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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이토록 애틋한 봄꽃놀이와 여성의 날
김혼비 에세이스트 2024년 03월호


기후위기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경고는 이른 봄꽃들과 함께 찾아온다. 언젠가부터 봄이 되면 친구들과 텀블러에 각자의 술과 차를 챙겨 봄꽃놀이를 하러 다니다 보니 봄꽃들의 개화시기에 민감한 편인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월에 나가면 충분했던 것이 매년 조금씩 앞당겨지기 시작하더니 재작년부터는 3월 모임으로 아예 바뀌고야 말았다. 며칠 전에는 뉴스 보도로 접했다. 올해도 평년보다 일주일가량 개화 시기가 빨라질 예정이어서 1963년에 시작된 국내 최대 벚꽃 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역사상 가장 이른 3월 22일로 개막일을 바꿨다고 한다. 이제는 봄꽃의 시절이 3월로 완전히 넘어온 것 같다.

‘봄꽃놀이’ 외에도 3월에는 ‘여성의 날’이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함은 어렵사리 잠시 제쳐두고 ‘봄꽃놀이’와 ‘여성의 날’을 묶어서 생각했을 때 저절로 떠오르는 3월의 책이 있다. 바로 조선시대 후기에 쓰인 고전 『덴동어미화전가』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은 오랫동안 사대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지만, 훈민정음이 보급되면서, 한결 쉽게 한글을 익힌 여성들도 가사문학에 자연스레 눈을 뜨며 직접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드디어 문학의 주체가 돼 그들의 목소리를 오롯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성들이 창작한 작품들을 ‘내방가사’라고 하는데, 그들은 내방가사를 통해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인습 속에서 살아야 하는 답답한 심정과 고뇌, 고된 시집살이의 고통들을 호소하기도 하고, ‘화전가’처럼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에 꽃놀이를 하러 나가 신나게 놀면서 유희로서 지어 부르기도 했다.

이 삼짇날은 남존여비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들의 바깥출입이 굉장히 엄격하게 규제됐던 그 시절, 여성들에게 공식적인 야외 나들이가 허용된 극히 드문 날이었다. 규중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동네 아낙들끼리 만나 화전을 부쳐 먹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쌓였던 이야기들도 실컷 나눌 수 있는, 단 하루의 자유라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과 회한이 교차하는 애틋하고도 애틋한 날. 말하자면 조선시대의 ‘여성의 날’이었던 것이다. 『덴동어미화전가』는 그런 화전가들 중에서도 문학성과 주제의식의 깊이 면에서 화전가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한 마을의 여성들이 비봉산에 모여 한창 화전놀이를 즐기던 중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겨워하는 어린 과부를 위로해 주기 위해 같이 놀이를 즐기던 덴동어미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려주는데, 그 서사 속에 그 시대 다양한 서민들의 생활상과 여성들이 전형적으로 겪는 불행들이 생생히 드러나 있고, 덴동어미가 온갖 고난과 좌절을 겪을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워주는 여성들 사이의 연대가 뭉클하게 담겨 있다.

덴동어미의 노래에 감화된 어린 과부가 마침내 용기를 내기로 결심하며 화답하는 화전가 속에는 그 자리에서 화전놀이를 함께 하고 있는 동네 여자들의 존재가 하나하나 소중하게 호명되고, 그중 한 여성이 또 다른 화전가로 화답하고, 마지막에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여성이 한마음으로 신나게 노래 부르다 아쉽게 헤어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그들에게 너무나 애틋했을 봄꽃들을 더욱 뭉클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전히 3월의 봄꽃놀이는 조금 어색하지만, 그래도 모두가 저마다의 봄과 저마다의 여성의 날을 마음에 품는, 그런 3월이 되기를.

설한풍에도 꽃 피던가 / 춘풍이 불어야 꽃이 피지 / 때 되기 전에 꽃 피던가 / 때를 만나야 꽃이 피네 / 꽃 필 때라야 꽃이 피지 / 꽃 아니 필 때 꽃 피던가 / 봄 바람만 들이 불면 / 누가 시켜서 꽃 피던가 / 제가 절로 꽃이 필 때 / 누가 막아서 못 필런가 / 고운 꽃이 피고 보면 / 귀한 열매 또 여나니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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