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높은 이자 수익을 누리며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전례 없는 속도의 금리인상으로 취약계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역대급 실적을 시현하면서 그 비난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5대 금융그룹의 2022년 이자 이익은 약 39조5천억 원을 기록했으며 2023년에는 이자 이익이 더욱 증가해 약 41조4천억 원에 이른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선진국 중 몇몇 국가에서도 고금리로 늘어난 서민의 이자 부담이 은행의 수익으로 직결됐다는 비난과 함께 소위 횡재세 도입까지 논의 되기도 했다.
경제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특정 업권이 과도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업권의 경쟁 구도를 살펴본다. 마찰적 요인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원론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완전경쟁시장의 장기 균형에서 기업의 이윤은 0이 된다. 그런데 은행이 이처럼 상당한 수준의 수익을 장기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시장에서 은행들이 다소간의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금리(가격)를 한계비용 이상으로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호황 지속되며 경쟁 촉진 나섰으나 결과는 기대 못 미쳐
이처럼 은행이 다소간의 시장지배력을 갖게 된 것은 정부가 인허가권을 바탕으로 은행의 시장 진입과 퇴출을 결정하며 시장 진출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허가권을 기반으로 은행의 과점적 지위를 용인하는 이유는 금융시장의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금융시장에서 금융기관은 다양한 연결고리를 통해 복잡한 상호연계성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일부 금융기관의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확산돼 실물경제에도 심각한 충격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국내로 전이되며 국내 금융시장에도 난맥을 초래했다. 이는 실물경제에도 파급돼 2008년 4분기 우리나라 경제는 계절조정 기준 전기 대비 3.3% 역성장하며 IMF 구제금융 이후 최악의 성적을 마주하게 됐다. 이처럼 금융시스템 안정성 훼손으로 야기되는 잠재적 피해는 매우 크기 때문에 은행의 시장지배력이 다소간 강화되더라도 일반적으로 정부는 시스템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적어도 은행권의 시스템 안정성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의 호황이 지속되면서 정부는 은행 경쟁도를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고민하고 시행해 왔다. 대표적으로는 은행의 추가 진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케이뱅크를 필두로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 등의 인터넷 전문은행을 도입한 것은 은행시장에 새로운 경쟁자 및 차별화된 사업모델이 출현함으로써 은행 간 경쟁이 촉진되고, 기존 은행의 인터넷뱅킹 서비스 개선 노력 등이 촉발돼 은행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향상되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은행대출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던 중신용자 대출 시장의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도입으로 전반적인 은행권 신용대출 접근성이 향상돼 기존에는 제2금융권을 이용하던 차주 중 일부가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성 향상은 주로 고신용층에 제한됐고 경쟁 강화로 인한 금리인하 혜택도 고신용 차주로 국한됐다. 심지어 저신용 차주가 받는 대출 중 일부에는 오히려 금리가 상승하는 결과도 관찰됐다.
일반적으로 안정적 과점시장이 형성돼 있을 때 각 사업자의 가격과 서비스가 유사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경제학에서는 의식적 병행행위라 일컫는다. 이것은 명시적이고 묵시적인 담합의 결과일 수도 있으나 자연스러운 경쟁의 결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은행의 경우 시장 참여자가 일정하고 서로의 행동을 관찰하기 수월한 상황이므로 경쟁 은행이 금리를 낮추는 등의 행위를 할 경우 이에 신속히 대응하기가 매우 용이하다. 또한 경쟁 은행도 이 사실을 숙지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은행들이 금리인하 노력에 적극적이지 않고 서로 간에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균형을 택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신규 인터넷 전문은행을 도입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시장 경쟁을 높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이는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금리 경쟁을 제한하는 마찰 요인을 줄여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은행에서 판매하는 대출 상품은 금리와 만기 조건만 동일하면 어느 은행에서 대출받든 큰 차이가 없이 매우 동질적인 상황이라 금리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은행시장 경쟁 구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먼저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제정하고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를 도입하는 등 대출금리 산정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해왔다. 또한 크게 기준금리, 가산금리 그리고 가감조정금리로 구성되는 대출금리를 구성 요소별로 분리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각 구성요소의 세부내역까지 공개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기존에는 각 은행을 돌아다녀야만 비교할 수 있었던 금리와 그 세부내역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업무 원가와 목표 이익률 등 민감한 경영정보까지 의무로 공표하게 하는 것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의 투명화가 경쟁 은행 간의 민감 정보 교환으로 이어질 경우 오히려 경쟁할 유인을 제한하거나 은행들 상호 간의 담합 행위에 대한 감시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담합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리 실시간 비교 가능한 대환대출
플랫폼 통해 금리 경쟁 기대할 만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 지난해 말부터 도입된 대환대출 플랫폼은 대출금리 구성요소의 세부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의 위험성을 회피하면서도 금리 경쟁을 제한하는 마찰 요인을 줄여줄 수 있는 정책으로 판단된다. 기존 방식의 대출금리 구성요소 공개는 이미 지난 시점의 금리를 보여주며 특정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금리가 아닌 평균 금리만을 보여준다. 반면 대환대출 플랫폼은 특정 소비자가 현시점에 적용받을 수 있는 실제 금리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온라인에서 손쉽게 금리 비교가 가능한 플랫폼은 은행 간 대출금리를 매우 수월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대환대출 신청으로도 곧바로 연계되므로 은행 간 금리 경쟁을 도모하기에 적합한 형태다.
아직 은행권 전체 자산 규모에 비하면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한 대환 실적이 크지 않기에 향후 정책의 결과를 속단하긴 어렵다. 다만 이번 금리인상 사이클에서 우리나라 은행권 시스템은 주요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음을 고려하면,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한 금리 경쟁의 심화가 당장에 은행권 시스템 안정성을 해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금융 시스템 안정성과 은행 경쟁 제고 간의 상충관계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스템 안정성만을 위해 금융시장의 효율성 손실을 감수하는 것,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 안정성을 해치는 것 모두 지양해야 할 바다. 이번 정책 경험이 우리나라 은행시장에서 시스템 안정성과 경쟁도 제고라는 상충관계 속에서 과연 적절한 지점은 어디일지 찾아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