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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여울의 나란히 한 걸음지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위인들의 무덤
정여울 작가 2024년 04월호
 


몇 년 전 나는 고흐의 발자취를 취재하기 위해 그가 머물렀던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아를에 갔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2019)를 쓴 뒤 고흐에 대한 에세이를 청탁받고 여러 가지 조사를 하던 중 아를에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의 삶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곳, 고흐 인생 최고의 발견과 최악의 트라우마가 공존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고흐는 아를에서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비로소 완성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흐 인생 최고의 발견이었다. 하지만 고흐는 고갱과의 다툼 끝에 자기 귓불을 자르게 된다. 그것은 그의 인생 최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드라마틱한 사건이 모두 일어난 장소가 바로 아를이다.

아를의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고 싶어서 간 그곳. 그런데 카페에서 거대한 기념식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자세히 보니 파리의 판테온에서 어떤 유명인의 유해를 안치하는 장면이었다. 대통령까지 나와서 성대한 행사를 치르는 듯했는데, 그 모습에는 여느 기념식과 다른 뭔가 특별한 성스러움이 있었다. 그날은 프랑스 최초로 ‘흑인 여성’의 유해가 판테온에 안치되는 날이었다. 그의 이름은 조세핀 베이커, 댄서이자 가수이며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투사이기도 했다.

흑인 여성이 처음이라니, 무려 2019년에 말이다. 프랑스는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국가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그런 보수성이 잠재하고 있다니. 도대체 판테온은 어떤 곳이길래 이런 화려한 행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것일까. 또 판테온은 얼마나 높디높은 장벽이 있었길래 이토록 유명한 조세핀 베이커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나서야 판테온으로 옮겨지고, 그 장면을 이토록 떠들썩하게 전국에 방영해 주는 걸까. 프랑스 대통령은 물론 온 사회가 그 행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예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빅토르 위고의 유해가 안장된 방을 집중적으로 보고 왔었다. 나는 다시 판테온에 가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나의 여행은 이런 식이다. 궁금증이 생기면 곧바로 여행 계획을 충동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위대한 프랑스 역사의 자부심

다시 찾은 판테온은 여전히 화려하고 웅장했다. 다른 관광지에 비해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어서 한적한 모습이었다. 사실 나는 이런 곳을 좋아한다. 역사적 중요도는 크지만 별로 붐비지 않는 곳. 한겨울 판테온에는 현장학습을 나온 몇몇 학생들만 있을 뿐 루브르박물관이나 오르세미술관처럼 마음 놓고 걸어가기도 힘들 정도의 인파는 없었다.

판테온은 고요하고, 장엄하고, 그러면서도 화려했다. 고요와 장엄은 익숙하지만 화려함은 판테온과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였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건축이나 장식의 화려함이 아니라 ‘위대한 프랑스의 역사를 향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판테온에는 그야말로 프랑스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 사람들만이 입성할 수 있다. 마리 퀴리처럼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라든지, 장례식 때 수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한 빅토르 위고 같은 대작가라든지, 에밀 졸라처럼 ‘드레퓌스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프랑스 사회를 향해 용감하게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라든지, 조세핀 베이커처럼 뛰어난 예술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용감하게 전쟁의 폭력과 싸웠던 사람이라든지. 그야말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만이 판테온에 입성할 수 있었다.

판테온에 들어왔다가 역사적 재평가로 퇴출당한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혁명 당시의 정치가 마라가 있다. 그리고 판테온에 들어가는 인물에 관한 심사 과정이 워낙 엄격하기에 아무리 뛰어난 업적이 있어도 입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판테온을 둘러보며 이렇게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 낸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감정은 끊임없이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해석하고, 마침내 오늘날에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는 프랑스 국민의 의지를 향한 경외감이었다. 단지 뛰어난 업적만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킨 사람들,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치유해 준 사람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 실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사람들이야말로 판테온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조세핀 베이커는 너무나 적절한 인물이었다. 프랑스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차별을 너무도 절절히 체험한 그야말로 프랑스의 관용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 사회라고 해서 모든 외국인에게 완벽한 관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흐가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오긴 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아를이나 오베르 쉬르우아즈 같은 곳 주민들이 갖고 있는 외지인에 대한 폐쇄성, 낯선 외국인 화가를 은근히 차별하는 주민들의 텃세였다.

물론 지금은 예술가들이나 과학자들은 실력만 있으면 차별은커녕 앞다퉈 환대받는다. 그토록 천재적인 실력과 재능을 갖췄으면서도 자국에서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하고 연구실 하나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퀴리를 받아준 최초의 연구소도 바로 파리에 있었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에 대한 온갖 차별로 고통받던 조세핀 베이커가 비로소 ‘해방된 느낌’, ‘자유로운 느낌’으로 마음껏 춤추고 노래하며, 레지스탕스 활동까지 할 수 있었던 장소도 파리였다. 바로 그런 프랑스인들의 ‘열린 마음’이야말로 여전히 프랑스를 전 세계 예술의 중심으로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판테온을 나오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와 알렉상드르 뒤마가 나란히 누워 있는 방을 한 번 더 보고 나왔다. 프랑스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판테온 내부. 왼쪽은 빅토르 위고, 오른쪽은 에밀 졸라, 중앙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유해가 나란히 한 방에 안치된 모습이 흥미롭다. 프랑스의 대문호 3총사가 전해주는 장엄한 이야기의 오케스트라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가 아무도 없는 밤이 되면 관 밖으로 살금살금 빠져나와, 서로 티격태격 ‘인류의 미래’에 관해 논쟁하는 장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작품을 읽는 독자가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죽어서도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듯이 말이다.

‘아름다운 무덤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프랑스의 묘지들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무덤이라고 무서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세련되게 가꿔져 있었다. 게다가 묘지 하나하나가 일종의 관광지처럼 각광 받고 있어서 더욱 놀라웠다. 페르 라셰즈 묘지나 몽파르나스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 등등, 위대한 예술가들과 역사적 인물들의 묘지로 가득한 파리는 미술관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묘지의 도시이기도 하다. 묘지를 둘러보는 것 자체가 역사 공부이자 흥미로운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파리에 있을 때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치 아는 사람의 묘지를 찾아가는 기분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묘지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물론 판테온은 더욱 특별하다. 묘지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박물관의 기능, 도서관의 기능, 역사 교육의 기능, 문화적 통합의 기능까지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인물들이 역사를 바꿨다’는 가르침을 주고, ‘나도 저런 인물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준다.

묘지가 ‘님비현상’을 낳는 한국과는 너무 다르게 묘지 자체가 멋진 관광지가 되고 아름다운 기념의 장소로 탈바꿈하는 이 멋진 장소를 또 한번 더 가고 싶어진다. 죽은 자들의 장소가 기피되는 도시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장소 또한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이나 위대한 건축물이 되는 그런 사회를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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