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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K인사이트지역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시급한 이유
김주훈 전 KDI 선임연구위원 2024년 11월호
수도권에서는 IT서비스산업이 노동집약산업 붕괴로 생긴 빈 일자리를 채웠을 뿐 아니라 기존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한 반면, 비수도권은 인근에 협업할 IT서비스업체를 찾기 어려워 디지털 전환이 지연됐다. 그 결과 균형을 이루던 지역총생산이 2015년 이후 수도권으로 편중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시작된 중국의 산업화로 우리 산업구조가 뿌리까지 흔들리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산업지형은 크게 섬유·전자조립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발달한 구로단지 및 그 인근 지역의 수도권과,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추진으로 형성된 울산·창원 등 동남권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지만 1990년까지도 수출의 최대 품목이 섬유제품이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성장 기여도는 노동집약산업이 더 높았다. 섬유와 신발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는 중화학공업화에 필요한 부품·소재·장비의 구입에 사용됐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인력이 유입되면서 혼잡비용이 커지는 고통이 따르기는 했지만, 생산성이 낮은 농촌 지역에서 생산성이 높은 수도권 산업단지로 인력이 이동함으로써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산업화로 노동집약산업들이 붕괴되고 수도권의 성장이 약화됐지만, 그 대신 중국의 산업화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 등 중간재를 생산하던 동남권은 전보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경제성장은 비로소 균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울산은 1인당 소득이 서울보다 높아지기도 했다.

2010년대부터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은 다시 한번 산업구조와 지역경제에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2008년부터 스마트폰이 보급돼 온 세상이 온라인으로 연결됐고 때맞춰 AI가 성공적으로 개발돼 대용량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각 산업의 정보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던 병목현상이 개선돼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증대되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각 차종별로 생산라인이 나뉘었고, 수요가 변화하면 인위적으로 차종 간 작업량을 조정해 줘야 했다. 그리고 자동차 수요량이 변화하면 철강공장에 일일이 주문 변경을 넣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AI를 활용한 제어프로그램이 작동돼 생산라인이 수요 변화에 동기화됨으로써 순식간에 자동으로 조정된다. 주문 변화 또한 온라인으로 연결된 철강공장으로 실시간 전달된다. 이 모든 것은 생산활동이 최적화돼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제품 단위당 생산비가 획기적으로 낮아지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그동안 생산비를 낮추려 개도국 생산지를 찾아다니던 선진국 기업들은 자국 내 생산지로 속속 회귀하고 있다.

청년들, 미래 기약하기 어려운 지방보다는
디지털화 진행되는 수도권에서 미래 찾아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들어 노동집약산업이 붕괴됐고 수도권에서는 그 빈자리를 소프트웨어 등 IT서비스산업이 채웠다. 정치 논리에 의해 도입된 수도권 공장 입지 규제는 IT서비스업체들의 입주에 날개를 달아줬다. 제조업체들과 공장부지를 놓고 경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섬유산업의 붕괴로 공동화돼 가던 구로단지는 IT 기반의 가산디지털단지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해서 소프트웨어산업 종사자의 80%가 수도권에 몰렸다(2020년 기준). 그 결과 수도권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높아진 IT서비스업이 성장과 일자리를 견인했을 뿐 아니라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존 제조업체들 또한 디지털 전환을 신속히 진행해 수도권의 성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에 반해 동남권을 비롯한 비수도권에서는 인근에 협업할 IT서비스업체를 찾기 어려워 디지털 전환이 지연되고 있다. 더욱이 주력산업이 지배적인 동남권에서는 중국과의 교역이 축소돼 성장이 더욱 위축되는 실정이다. 이 같은 변화 추세가 <그림>에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균형을 이루던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지역내총생산(GRDP)이 2015년 이후 수도권으로 편중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도 심화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주력산업이 포진한 동남권에서는 일자리가 남아돌고 인력난을 겪고 있음에도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구 유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이 당장 취업은 가능하지만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주력산업보다는 디지털화가 착실하게 진행되는 수도권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찾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면 동남권에서도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IT서비스를 중심으로 전면적인 산업 개편이 일어나야 할 것인가? 그럴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기존 주력산업을 디지털 전환해 생산성을 높이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본국 회귀가 진행되는 미국에서 수출이 거의 폭발적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수출 증가는 엔비디아의 GPU와 같은 첨단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재래산업의 상징 같던 철강산업이 연평균 18% 수준의 높은 수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생산성이 높아져 국제경쟁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주력산업들도 디지털 전환으로 경쟁력을 회복한다면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다. 다만 그동안 동남권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지연된 것은 주변에 협업할 IT서비스업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므로 이들을 유인하는 강력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은 지역 간 불균형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비수도권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이주해 일자리를 찾는 데는 성공하더라도 취업 후 가정을 꾸리기 위한 주거 마련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인구 유입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간 경쟁을 높여 집값 상승을 유발할 것이다. 2015년 이후 수도권의 GRDP 상승과 출산율 저하가 동시에 발생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 지체로
한국의 세계 수출 점유율도 저하

끝으로, 최근 세계 수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산업화 이후 처음으로 크게 하락하고 있어 우려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신산업의 창출에 그치지 않고 기존 산업들로까지 디지털 전환을 확산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동안 한국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지체된 결과다.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전환은 첨단기술을 활용한 신산업 창출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기존 산업의 디지털 변신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보호하며 지역 간 불균형을 시정하는 효과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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