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내내 따스한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는 곳, 일 년에 맑은 날이 300일 가까이 돼 눈비 걱정이 거의 없는 곳, 더울 때도 습하지 않아 그늘에만 들어가면 바로 시원해지는 곳. 그런 ‘꿈의 기후’를 지닌 곳이 바로 프랑스 남부의 도시 니스다.
꿈의 기후는 화가들이 동경하는 ‘꿈의 빛’과도 연관된다. 일조량이 많고, 낮이 길다 보니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파리처럼 여름에는 지독하게 덥고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는 곳은 그림을 그리기에도, 산책을 하기에도 힘겨운 시간이 많다.
‘자연’은 결코 유행을 타지 않는 최고의 테마다. 원하는 만큼 매일 그릴 수 있는 ‘자연’이라는 소재는 니스처럼 기후가 좋은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에 화가들에게 니스는 오랜 이상향이었다. 그래서일까. 니스에 오랫동안 머물다 간 화가가 정말 많다.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이브 클라인 등등, 니스에서 찬란한 자기 안의 빛을 발견한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일상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지극한 행복을 맛보았다.
지치지 않는 용기를 지닌 화가 마티스
사시사철 푸르게 반짝이는 바다 그리고 다채로운 꽃과 나무가 울창한 숲까지 공존하는 니스는 여행자의 낙원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천국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마티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마티스는 니스에서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았을 뿐 아니라 행복한 노년기를 보냈다.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마티스미술관을 비롯해 영원한 안식처인 묘지까지 남겼다. 나는 니스의 마티스미술관에서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며 우리가 흔히 마티스 하면 떠올리는 <군무> 같은 분위기 말고도 정말 다채로운 화풍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그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마티스는 니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빛나는 햇살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었다. 유화뿐 아니라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 건축에도 뛰어난 성취를 보였던 마티스는 니스에서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예술가들은 말년에 이르거나 지병을 앓으면 창작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힘든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마티스는 말년에 이르러서도, 병을 앓으면서도, 결코 우울함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몸이 약해져 유화를 그릴 힘이 없을 때도 색종이를 오려 창작할 정도로 낙천적이고 적극적이었다.
마티스는 창의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임을 알았던 작가였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저절로 펑펑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하는 용기, 실패 속에서도 뭔가 소중한 것을 배우는 용기에서 뿜어져 나온다.
화가는 단지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사물의 차이’를 그리는 것이기에 어제와 똑같아 보이는 장미도 절대 똑같지 않음을 ‘발견’해 내는 것이야말로 창조성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니스는 그런 ‘사물의 차이’를 발견하기에 너무 좋은 도시였다. 찬란한 햇살, 살랑거리는 바람, 사시사철 다르게 피어나는 꽃들의 아름다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가득 찬 오색찬란한 거리 풍경,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들,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거리를 걷는 사람들. 이 모두가 화가들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영감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겨울에 니스로 여행을 떠났다. 니스의 날씨는 내가 가져간 패딩 점퍼를 꺼낼 일이 없을 정도로 따뜻했다. 아침에는 약간 쌀쌀한 초가을 날씨 같고, 오후에는 반팔 셔츠를 입고 다녀도 좋을 만큼 따스했으며, 밤이 돼도 춥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막상 찬란하게 반짝이는 니스의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래도 아직 겨울인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결국 바다에 가까이 다가가서 손을 담가보니 살짝 차갑기는 했지만 건강한 사람이라면 수영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니스 사람들은 개방적이며 친절하고 다정했다. 빵집에서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살 때 “봉지를 줄까?”라고 묻는 점원에게 나는 에코백을 늘 가지고 다닌다고 했더니, “와우, 너는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며 칭찬을 해준다. 사실 니스에 갔을 때는 팬데믹이 막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혹시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있으면 어떡할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니스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고, 동양인에 대한 차별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항상 전 세계 여행자들을 쉽게 만나다 보니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친절한 마음’을 어렸을 때부터 습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스의 아침, 낮, 밤거리를 걸으며 빛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화가가 아닌 나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공기 속에 높은 건물도 거의 없어 하루 종일 하늘과 바다의 빛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우주의 총천연색 페스티벌에 참가한 기분이었다.
겨울이면 한국은 한파주의보가 뜨는데, 니스의 겨울에는 이처럼 온화하고 평화로운 날씨가 이어진다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름에는 타는 듯이 덥고 겨울에는 혹독하게 추운 한국의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드라마틱해 그곳에 사는 우리들은 날씨와 기후 변화에 무척이나 예민해지기 쉽다. 날씨가 좋고 하늘이 그야말로 ‘하늘색’으로 새파랗게 보일 때는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하늘마저 새파란 날은 일 년에 몇십 일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니스 사람들은 ‘이토록 온화한 날씨’를 부러워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를 찾는다면…
물론 예나 지금이나 명실상부한 예술의 중심지는 파리다. 하지만 화가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니스를 비롯한 프로방스 지방이었다.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서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며 오랜 탐색의 시간을 보냈고, 피카소는 니스에서 가까운 해안 도시 앙티브에 오래 머물며 또 하나의 피카소미술관을 남겼다. 샤갈은 니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샤갈미술관을 남기고 근처의 생 폴 드 방스라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영원한 안식을 구했다. 살기 좋고, 그림 그리기 좋고, 인생을 즐기기 좋은 아름다운 프로방스 지방에서 화가들은 예술과 일상이 비로소 하나가 되는 행복한 체험을 한 것이 아닐까.
니스에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부동산중개소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이는 사람들을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파리에서는 주로 호텔이나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 숙소를 구하는 여행자들이 많아 부동산중개소가 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니스에서는 1년 이상 장기 체류를 원하는 여행자가 많기에 부동산중개소가 그토록 붐비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건물의 인테리어와 월세 등을 꼼꼼히 비교하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부동산중개소 유리창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나는 어느 곳에 집을 구할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파리가 관광을 위한 도시에 가깝다면, 니스는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가 아닐까. 화려한 스펙터클이 가득한 파리에서 화가들은 매혹과 현기증을 동시에 느꼈고, 결국 조용하고 아름다운 프로방스 지방으로 거처를 옮겨 ‘자연 그 자체’를 거대한 아틀리에로 삼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리라. 나는 니스의 거리 구석구석을 걸으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대향연을 고요히 감상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이 끝내 자신의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피어나는 순간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