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오사AI 회의실 창밖으로 8차선의 시원한 도로가 펼쳐져 있다. 백준호 대표는 수많은 차가 엉키지 않고 신호에 따라 부드럽게 도로를 유영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반도체 설계는 도시를 설계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라고 말했다. 양쪽 모두 더 편리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인간의 삶을 고려한 아름답고 다정한 시도라는 이야기였다. 퓨리오사AI는 AI 애플리케이션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팹리스 기업이다. 백준호 대표는 퓨리오사AI가 AI 시대, AI 반도체로 세계시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백준호 대표가 퓨리오사AI를 설립한 건 7년 전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AMD에 다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삼성에 입사해 반도체 개발 업무를 한 후였다. “퇴사할 때 AI 반도체를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다만 AI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 관련된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 했죠.” 물론 반도체라는 아이템을 스타트업에서 다루기란 쉽지 않다는 점도 경험으로 짐작했다. 그렇게 동향을 살피며 학회를 찾아다니던 중 AI 반도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한 AI 반도체 분야
“제가 퇴사했던 시기 바로 그즈음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체할 인공신경망 반도체(NPU), AI 반도체가 막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힘들겠지만 시작 단계라면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또 뭔가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면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경쟁력이 있겠더라고요.”
무엇보다 반도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설계로, AI 애플리케이션에 요구되는 과제를 수행할 반도체 설계 핵심 인력이 자본이나 규모보다 중요하다. “설계의 경쟁력만 봤을 때 대기업이 무조건 유리하지는 않습니다. 설계는 영화로 치면 시나리오를 쓰는 일입니다. 아파트를 만든다면 시공은 대기업이 잘하겠지만, 새롭고 유니크한 설계는 대기업이 아니기에 더 잘할 수도 있지요.”
초고속으로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AI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는 확실히 스타트업이 유리했다. 의사결정도 빠르고, 소수의 인력이 집중해 깊이 탐구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가능하다. “생각해 보면 전기차시장을 선도하는 테슬라나 물류 혁신을 이룬 쿠팡, 챗GPT를 내놓은 오픈AI도 모두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가능성을 발견한 백준호 대표는 자신감을 갖고 퓨리오사AI를 설립했고 더 높은 목표를 세웠다. “탄탄한 기본기에 잠재력까지 갖춘 이들에게 설계를 맡겨 함께 성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과 데이터센터 등의 각종 인프라에 들어가는 고성능 AI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해당 영역은 북미 기업들이 잠식하고 있었다. 분명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품을 개발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선도하겠다는 열망이 크거든요. 다행히 새로운 목표에 동의하는 좋은 인재들이 퓨리오사AI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창업 후 7년이 지난 현재, 퓨리오사AI는 북미 사무실 직원을 포함해 130여 명의 탐험가들이 높은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고 있다.
1세대 양산 넘어 출시 목전에 둔 2세대 ‘레니게이드’는
지속 가능하고 경제적인 AI 구동 솔루션
퓨리오사AI의 칩 양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새로운 기술을 향해 탐험할 준비가 된 구성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퓨리오사AI는 지금 1세대 NPU ‘워보이’에 이어 2세대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1세대 제품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양산을 해냈다는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현대차의 포니 같은거예요. 지금의 자동차와 비교하면 단조롭지만, 포니가 있었기에 제네시스도 나올 수 있었죠. 1세대 출시를 통해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했고, 이제 2세대로 성과를 보여줄 것입니다.” 백 대표의 말처럼 2세대 NPU를 세상에 내놓는 2024년은 퓨리오사AI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퓨리오사AI가 한국의 엔비디아로 불리는 것에 대해 백준호 대표는 아직 먼 이야기지만, AI 반도체는 분명 글로벌시장을 목표로 나아가는 기술이라 말한다. “저희가 도전하는 분야는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제품을 개발한 것이기도 하고요. 현재 엔비디아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형세로, 그걸 쫓아가기는 분명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고성능 AI 반도체 칩을 개발하고 제품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인프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엔비디아를 넘어서겠다기보다 글로벌시장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세대 워보이를 고도화한 2세대 ‘레니게이드(가명)’ 출시를 앞둔 백준호 대표는 퓨리오사AI만의 유니크한 포지션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국내 인적자원의 수준이 매우 높아요. 비교하자면 BTS와 미국 아이돌처럼 엔지니어들도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보유한 실행력과 퍼포먼스 역량은 정말 뛰어납니다.”
퓨리오사AI가 선보일 2세대 칩은 글로벌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한 하드웨어 스펙을 갖췄다. “60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600억 개의 스위칭을 하는 디바이스들이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전 지구 인구의 12배가 넘는 소자들이 나노 세계에서 연결돼 있는거죠. 아름다워요. 섬세하고 예민한 공학적인 아름다움입니다.”
퓨리오사AI가 개발한 반도체는 AI 생태계에서 지속 가능하고 또 경제적으로 AI를 구동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AI는 앞으로 더 강력하게 우리를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일상 대부분에 AI가 활용 되겠죠. 그 과정에 저희가 개발하는 AI 반도체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반드시 위협적이어야 한다는 백준호 대표는 퓨리오사AI는 앞으로도 안전보다 도전을 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실패하지 않을 기본기, 절대 쉽지 않은 목표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 멘탈과 든든한 동료가 있다면 스타트업에 도전해 보세요.”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 퓨리오사AI 창밖 도로와 골목골목에 가로등이 켜졌다. 누군가 편리한 우리 삶을 위해 설계한 길들이 반짝였다. 앞으로 퓨리오사AI가 펼쳐낼 AI 반도체 역시 우리 세계를 빛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