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국내 공영 방송사에서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국내 대학 수학과 교수 및 항공 우주 분야 연구소 연구원들에게는 대학수학능력평가 수학 시험지를,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들에겐 영어 시험지를 제한된 시간 안에 풀어보게 했다. 채점 결과 만점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빠른 답 도출에 초점을 맞추는 우리 교육평가 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은 한 개인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이 형성되는 10대와 20대 초반에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사회의 문화와 행동 양식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교육의 목적이 인격 형성에 있다고 했다. 교육을 통해 형성된 인격을 갖춘 사람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정답보다 과정과 논리 중시하는 독일 교육,
업무 방식과 국가경제 활동에 큰 영향
교육이 사회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독일 교육현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필자가 20여 년 전에 독일에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여러 부분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먼저, 수학의 경우 풀이 과정에 점수가 매겨진다. 즉 정답을 맞혔더라도 중간 계산 과정이 틀리면 부분 점수가 차감되는 식이다. 반대로 정답은 틀렸더라도 계산 과정이 맞으면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정확한 풀이 과정을 알아야 하며, 답을 찍거나 유추해 내는 이른바 문제풀이 스킬은 활용하기 어렵다.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계산기를 사용한다. 유년 시절 구구단을 열심히 외운 덕에 전학 첫날부터 독일 친구들에게 한국이 굉장히 신기한 나라라는 인상을 준 기억이 있다. 독일에서는 계산 자체보다는 어떤 논리를 거쳐 그런 계산 과정을 도출했는지, 또 그 논리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평가한다. 빠르게 답을 내는 것보다는 정확한 논리로 사고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며, 이후 필요한 사칙 연산은 계산기에 맡긴다.
영어 수업은 말하기와 듣기, 즉 의사소통이 주를 이룬다. 실제 영어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진행된다. 물론 독일어와 영어가 언어학적 뿌리가 같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수업 방식은 무엇보다도 어린 나이부터 영어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 자체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영어 시험에는 객관식 문항이 하나도 없다. 글쓰기와 말하기 평가가 대부분이다. 영어로 된 지문이 주어지고 이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작성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다양한 어휘와 논리적 문장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당연히 시험관의 주관이 일부 들어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영어라는 도구를 활용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정리해 보면 독일 교육에서 정해져 있는 답을 빠르게 찾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답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논리와 과정을 가르치고 합의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둔다. 정답과 오답을 분별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이른바 ‘해답을 찾는 능력’을 키운다.
실제 독일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러한 교육적 배경이 업무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경험을 종종 한다. 예를 들어 특정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업무에 투입되는 담당자 간에 프로젝트 추진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즉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와 달성하려는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후 업무 순서나 과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업무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유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결과만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수학 수업처럼 결과로 나아가는 여러 논리와 합의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교육과 마찬가지로 일하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적재적소에서 상황에 맞게 처리하면 된다.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분야는 빠른 판단이 중요할 것이고, 장기적인 계획이나 내부 보안이 중요한 산업은 또 다를 것이다.
시간 걸려도 협의·합의의 민주적 절차 중시
아울러 교육이 업무 환경에 영향을 준 것처럼 교육과 경제활동에도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최근 독일경제는 여러 언론에서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0.3%)을 기록한 데는 독일의 과도한 관료주의, 부진한 제조업 등 내부 요인뿐 아니라 에너지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공급망 병목 현상 등 외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다만 독일 현지에서 느끼는 경제 위기에 대한 심각성은 그리 크지 않다. 내부적으로는 정책적·구조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일부 있지만, 한편으로는 독일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적 견고함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이런 믿음에는 장기적인 호흡으로 명확한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과 논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시스템도 주요 역할을 한다고 본다. 경제 성장을 이루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독일의 1인당 GDP는 지난해 기준 4만8,750유로(약 7,219만 원)를 기록했고, 함부르크, 뮌헨 등 대도시는 8만~9만 유로(약 1억1,800만~1억3,300만 원)에 달한다. 전체 GDP 규모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독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명목 GDP는 4조1,211억 유로(약 5,900조 원)로 집계됐다. 또 독일은 무역 강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 세계 교역량의 14%(2023년)를 차지하며, 무역 규모 순위에서 중국(27%), 미국(22%)에 이어 3위에 늘 오른다.
이처럼 독일의 견고한 경제력 뒤에는 지멘스, 바스프,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히든챔피언 기업 1,700여 개가 듬직하게 버티고 있다. 히든챔피언은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만든 용어로, 대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중소·중견기업을 일컫는다. 독일 히든챔피언협회(VDHC)에 따르면 전 세계 히든챔피언 기업 4천 개 중 1,700개 이상이 독일 기업이다. 무려 40%가 넘는 수치다. 이런 기업들이 독일 무역수지, 투자, 산업 생태계를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대외 요인도 개선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2년 7월 이후 1년 11개월 만에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소비심리도 개선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6월 독일 소비자신뢰지수는 4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완화에 따라 소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 구매력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의미다.
기업 분위기도 개선되고 있다. 독일 경제연구소(ifo)가 발표한 지난 5월 기업환경지수는 연초 대비 4.8% 상승했다. 다섯 달 연속 상승세인데, 조사에 참여한 약 9천 개 기업의 올해 하반기 경제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독일인들이 독일경제의 근본에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Made in Germany’가 품질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문구가 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정확하고 확실한 논의를 거친 후 장기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 따른 결과물이다. 다수의 의견 그리고 협의와 합의라는 민주적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은 앞으로도 EU의 경제력을 지탱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