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말로 ‘플랫폼’을 빠뜨릴 수 없다. 소비자는 일상에서 플랫폼을 이용해 경제활동을 하고, 기업은 자신들의 사업을 플랫폼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플랫폼의 영향력이 확대되다 보니, 그 부정적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EU의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과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이 대표적인 플랫폼 규제에 관한 법률이다. 영국에서도 유사한 법률이 통과됐고, 법안을 심사 중인 나라도 여럿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플랫폼 규제를 둘러싸고 찬반 논의가 거세다. 이 글에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플랫폼 자율규제와 그 개선방안을 찾아본다.
플랫폼 규제의 중요한 척도는
유사한 기존 거래관계에 대한 규제
플랫폼 규제에 대해 더 깊이 논하기에 앞서 플랫폼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흔히 플랫폼이라고 하면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통용되는데, 이는 큰 틀에서 볼 때 어긋나지 않지만 경제학적으로나 규제 관점으로 볼 때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플랫폼은 양측의, 혹은 그 이상의 이용자들이 만나서 거래하거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이다. 이렇게 정의할 때 플랫폼과 플랫폼이 아닌 것 간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소비자가 만나는 상대방이 누구인가에 있다. 플랫폼을 통해서 거래하거나 정보를 주고받을 때 소비자는 플랫폼 기업도 만나지만 다른 측 이용자도 만난다. 반면에 플랫폼이 아닌 곳에서 거래할 때 소비자가 만나는 거래상대방은 하나다.
예를 들어보자.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소비자는 슈퍼마켓 주인만 만나면 된다. 그 제조사 혹은 중간거래상을 직접 만날 일이 없다. 이는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또 대형마트가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몰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그렇다. 반면에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사면 오픈마켓 운영자를 통하지만 실제로는 판매자와 직접 거래를 한다. 이 점에서 오픈마켓은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와 구별된다. 다른 예로 소비자가 배달앱에서 주문을 하면 소비자는 배달플랫폼을 통해 음식점 주인과 직접 거래한다. 신용카드라는 플랫폼을 상기해 보면 조금 더 명확하다. 신용카드로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플랫폼인 신용카드는 거래를 보조할 뿐이고 상점 주인과 거래하는 것이다.
이제 규제에 초점을 맞춰보자. 먼저, 플랫폼과 입점업체의 거래에는 어떤 규제가 적절할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한 가지 척도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유사한 기존 거래관계에 대한 규제다. 오픈마켓과 유사한 대형마트는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납품업체와의 거래에 대해 규제를 받고 있다. 만약 오픈마켓에는 그러한 규제가 없다면 대형마트는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이는 오픈마켓으로 하여금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고 소비자를 오픈마켓으로 몰리게 해, 생산자가 대형마트에 물건을 납품하기보다는 오픈마켓에서 직접 물건을 팔고 싶도록 만들 것이다. 현재 대형유통업체가 경쟁에서 뒤처지는 데는 이러한 요소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오픈마켓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유통업법」에 비해 규제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보다 능력이 우수해서 경쟁 우위가 발생하는 것은 오히려 장려할 일이지만, 정부의 규제 차이로 경쟁 우열이 가려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플랫폼과 소비자의 거래는 어떻게 규제하는 것이 적절할까? 이 역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플랫폼이 아닌 온라인몰에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에 따른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자상거래법」은 온라인몰이나 통신판매업자로부터 물건을 사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규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오픈마켓 운영자는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팔지 않으므로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오픈마켓의 비중이 훨씬 더 커진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에 구멍이 생긴 셈이다.
이해관계자와의 합의 모색하기보다
피규제자 스스로 해결방안 찾도록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정부안으로 발의된 바 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2022년부터 플랫폼 자율규제가 추진됐다. 민간 스스로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22년 8월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출범했으며, 현재 갑을 분과, 소비자·이용자 분과, 데이터·AI 분과, 혁신공유·거버넌스 분과의 4개 분과로 나뉘어 운영 중이다. 그중에서 갑을 분과와 소비자·이용자 분과에서 결정된 자율규제 방안이 「대규모유통업법」, 「전자상거래법」의 역할을 한다.
자율규제는 정부 주도의 규제에 비해 상당한 장점이 있다. 피규제자는 대체로 정부에 비해 문제의 원인을 더 자세히 파악하고 있고, 어떤 해결방안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 적절한 대안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아도 되므로 거래비용도 감소한다. 스스로 마련한 방안이므로 순응도가 높고 정부의 집행비용은 줄어든다.
한편 단점도 있다. 피규제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보다 낮은 수준의 규제를 원한다. 자율규제를 악용할 여지도 있다. 이러한 단점이 발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하기도 하는데, 개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예컨대 성과기반규제, 원칙기반규제, 공동규제와 같은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의 플랫폼 자율규제는 공동규제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협의체 안에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협상에 가깝게 운영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법적 기반 제공 등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민간의 자율규제기관이 피규제자를 규제하는 공동규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규제대안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율규제의 장점을 희석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협상 중재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수록 자율규제의 장점이 발현되기 어렵다. 이해관계자가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되, 피규제자가 이해관계자와의 합의를 모색하기보다 적절한 문제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정부는 성과목표나 원칙을 제시하고 피규제자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편 플랫폼과 경쟁하는 다른 기업들이 규제로 인해 경쟁 열위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컨대 유통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플랫폼과 적절히 경쟁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물론 납품업체와 소비자의 후생도 고려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