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등이 쓴 『노이즈』를 마흔 명의 신청자와 함께 읽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카너먼이 2024년 3월에 세상을 떴으니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저서다. ‘잡음(noise)’이 우리의 판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핀 이 책의 앞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부분 사람은 대체로 아무 의심 없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으며 산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세상을 본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소박한 실재론(native realism)이라고도 하는 이런 믿음은 타인과 공유하는 현실감각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이런 믿음에 거의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사람들에겐 어느 때나 자기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단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보통 그것을 대체할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는 데에 조금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의 해석이면 충분하고,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을 경험한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인생을 살아가진 않는 것이다.”
평소 음모론을 설파하는 특정 성향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과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누구나 인용문처럼 “자기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단 하나의 해석”만을 맹신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태가 어떨 때는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에도 커다란 해가 된다. 공교롭게도, 이 대목을 읽은 날이 12월 3일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뇌 운동
이런 소박한 실재론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저마다 여러 답변이 떠오를 테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 일이다. 누구나 권하는 일이지만 사실 실천하기는 어렵다. 일단 자기 주변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자주 교류하는 지인은 어떤 식으로든 공통점이 차이점보다 많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는 일은 유쾌하기보다는 불편하니까. 소셜 미디어의 AI 알고리즘은 이런 상황을 더욱더 심화한다. ‘친구’, ‘맞팔’ 등으로 맺어진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도 대체로 비슷한 성향으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뜻밖에도 효과가 검증된 손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책 읽기, 즉 독서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웃는 독자가 있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평생 책과 친해져야 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성인이 되어 과학 칼럼에서까지 책 읽기 타령을 들어야 하느냐고. 하지만 책 읽기는 정말로 힘이 세다.
귀에 혹할 만한 얘기부터 살펴보자.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가 뇌 건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증거가 쌓이고 있다. 일본 도호쿠대에서 한 기업과 산학협력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직장인 참가자의 창의성을 테스트할 시험지를 만들어 일차 평가를 했다. 그러고 나서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빙벽』을 나눠주고 한 달간 읽기를 권했다.
한 달 후 참가자 가운데는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도 있었고 책 읽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연구진은 참가자를 ‘독서 완료군’과 ‘독서 미완료군’으로 나누고 나서 이차 평가를 한 후 일차 평가 결과와 비교했다. 어땠을까? 예상할 수 있듯이 ‘독서 완료군’은 창의성 테스트 점수가 올랐고, ‘독서 미완료군’은 변화가 없었다.
독서가 뇌의 노화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될까? 정말로 도움이 된다. 책을 읽으면 뇌의 특정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사용한다. 책을 읽을 때는 흔히 사고에 사용하는 뇌의 앞부분 측면과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뒷부분이 동시에 반응한다. 또 기억에 관여하는 뇌의 뒤쪽 아랫부분도 책을 읽으면서 얻은 정보에 자극을 받는다.
이렇게 책 읽기가 뇌 운동이라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까? 국내외의 다양한 연구 결과는 고개를 끄덕인다. 매일 한 시간씩 꾸준히 독서하면, 통상적으로 치매 유병률이 20퍼센트 정도 낮아진다. 여기서 말하는 독서는 책, 신문, 잡지 등을 읽거나 직접 글을 쓰는 활동을 뜻한다. 한 시간을 온전히 내기가 어렵다면 하루 20분씩 세 번을 쪼개도 무방하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도 독서의 효과가 있을지를 놓고서는 연구 결과가 엇갈린다. 다만 미국과 일본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짧은 글을 소리 내서 읽게 한 연구 결과가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소리 내 책을 읽은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이 회복됐다(건강한 사람도 일정 시간 소리 내서 읽는 일이 눈으로만 읽는 묵독보다 뇌 운동에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만약 이런 연구 결과가 쌓여서 치매 치료의 한 가지 방법으로 인정이 된다면 그 자체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이 연재에서도 살펴봤듯이 치매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제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짧은 글을 소리 내서 읽는 일은 돈도 안 드는 일이니, 효과만 검증된다면 얼마나 긍정적인가.
책과 친해지면 생기는 일
여기까지만 읽고서도 새해부터 책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 독자가 분명히 있으리라. 이제 글머리에서 던진 화제에 집중해 보자.
나는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효능이 다양한 삶을 간접 경험하는 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자기 소설 중에 청소년에게 먼저 권하는 책이 『소년이 온다』라고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쓴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세대를 초월해서 그 시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보통 남성의 약 5퍼센트 정도가 잠재적인 동성애 성향이 있을 것이라는)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면, 일상생활에서 성소수자와 맞닥뜨리는 일은 쉽지 않다. 만약 2022년 (노벨상과 함께 권위를 인정받은) 부커상 후보로 올랐던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에 실린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단편소설을 읽는다면,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상당히 넓어진다.
『이완용 평전』 같은 뜻밖의 책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처럼 평범한 서민이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을 경험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가장 세계 정세에 밝고 똑똑했던 이완용이 매국의 길을 선택한 과정을 간접 경험하는 일은 분명히 우리에게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소박한 실재론에 빠지지 않으려면, 즉 듣는 대로 보는 대로 생각이 굳어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일을 피하려면 다양한 종류의 책과 친해져야 한다. 덤으로 뇌 건강과 치매 예방까지 기대할 수 있으니 책 읽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 연재에서 2023년의 명상, 2024년의 간헐적 단식과 운동에 이어 새해 1월에 건네는 또 다른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