피게레스도 너무 아름답고 살기 좋지 않냐”고 물었더니, 청년은 “물론 내 모든 것은 피게레스에 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처럼 큰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소도시에서는 아무래도 일자리가 다양하지 않다 보니 청년의 꿈을 펼칠 기회도 적어 보였다. 하지만 그 청년이 지금 당장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높은 주거비용과 물가 때문에 고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물가는 올라가는 전 세계 대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은 여행자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북적거리는 대도시보다는 아늑하고 예스러운 소도시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데, 적당한 숙소를 찾기 어렵거나 볼 것이 충분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대도시에 숙소를 예약하고 인근 소도시로는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소도시에 살면서 대도시로 힘겹게 출퇴근해야 하는 사람들, 지금은 소도시에 살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가고 싶은 청년들. 모두가 ‘내가 사랑하는 장소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거주했고 젊은 시절에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삶을 꿈꿨지만, 인생의 황혼기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꿈과 사랑을 찾아 그토록 많은 장소를 돌아다녔어도 그의 안식처는 역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내가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을 찾아 헤매는 이 지구별의 유랑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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