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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양구의 과학토크알 수 없는 세상, 알 수 없는 인생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4년 12월호
지구촌 어디나 시끄럽지 않은 곳이 없다. 그 가운데 며칠간 가장 마음 아픈 뉴스 중 하나는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에서 일어난 물난리다.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발렌시아를 포함한 스페인 남동부에 닥친 폭우로 11월 10일 현재까지 200명 이상이 사망했고, 80명이 실종 상태다.

성난 발렌시아 시민은 홍수 경보를 늦게 발동한 지역 당국을 비난하면서 13만 명이 거리로 나와 항의하고 있다. 발렌시아 시청은 시민들이 항의 차원에서 던지고 묻힌 진흙으로 엉망진창이 됐고, 곳곳에서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이 넘쳐난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기후 위기가 심화할수록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이런 모습이 늘어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다. 올해 노벨상 중 물리학상(2명)과 화학상(3명)이 모두 AI 연구와 개발에 공을 세운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경제학상을 받은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AI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책(『권력과 진보』)을 최근에 펴냈으니 그나마 균형 감각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야 할까?

혹자는 최근 화제인 AI, 양자컴퓨터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보면서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일어난 참사처럼 자연재해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일 정도는 금세 사라지리라고 전망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현대 과학이 밝혀낸 사실은 정반대다. AI, 양자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해도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막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카오스 이론의 등장

20세기 때 소년, 소녀였던 이들이라면 ‘카오스 세탁기’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한때 인기를 끌면서 세탁기 광고에도 등장했던 카오스 이론은 적어도 과학계에서는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렇게 과학자들이 이 이론에 눈길을 두지 않는 이유가 흥미롭다. 카오스 이론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것이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외면받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과학계에서 전해오는 실험실 전설 하나를 살펴보자.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과대학 MIT가 있다. 1961년 겨울, 이 대학에서는 무명의 과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당시로서는 성능이 좋은 컴퓨터로 날씨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중이었다.

로렌츠는 날씨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변수 가운데 (지금으로서는 그 단순함을 비웃을 수밖에 없는) 열두 개를 추려서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렌츠는 몇 달 전에 작업했던 기상 예측 시뮬레이션을 다시 한번 검토하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분명히 로렌츠가 열두 개 변수를 같은 데이터를 갖고 입력했는데도 결과가 다르게 나온 것이다.

로렌츠가 발견한 문제의 원인은 뜻밖이었다. 그가 날씨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데 쓰던 컴퓨터는 데이터를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까지만 인쇄했다. 예를 들어 풍속이 시속 3.506127마일이라면 컴퓨터는 시속 3.506마일이라고 인쇄했다. 로렌츠가 반복해 데이터를 입력하고 시뮬레이션할 때 생긴 1만분의 1 정도의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바로 카오스 이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초기의 미세한 변화(오차)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냈다. 기온을 100만분의 1도 높이거나 기압을 1조분의 1바 올리는 것만으로도 두 달 뒤에 태풍과 허리케인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로렌츠의 발견은 흔히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로 불린다. ‘베이징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뉴욕에 허리케인을 일으킨다!’

다수의 과학자는 이 카오스 이론을 방정식으로 이렇게 기술한다. ‘초기 조건에 대해 지수 함수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운동.’ 여기서 말하는 지수 함수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기하급수로 증가”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하급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에게 왕이 소원을 한 가지 말하라고 했다. 그래서 장군이 첫날은 1원, 다음 날은 2원, 그다음 날은 4원, 이렇게 두 배씩 상금을 달라고 말했다. 처음에 장군의 소원을 듣고서 왕이나 다른 신하는 비웃었다. 그런데 두 달(60일)이 지나고 나면 115경2,921조…원이 된다. 왕이나 다른 신하는 기하급수의 무서움을 몰랐다.

카오스 이론이 말하는 세상의 중요한 진실

다수의 과학자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많은 현상이 바로 이 카오스 이론, 정확히 말하자면 지수 함수대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금 시점에서 2주 후의 날씨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모든 변수를 확보했다고 치자. 심지어 그 모든 변수를 처리해 2주 후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신의 컴퓨터’도 있다고 하자.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바로 그 시점에 컴퓨터를 가동하느라 생긴 열 때문에 대기에 미세한 온도 상승이 일어난다. 카오스 이론대로라면 그 포착하기조차 어려운 미세한 온도 상승의 오차가 2주 후의 날씨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상학자조차도 기상청의 2주 후 날씨 예보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날씨만큼이나 수많은 변수와 욕망이 충돌하는 주식시장의 예측이 어려운 이유도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된다. 오늘 어디선가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해 1주일, 2주일, 한 달 후에 주가의 상승과 폭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해 실시간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카오스 이론이 이렇게 세상의 진실을 말하는데도 과학자가 외면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카오스 이론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정보(변수)를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는 다소 씁쓸한 진실을 말한다. 카오스 이론을 아무리 연구해 봤자 인류의 한계에 쐐기를 박을 뿐이다. 이러니 누가 연구비를 대고, 누가 연구하겠나.

저마다 다르게 추억할 2024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카오스 이론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80억 명이 넘는 사람이 부대끼는 이 세상도 카오스 이론을 따른다고 믿는다. 연말연시마다 새해 트렌드를 예측하는 수많은 책이 쏟아지지만 1년이 지나고 나면 맞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삶의 지혜는 무엇일까. 내가 지금 하는 고민과 선택과 실천이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돼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남아시아 빈민촌 아무개의 고민과 선택과 실천이 1년 후, 10년 후, 심지어 20년 후에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지금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는 이 글은 당신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될까.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인생은 흥미롭고 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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