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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우리는 조금씩 광신자들이다
김혼비 에세이스트 2024년 05월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살면서 지금까지 다단계 회사나 사이비 종교에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체 왜 사람들이, 심지어 명백히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들까지 저런 말도 안 되는 믿음에 빠져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일까.

의문의 답을 얻기 위해 한국을 거세게 뒤흔든 네 개의 사이비 종교 - JMS, 오대양,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 의 실체를 파헤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와 이 다큐멘터리의 미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착한 신도〉를 연달아 보는 것이 상황을 보다 구체적이고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미국의 언어학자이기도 한 작가 어맨다 몬텔이 쓴 『컬티시: 광신의 언어학』을 읽는 것은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들’이 광신에 빠져드는 이유로는 인간의 내면에서 가장 취약한 구석- 이를테면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이나 시련으로 파괴된 일상, 실존적 외로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삶의 부분들에서 느끼는 불안, 암담한 미래, 아주 간절하게 바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꿈 등 - 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집단의 술수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이 술수들은 (당연하게도) ‘언어’를 통해 이뤄지고 강화되기에(“언어가 없다면 신념도,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없습니다”-p.26) 이 책은 사람들을 매혹하고 부추겨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행동과 신념을 변화시키는 ‘광신의 언어’, 즉 ‘컬티시’의 비밀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현상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대사회 이곳저곳에서 발생하는 광신의 양상들과 이유들을 세밀히 파헤치는데,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같은 ‘본격 사기’의 영역을 넘어 뷰티·피트니스 사업, SNS 인플루언서, SNS와 광고 마케팅을 타고 흐르고 퍼지는 자기계발적 만트라(mantra, 주문)들처럼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영역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애초에 광신에 빠진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그들’과 ‘나’를 구분하는 것이 무색하리만치 나 역시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광신의 흐름에 이미 발을 깊이 담그고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마주하고 다소 충격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5부의 제목인 “당신의 삶을 바꾸고 몰라보게 근사해질 시간입니다” 같은 말에 혹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책에서는 요가와 크로스핏을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한국의 경우 열풍이었던 ‘바디 프로필’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내 의지로 나를 바꾼다’는 달콤한 자기계발 메시지, 그 ‘노오력’을 체감하게 해줄 하드코어한 운동 프로그램, 값어치 있는 몸을 얻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욕망,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와 서사, 이 강력한 조합들이 인플루언서들과 그들의 팔로워들의 ‘말’을 타고 얼마나 순식간에 확산됐는지. 

루어만이 피트니스광들에게서 찾아낸 주요한 ‘컬트’ 증상은 규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 인생 전반이 극적으로 나아지리라는 믿음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수업에 가고 만트라를 외우면, 눈 앞의 세상이 다르게 펼쳐지리라는 믿음 말이다. 이 집단, 이 강사, 이런 의례가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룩할 힘을 가졌다는 확신, 즉 과도한 이상주의다. 이런 믿음을 착취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p.286

어려서부터 자기관리·자기계발을 숭배하도록 길러졌고, 이미 믿고 있는 것을 교묘히 이용한 맞춤형 콘텐츠들의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컬티시: 광신의 언어학』은 결코 뻔하지 않게 독특하면서도 매우 시의적절한 가이드가 돼줄 수 있는 책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이토록 유쾌하게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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