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이 왜 필요할까?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70%로 설정한 반면 보험료는 소득의 3%만을 부과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로 시작됐다. 이후 우리 사회는 소득대체율을 40%로 인하하는 한편 보험료율을 9%로 인상하는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면 2054년쯤에는 국민연금 적립기금 고갈이 예상돼 국회나 정부, 연금 전문가들이 여러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험료율 인상 같은 모수개혁을 통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고자 하고 있다.
완전적립식 신연금 도입하면 2006년생 이후 세대에
15.5%의 보험료율로 현행 평균 연금급여 수준 보장할 수 있어
하지만 국민연금의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보험료율만 인상하면 보험료율 인상 이후의 세대는 납부하는 보험료와 기금운용수익에 비해 연금 수급액이 지나치게 적다고 느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모수개혁과 함께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연금에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크기 때문이다. 기대수익비가 1이라는 것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와 이를 적립한 기금운용수익의 합이 자신이 받는 연금급여 전체 규모와 같다는 뜻이다.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크게 약정돼 있는 기존의 연금구조와 함께 세대 간 형평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요인은 바로 저출산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모든 세대의 기대수익비 최대치가 1보다 클 수 없다.
공적연금 재정의 운용방식은 보험료의 원리금을 기금으로 조성해서 연금급여를 충당하는 적립식과 뒷세대의 보험료로 앞세대의 연금급여를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금이 적립되다가 소진되면 부과식으로 전환되는 부분적립식 구조다. 이러한 국민연금 운용방식으로는 보험료율을 현재의 9%에서 18%로 인상하더라도 2080년경에는 결국 전체 적립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되며, 지금의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려면 그 이후 세대의 보험료율은 결국 30~40%까지 인상돼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만약 보험료율이 35%로 인상된다면 현재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2에 가까운 것과는 다르게 미래 세대의 기대수익비는 0.5를 하회할 것(장기적으로 약 0.44)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래 세대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매우 낮은 합계출산율에서도 미래 세대에 기대수익비 1을 보장할 수 있도록 완전적립식의 ‘신연금’ 도입을 제안한다. 즉 미래 세대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 개혁 시점부터 납입되는 모든 보험료는 기존 연금기금과 구분해 신연금의 연금기금으로 적립하고 향후 기대수익비 1의 연금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완전적립식의 신연금제도에서 40%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은 15.5%로 계산된다. 2006년생 이후 세대는 15.5%의 보험료율로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고갈될 걱정 없이 기대수익비 1, 즉 현행 평균 연금급여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림〉 참고).
개혁 시점 이전에 납입한 보험료는 구연금 계정으로 분리하고 개혁 이전에 약속된 기대수익비 1 이상의 급여 산식에 따라 연금급여를 지급한다. 그러면 당연히 구연금에서는 재정부족분이 발생하게 된다. KDI가 계산한 재정부족분은 2024년 기준 609조 원이다. 신연금제도 도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을 일반재정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기에 빠른 속도로 일반재정을 투입해야만 재정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연금개혁이 5년 지체될 경우 일반재정이 부담해야 할 미적립 충당금은 869조 원으로 260조 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신연금이 기대수익비 1만을 보장하기 때문에 사적 보험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의견, 더 나아가 국민연금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연금제도의 국민연금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대부분의 국가에서 강제 저축 성격의 공적연금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것은 사회 안정을 위해 최소한의 노후 소득을 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노후 소득을 전적으로 개인의 자발적 저축에 의존할 경우 일부 고령층의 노후 소득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여러 국가의 경험이다. 이들 고령층을 보호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실적으로는 국민연금과 같은 대규모 기금의 운용수익률이 사적보험의 수익률보다 높다는 점도 이미 경험적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은 과거 10여 년간의 시장수익률을 11bp 상회하고 있다.
연금급여액이 운용실적에 따라 변동되는 DC형,
그중에서도 개인별이 아닌 세대별 계좌제 도입할 필요
한편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등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신연금의 재정안정성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연금 수급액을 보험 납부 개시 시점에 확정하는 확정급여형(DB형)에서 연금 수급 개시 시점에 확정하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DB형에서는 기대수익비 1에 맞춰 보험료를 납부하려면 연금가입자가 사망할 때까지의 기금수익률, 사망률, 임금상승률, 물가상승률 등에 대한 정확한 전망을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할 경우 기금이 고갈돼 미래 세대의 부담이 된다. 그리고 세대별로 기대여명이나 경제전망이 상이하기 때문에 기대수익비를 1로 맞추려면 출생연도별로 보험료율을 다르게 적용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출산율이나 경제환경이 예상에서 벗어날 때마다 개혁 논의를 반복하면서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것이다. DC형은 DB형에 비해 수십 년에 걸친 환경 변화로 발생하는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재정적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물론 DC형도 은퇴 시점에 연금급여 흐름을 확정하면, 여전히 예상치 못한 기금수익률 하락, 물가상승률 상승, 사망률 하락 등에 의해 연금재정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비해 첫째, 은퇴 이후에 주기적으로 적립액을 확인하고 연금급여 흐름을 재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실제 기금수익률보다 낮은 가상수익률에 따라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연금급여액을 제시·지급하고 가상수익률의 초과분은 신연금 내 완충 계좌에 적립해 충격에 대비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DC형 중에서도 스웨덴의 NDC(부과식 DC)형이나 개인계좌제 FDC(적립식 DC)형보다는 세대별(연령군별, 코호트) 계좌제FDC형 연금제도(CCDC; Cohort Collective Defined Contribution)를 제안한다. 일례로 1977년생들이 납부한 보험료는 1977년생 통합계좌에 적립 투자되고, 1977년생의 평균 기대여명이 90세라고 하면 1977년생 중 89세나 88세에 사망한 사람의 적립액이 세대별 사회적 연대에 의해 1977년생 중 91세, 92세의 생존자 연금급여로 이전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별 계좌제 FDC형 연금제도에도 현행 제도와 마찬가지로 개인 급여와 세대별 평균 급여 사이의 가중치를 조정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 또 DB형과 달리 DC형은 보험료율을 조정하면 그 비율만큼 연금급여 역시 변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보험료율 조정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 또한 적합한 보험료율 조정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
지금은 우리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해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가운데 세대 간 형평성과 국민연금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연금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KDI의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