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글쓰기 강의를 맡았을 때 수강생들에게 매 시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 주에 당신이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요?” 답은 대개 이런 식이다.
권은 사진으로 볼 때는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해 보여서 갔는데 실제로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했던 카페에 대해 말했다. 김은 핸드폰 그립톡에서 캐릭터 모양 장식이 떨어져 나가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보다 보니 장식 없는 그립톡의 모양이 투명한 고블렛 같아서 여전히 장식으로서 기능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유는 무심코 바라본 자신과 남편의 손톱이 평소와는 다르게 긴 채로 방치돼 있는 것을 보고 (중대한 일이 있었던) 지난 2주간 남편도 진짜 정신이 없었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 다 괜히 손톱을 잘랐다가 액운이 끼어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못 자른 거였다는, 그 2주간의 간절한 마음에 대해 말했다.
박은 부쩍 늘어난 모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사람 귀엔 거의 들리지 않는 ‘모기 퇴치 초음파 소리’를 유튜브에서 찾아 처음 들은 순간에 대해 말했다. 정은 유튜브에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에 크게 놀라 검색했다가 바퀴벌레와 쥐를 퇴치하는 초음파 소리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덕분에 숨어 있던 바퀴벌레 여덟 마리를 잡았다”는 덧글에 대해 말했다. 성은 지하철이 지상 구간을 지날 때 승객 모두가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쩌다 하나의 지점을 함께 바라보는 순간에 대해 말했다.
손은 무려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며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도 태연자약했던 무법자 남성이 길 위에 쓰러져 있는 어느 한의원의 입간판은 소중히 일으켜 세워주고 가는 걸 보면서 느낀 인간의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은 네일숍 앞을 지나다가 진열장에 무궁무진한 색깔의 매니큐어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에 놀라면서 저 안에 내 생각이 하나씩 담겨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은 건물마다 변기 물 내려가는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 버린 것에 어쩐지 억울해 하면서도 모양들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 보다 보면 어떻게 건물들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지는지를 어딘가 카프카의 소설 같은 톤으로 말했다. 미스터리 소설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윤은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말은 “너의 알리바이가 되어줄게”라고 말했고, 임은 그 말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나는 이런 작은 발견의 말들 위로 저마다 속한 세계의 일부가 쨍하게 비치는 순간을 사랑한다. 그 세계가 제각각 다 다르다는 것에 번번이 깜짝 놀란다. ‘사람 생각하는 거 다 비슷하다’ 같은 말은 정말 게으른 말이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얼마나 고유한지. 그 다채로운 고유함에 가끔 넋을 잃는다. 그리고 외로워진다. 이렇게나 다 다르니,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이렇게나 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니,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겠다고. 황벼리 작가가 쓰고 그린 고독하고 아름다운 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을 보면서 어쩐지 계속 그런 생각들을 했다.
매주 작은 발견들을 나누었던 강의실 안 사람들을 시작으로, 올 한 해 나를 스치고 간, 혹은 정통으로 통과해 간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한 순간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서로가 마음을 겹치려고 노력한 순간들도 떠올렸다. 그 노력이 만들어낸 찰나의 구원들이 아주 의미 없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니 앞으로도 그 ‘찰나’들을 잘 그러쥐자고, 책을 덮으면서 다짐했다. 한 해를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12월에 펴들기 좋은 책이다. 겨울 바다 같은 책이기도 하다. 고래들이 가만가만히 돌아다니는. 참고로 유튜브에는 고래 울음소리도 있다. 나는 모기 퇴치 초음파 소리 쪽이 더 좋지만.
꿈을 꾸는 사람들은, 비밀을 고백하고 싶은 밤에 재채기를 하면 그들의 비밀을 간직한 영혼의 일부가 우주로 날아가 별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별은 바다로 떨어져 고래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죠.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