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시평22대 국회, ‘붉은 여왕의 효과’를 기억하자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 2024년 06월호
1871년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편으로 전편에 비해 소설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여러 학문에 영향을 미쳤다. 그중 하나가 ‘경영학’이다.

거울나라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앨리스가 죽을 힘을 다해 달려도 제자리였다. 이때 붉은 여왕이 소리친다. “여기선 있는 힘껏 달려도 제자리란다. 만약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여기서 탄생한 경영학 이론이 경쟁기업에 비해 혁신과 변화의 속도가 느리면 시장에서 사라진다는 ‘붉은 여왕의 효과’다.

최근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시장에서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잘나간다고 하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도 실상은 살얼음판이다. 삼성전자가 톱클래스 반도체 기업이지만 TSMC, 인텔 등 세계 1위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가 도사리고 있고, 자동차산업도 벤츠, BMW, 토요타 등 쟁쟁한 기업들이 즐비하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우리 기업들의 베이스캠프 격인 국내시장의 규제환경과 정책지원이 외국보다 미흡한 것은 문제다. 경쟁 기업들과 같은 속도로 달려도 살아남을까 말까 한 적자생존의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KDI는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2050년 0.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일부에선 저출산과 신성장동력 부재로 우리나라의 저성장 기조가 이미 고착화됐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중 10년째 정도에 해당하는 침체기에 들어선 것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경제사정이 이렇게 엄중함에도 우리 기업이 처한 규제환경은 암담하다. 2024년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한 ‘한국의 글로벌 기업 아태지역 거점유지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외투기업의 42%가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규제환경’을 꼽았을 정도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도 산적해 있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 대기업집단 규제, 서비스산업 규제 등 외국에는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기업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엄격한 규제는 우리나라의 투자 매력도와 기업 경쟁력을 떨어 뜨리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기업 규모별 차별규제도 문제다. 지난해 6월 기준 기업 규모별 차별규제는 61개 법률에 342개에 달한다. 자산총액 5천억 원 미만 중소기업에는 57개 규제만 적용되는 반면 이를 넘어서면 183개의 규제가 적용된다. 비단 규제가 3배 이상 증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법인세 감면 혜택과 각종 금융지원 등도 모두 사라진다. 소위 ‘피터팬 증후군’을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두 배 더 빠르게 성장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기업들의 성장판을 차단하는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22대 국회는 미래 먹거리의 근간이 될 첨단기술 선점을 위한 패권경쟁이 한창인, 역사적으로 중대한 시점에 출범한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성장 펀더멘털을 회복해 저성장 구조를 탈피해야 하는 엄중한 소명을 부여받았다. 경제 발전과 기업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법안이나 정책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과감하게 내쳐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경쟁국들은 정파적 이익을 떠나 자국의 경제산업 발전에 사활을 걸고 경제의 주역인 기업을 과감하게, 때로는 과도할 정도로 지원하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22대 국회는 규제 개혁과 생산성 제고,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입법정책으로 우리기업이 두 배 이상 빨리 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이는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 그리고 풍요로운 국민 생활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22대 국회에 드리는 간곡한 부탁이다. ‘붉은 여왕의 효과’를 기억하자.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