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디 뮤지션·밴드의 스타 등용문이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대한민국 예능의 전설, <무한도전>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매년 주최하는 ‘가요제’로 여러 인디 뮤지션이 더 큰 세상과 소통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10cm, 장미여관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정형돈과 ‘멋진 헛간’이라는 곡을 발표한 밴드 혁오가 있다.
기실 혁오는 <무한도전> 출연 전부터 인디계에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다. 밴드 혁오가 <무한도전>에 나왔을 당시 인디에 익숙한 사람 대부분이 ‘전혀’ 놀라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그들이 대세였던 까닭이다.
딱 하나만 먼저 수정하고 싶다. 기이하게 혁오를 ‘혁오 밴드’라 부르는 사람이 폭증했다. 틀린 표현이다. 혁오는 그 자체로 밴드다. 혁오(가 중심인) 밴드가 아니다. 리더인 오혁을 중심으로 임현제(기타), 임동건(베이스), 이인우(드럼)의 4인조 라인업이다. 따라서 ‘밴드 혁오’라고 불러야 한다.
혁오는 2014년 EP <20>으로 데뷔했다. EP는 Extended Playing의 약자로 4~5곡이 수록된 앨범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미니 앨범’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음반 수록곡 ‘위잉위잉’이 조금씩 화제를 모으면서 스타 탄생을 예감케 했다. 이후 혁오는 1년만에 새 EP <22>를 공개하면서 저 유명한 아이유도 애정하는 밴드가 된다.
그렇다. 바로 이즈음이었다. 혁오는 2015년 8월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 섭외되면서 전국구 밴드로 거듭났다. ‘위잉위잉’을 비롯해 ‘Ohio’, ‘와리가리’, ‘Hooka’, ‘TOMBOY’ 같은 곡이 공중파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10대와 20대는 그들의 국제적인 감각에 열광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혁오의 음악에서 우리는 한국적인 계승을 거의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혁오 음악의 핵심 성공 키워드다.
이는 밴드 리더이자 음악의 주재자인 오혁의 성장 배경과 관련 있다. 그는 외국에서 성장한 뮤지션이다. 한국에서 받은 영향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밴드 혁오의 음악에서 속칭 ‘뽕기’를 거의 만날 수 없다. 하긴, 이건 단지 혁오만이 아니다. K팝만 들어봐도 이미 보편화된 흐름이다. ‘뽕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인디, 메인스트림을 막론하고 흘러간 지 오래다.
혁오의 국제적인 감각은 협업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2024년 그들은 대만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와 라는 타이틀로 합작한 앨범을 공개했다. 이 음반, 정말이지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행여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한다면 기우다. 단언컨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세련되면서도 절묘한 두 밴드의 합을 마음 편히 즐기면 된다. 혁오의 앨범 전체가 그렇다. ‘이것이 바로 지금 밴드의 음악이구나’ 하는 자세만 있다면 아무런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가끔씩 요즘 음악에 지나치게 겁먹는 사람을 만난다. “어려울 것 같아요”, “제 나이에 괜찮을까요?” 싶은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편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이해한다. 이럴 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음 언급이 나침반이 돼줄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하다는 것은 새로운 영감이 문턱까지 와 있음을 뜻한다.” 같은 논리로, 그런 사람들 중 조금의 용기를 내서 새로운 음악을 경험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의 독후감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