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 자리에서 설명했듯이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면 소고기보다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먹는 게 낫다. 소고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량이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키우는 과정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소고기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좀 더 고약한 문제 제기도 있다. 지금 육식을 포기하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소, 돼지, 닭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도축하는 일을 불편해한다.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좁은 상자에 갇힌 채 살을 찌우는 닭의 환경을 염두에 두면 마음 편하게 치킨을 먹기는 쉽지 않다. 열악한 사육 환경에 똬리를 튼 해충을 제거하고자 뿌려대는 살충제 걱정은 덤이다. 인간과 같은 포유류인 소, 돼지의 사정도 닭보다 나을 게 없다.
환자 맞춤형 암치료에서 찾은 돌파구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과학자가 고민하는 대안이 바로 ‘배양육(cell-cultured meat 혹은 cultured meat)’이다. 현재 과학자는 실험실에서 소, 돼지, 닭의 근육 조직을 키울 수 있다. 근육 조직이라고 하니까 낯설지만, 우리가 고깃집에서 먹는 소, 돼지, 닭의 살코기와 똑같다.
만약 실험실에서 만든 배양육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면 아예 소, 돼지, 닭을 키우는 축산업을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 과학자와 그들이 주도하는 기업 여러 곳이 ‘육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축산업을 끝장낼 수 있는 궁극의 방법으로 추진하는 게 바로 배양육이다. [배양육 옹호자는 어감이 좋은 ‘청정 고기(clean meat)’를 선호한다.]
배양육을 둘러싼 과학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뜻밖에도 배양육의 돌파구는 암 치료제의 효과를 따져보는 과정에서 나왔다. 암 환자를 돌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혹스러운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테다. 분명히 다른 환자에게 효과가 있었던 치료제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암 치료에는 별반 도움이 안 되는 경우다.
만약 지금 의사가 특정 환자의 암에 투약하려는 치료제의 효과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가능한 선택지가 여럿이라면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파악해서 치료의 가능성을 높이고 나아가 효과 없는 약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 방법이 ‘오건-온-어-칩(organ-on-a-chip)’이다.
‘오건-온-어-칩’은 말 그대로 칩 위에 인간의 폐, 심장, 뇌 같은 기관을 올려놓은 것이다. 얼른 감이 안 올 테니 실제 사례를 보자. 2010년 하버드대의 한 연구소에서 개발한 ‘렁-온-어-칩(lung-on-a-chip)’은 인간의 폐를 칩 위에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인간의 허파꽈리(폐포) 세포와 모세혈관 등을 칩 위에 배양했다.
당시 한국인 과학자 허동은 박사(현재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주도해서 개발한 이 ‘렁-온-어-칩’은 인간의 폐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한다. 모세혈관을 통해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노폐물은 방출한다. 칩 위에 구현해 놓은 것이라서 생김새는 폐와 다르지만, 구성과 기능은 똑같다.
이런 ‘렁-온-어-칩’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흡연과 폐암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담배 회사는 인과 관계에 의문을 표시한다. 둘 사이에 원인(흡연)과 결과(폐암)라는 반론 불가능한 또렷하고 직접적인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인간을 상대로 한 실험이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증거를 내놓으려면 대조군과 실험군으로 폐의 상태가 비슷한 멀쩡한 사람을 나눈 다음에 한쪽(실험군)만 주야장천 담배를 피우게 해야 한다. 이런 인간을 상대로 한 생체 실험은 끔찍한 범죄 행위다. 담배 회사는 이 점을 노리고 저렇게 반박하곤 한다.
그런데 ‘렁-온-어-칩’으로는 이 실험이 가능하다. ‘렁-온-어-칩’을 여러 개 연결해 놓으면 실제 인간의 폐와 (모양은 다르지만) 똑같은 조직으로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렁-온-어-칩’이 담배를 피우게 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렁-온-어-칩’으로 흡연 실험을 했더니 폐가 망가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lung-on-a-chip’과 ‘smoking’을 검색하면 실험 영상을 볼 수 있다.)
여기 췌장암 환자가 있다. 앞에서 사용한 방법으로 암이 똬리를 틀고 있는 환자의 췌장을 칩 위에다 배양해 보자. 그렇게 배양한 칩 위의 췌장암 조직에 다양한 항암제도 투여하고 방사선도 쪼인다. 그다음에 그 환자의 췌장암세포를 죽이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처치 방법을 선택해서 실제 치료에 활용하면 말 그대로 환자 개인에 맞춤한 암 치료가 가능하다.
이렇게 폐, 심장, 췌장, 뇌 같은 기관을 칩 위에 올려놓은 방식으로 소, 돼지, 닭의 근육(고기)이나 내장을 3차원으로 배양할 수 있다. 결국 2013년에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배양육이 등장했다. 이제 이런 배양육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일만 가능해진다면 축산 농가에서 사육해서 얻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2030년 배양육이 온다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0년 싱가포르는 미국 기업 ‘잇 저스트(Eat Just)’가 생산한 배양육 닭고기의 시판을 승인했다. 먹을거리 대부분을 수입하는 싱가포르는 배양육을 활용해 2030년까지 식량자급률을 30% 정도로 높이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미국도 지난해 ‘업사이드 푸드(Upside Foods)’, ‘굿 미트(Good Meat)’ 두 회사의 배양육을 식품으로 안전하다고 판정하고, 시판도 승인했다.
현재 이들 기업이 시판하는 배양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시판 중인 배양육 닭고기를 놓고서도 현지 소비자가 가장 장애물로 여기는 것이 높은 가격이었다. 안전성(배양육이 대량 사육 닭고기보다 안전할 가능성이 크다)은 애초 고민거리가 아니었고, 한번 먹어본 소비자는 맛에서도 그다지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양육 대량 생산이 본격화하면 그 가격은 낮아질 수 있다. 상당수 시장전망 기관은 2030년쯤 되면 현재 대량 사육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와 배양육의 가격이 비슷해지리라 전망한다. 이때에는 배양육이 전체 육류 소비의 35% 정도를 차지할 것이라는 아주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이런 전망이 현실이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상당수 서민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배양육을 먹고, 소수의 부유한 사람은 청정 농장(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공들여 키운 소, 돼지, 닭을 도축한 자연산 고기를 먹는, 육식의 계급화가 진행될 수 있다. 마치 지금 유기농 먹을거리가 다소 비싼 것처럼.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뜻밖에도 인류가 오랫동안 해왔던 소, 돼지, 닭을 잔인하게 살상하고 그렇게 얻은 고기를 먹는 일 자체를 혐오스럽게 보는 문화가 정착할 수도 있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냐고? 아니다. 아주 빠른 시간에 개를 가족으로 여기면서 개고기를 먹는 전통 육식 문화가 인구 다수로부터 혐오스럽게 여겨진 상황을 보라. 가만히 육식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