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자전거를 꼽는 사람을 본다. 하나씩 따져보면 헛말이 아니다. 오늘날 자동차와 항공기 산업은 자전거산업에서 시작했다. 인류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도 원래는 자전거를 생산하고 판매했다. 최초의 비행기 부품 대부분이 자전거 부품에서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다음에 나온 자동차와 비교해도 자전거는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100kcal의 열량(에너지)을 소모할 때 자전거는 평균 4,800m를 갈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가 같은 에너지를 소비할 때 갈 수 있는 거리는 고작 85m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이 높다.
요즘 서울 한복판의 꽉 막힌 도심에서 출퇴근길에 자동차가 낼 수 있는 속도는 시속 10~20km 정도에 불과하다. 자전거를 웬만큼 타는 사람은 시속 30km 정도는 낼 수 있다. 애초 자전거 친화력이 컸던 유럽은 물론이고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따뜻한 봄날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겁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도대체 두발자전거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을까? 이 질문 자체가 이해 안 되는 독자라면 앞으로 펼쳐질 얘기를 정독하자.
지금이라도 당장 ‘bicycle history’를 검색하고 이미지를 살펴보자. (논란은 있지만) 1817년부터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자전거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자전거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랄 테다. 실제로 자전거가 처음 세상에 등장하고 나서 오랫동안 다수가 선호했던 자전거는 앞바퀴가 아주 큰 ‘하이휠(High Wheel)’ 스타일이었다. 오죽하면 하이휠 자전거를 부르는 이름이 ‘오디너리(Ordinary)’였겠나?
앞바퀴가 큰 자전거는 작은 힘으로 페달을 밟아도 빠른 속도로 나아가서 자전거를 스포츠로 즐기는 남성 라이더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19세기 대부분의 시기 동안 자전거는 젊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젊은 남성은 오디너리, 노인은 세발자전거!”)
비유해 보면, 당시 초기 자전거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은 요즘 오토바이 폭주족을 보는 시선과 비슷했다. 속도를 즐기는 자전거 애호가가 탄, 앞바퀴가 큰 자전거 여러 대가 마을을 통과할 때면 길가로 피한 주민은 욕설을 퍼붓고, 돌멩이와 모자를 던지고, 심지어 지팡이로 바퀴를 찔렀단다.
여성 라이더의 탄생
알다시피 오늘날 자전거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틀과 크기가 비슷한 두 바퀴와 공기 타이어를 가진 이른바 ‘안전 자전거(safety bicycle)’다. 자전거는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됐을까?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자전거로 한몫 잡아보려는 발명가·기업가가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공통의 고민거리가 있었다. 속도를 즐기는 모험심 강한 젊은 남성만 찾는 자전거로는 시장이 커지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시장이 커지려면 젊은 남성 외의 소비자를 찾아야 했다. 이들이 주목한 첫 번째 소비자는 ‘세상의 절반’ 여성이었다.
이렇게 여성을 자전거 소비자로 상정하고 나니 당장 당시의 표준 자전거였던 앞바퀴가 큰 하이휠 스타일의 단점이 또렷해졌다. 우선 하이휠 자전거는 위험했다. 빠른 속도의 하이휠 자전거는 도로의 작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을 때 라이더가 크게 다칠 위험이 있었다. 여성이나 노인에게 자전거를 판매하려면 안전 문제의 해결이 급선무였다.
사실, 민감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여성 대다수는 다리를 드러내지 않은 긴 치마를 입었다. 여성이 긴 치마를 입고서 앞바퀴가 큰 자전거를 타는 일은 불편할뿐더러 때에 따라서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민망한 일이었다. 앞바퀴 크기를 줄여야 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앞바퀴와 뒷바퀴 크기가 비슷한 자전거는 ‘안전’과 ‘치마 길이’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대안이었다. 새로운 라이더인 여성이 긴 치마를 입고서도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안전 자전거는 1898년부터 대세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앞뒤 바퀴의 크기를 비슷하게 한 안전 자전거는 진동이 심했다.
젊은 남성의 하이휠 자전거는 애초 진동이 문제가 아니었다. 젊은 남성 라이더에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의 진동은 속도에 덧붙는 또 다른 스릴 넘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 자전거가 여성, 나아가 어린아이와 노인에게 보급되면서 심한 진동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자전거산업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
바로 이 시점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수의사 존 보이드 던롭이 공기 타이어를 개발했다(1887년). 던롭의 공기 타이어를 안전 자전거에 장착하자 진동이 적어지면서 승차감이 나아졌다. 여기에 공기 타이어의 예상 못 한 뜻밖의 장점도 있었다. 공기 타이어가 안전 자전거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에도 이바지한 것이다. 안전 자전거가 완전히 하이휠 자전거를 대체하는 순간이었다.
자전거가 여성의 바지 문화를 낳지 못한 까닭
사실 앞바퀴가 작아진 안전 자전거 이야기는 기술(자전거)의 표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행위자(선수, 남성, 여성, 노인, 기업 등)의 욕구와 당대의 사회문화(치마 길이) 등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핀 트레버 핀치와 위비 바이커의 유명한 연구 사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오늘날 대세가 된 안전 자전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요인은 여성의 치마 길이였다. 하지만 앞바퀴가 작아지더라도 긴 치마는 자전거를 타는 데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반대로 자전거가 여성의 옷차림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유명한 소설 『나나』(1880년)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배우 겸 가수 블랑슈 당티니가 자전거에 기대선 초상화가 남아 있다. 놀랍게도 당티니는 이 초상화에서 치마 대신 무릎 아래만 바지처럼 조인 치마바지를 입고 있다. 이렇게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자전거는 여성의 옷차림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초부터 여성이 본격적으로 안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치마 대신 아예 바지를 입은 여성도 늘었다. 하지만 선구적인 소수 여성이 바지를 입고서 자전거를 타려는 시도는 대세가 되지는 못했다. 앞바퀴가 작아진 안전 자전거는 여성이 치마를 입고서도 충분히 탈 수 있었기에 다수 여성은 치마를 포기하고 바지를 선택하는 파격에 도전하길 주저했다. 역설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접한 자전거를 언급한 수많은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 하나를 소개하고 끝내겠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평소 자전거 타기를 즐겼던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란다. 그러니, 더 더워지기 전에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