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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평소통과 협력의 새해 되길
고영선 한국교육개발원장 2025년 01월호
새해가 시작됐다. 올해 일어날 많은 일들 가운데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많기를 바란다. 특히 우리 경제가 안정되고 꾸준히 성장해서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빈곤은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속도로 성장해 왔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 제임스 로빈슨, 사이먼 존슨에 의하면 경제성장의 비결은 정치·경제·사회 제도의 포용성(inclusiveness)에 있다. 모든 국민이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그 과실을 온전히 자기 손에 쥘 수 있는 체제(포용적 체제)인지, 아니면 권력자들이 그 과실을 모두 빼앗아 가는 체제(착취적 체제)인지가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독일의 철학자 하노 사우어는 인류의 발전과정을 신뢰관계의 확대과정으로 본다. 우리가 원시인이었을 때는 서로 소통하고 믿고 협력하는 사회의 범위가 가족 단위나 부족 단위에 그쳤다. 이후 점차 그 범위가 커졌고 마침내 근대에 이르러 국가가 형성됐다. 그리고 현대에는 신뢰관계가 국가 간에도 구축됐다. 이러한 신뢰관계가 있어야 협동이 가능하고, 협동이 가능해야 개인은 이룰 수 없는 훨씬 큰 것들을 이룰 수 있다. 기업은 개인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며, 시장은 개별 기업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룬다. 또 국제 무역은 개별 국가 단위의 시장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룬다.

이러한 정치적·사회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경제가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순항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간에 소통과 협력과 신뢰가 잘 이뤄져야 한다. 어느 집단이든 기득권을 내세워 다른 집단에 돌아갈 몫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또 서로 믿고 협력해 개인이나 개별 집단이 이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이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은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고령화로 국가재정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인데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은 미뤄지고 있다. AI의 발달로 산업 지형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와 가치관 충돌로 규제개혁은 속도가 더디다. 우리나라는 우버가 허용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지식경제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대도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구태의연한 행정·재정 체계가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수도권 확대 억제 정책, 지역 간 나눠먹기식 재정지원, 책임과 자율이 부족한 지방자치제 등은 결국 우리 경제 전체 성장뿐 아니라 지역 거점도시의 부상도 좌절시킬 것이다.

노동시장에서는 근로자 권익 보호라는 명분으로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안정을 오히려 해치는 정책과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국가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노동시장 법제와 관행을 어떻게 고쳐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노동계 내에서 많지 않다. 교육 분야에서는 교육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 간의 불신과 갈등이 위험 수준을 보이고 있다. 낡은 규제와 관료적 통제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에 안주하는 구성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외교 분야에서는 규율에 입각한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무력(武力)과 내셔널리즘이 이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해묵은 역사 논쟁이 냉정한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

새해에는 이런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놓고 전 국민이 함께 논의하며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있다면 이러한 소통과 협력의 재발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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