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등장은 AI 시대로의 본격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미래의 기술’로 남아 있던 AI가 ‘현재의 기술’로 탈바꿈해 실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문서를 작성하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은 소소한 사례에 불과하다. 신물질과 신약 개발 등 놀라운 과학적 성과를 낼 뿐 아니라 사람만이 할 수 있던 일을 하나씩 대체해 가고 있다. 그 결과 AI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전 세계를 휘감고 있고, 거의 모든 나라가 국가 차원의 AI 발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AI 기술개발에 상당한 정책 역량을 투입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AI 기술 수준은 2019년까지 일본보다 낮았으나, 2020년에 유사한 수준에 도달했고, 2022년에는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의 ICT 경쟁력에 비해 AI 활용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2022년 IBM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22%만이 AI를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평균인 34%보다 낮은 비율이다. 그나마 도입 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이어서 AI의 활용과 확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
산업혁명과 정보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 최종 승자는 기술을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잘 쓰는 나라였다. 그동안 한국은 기술 활용에서 확실한 경쟁우위를 보여왔다. AI 시대를 대비하는 우리의 국가전략도 기술력 확보 못지않게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AI 활용이 어려운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데이터 부족과 높은 컴퓨팅 비용이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보통 AI 프로젝트에서 70%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데이터를 모으고 준비하는 데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 힘들여 데이터를 확보하면 이걸 가지고 AI를 개발하는 데 또다시 천문학적인 컴퓨팅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뒤집어 생각하면, 데이터를 쉽게 준비할 수 있고 컴퓨팅 비용이 저렴한 나라가 AI 강국에 오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선진국들이 AI 연구개발 못지않게 AI 국가인프라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4월 ‘초거대AI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AI 시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AI를 활용 및 확산하고 운영하기 위한 국가인프라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민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막힘없이 공유되고 활용되도록 국가 데이터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의 접근성 문제, 비대표성, 부정확한 레이블링 등으로 인한 공정성 및 신뢰성, 편향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 줘야 한다. 둘째는 국가 컴퓨팅 인프라다. 우리 국민과 기업이 세계 최고의 컴퓨팅 자원을 가장 쉽고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인프라전략이 필요하다. 30여 년 전 정교한 국가전략을 통해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 환경을 구축했던 경험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AI 국가인프라를 갖추게 되면, AI 활용에 있어 준비 단계와 활용 단계에 들어가는 노력의 비율을 현재의 70 대 30에서 30 대 70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국민과 기업이 AI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생성형 AI의 특징 중 하나는 끊임없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통해 발전한다는 점이다. AI 국가인프라는 우리 정부와 국민, 기업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행착오’에 과감히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