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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혁신을 만나다항공 예약 혁신으로 날아오른다
김성휘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기자 2025년 01월호


사드 배치 파장(2016년)과 코로나19 팬데믹(2020년)은 여행업계, 특히 중국 등 아시아를 무대로 하던 기업에는 심대한 악조건이었다. 그때 쓰러진 기업도 다수다. 인적·물적 기반이 약한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글자 그대로 ‘비상(非常)’ 조건을 극복하고 오히려 높이 ‘비상(飛上)’하려는 혁신기업이 있다. 항공권 솔루션 기업 ‘누아’다. 

누아는 여전히 사람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한 항공권 예약 업무를 디지털화하고, AI를 접목해 자동화·고도화하는 혁신기업이다. 최근 투자불황기에도 130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해 화제다. 2025년을 한 달 앞두고 서울 세종로의 누아 사무실에서 서덕진 대표를 만났다.

항공 예약, 어떻게 하세요?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간다고 가정해 보자. 고객은 여행사.-.항공사라는 단계를 거쳐 항공권을 예매한다. 항공권을 예약한 다음, 출발 전에 오는 체크인 문자를 통해 좌석을 지정하곤 한다. 시간을 더 예전으로 돌리면 고객은 여행사를 직접 찾아가 원하는 일정에 항공편이 있는지 물어야 했다. 직원은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운항일정을 확인했다.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이런 조건에서 취소나 변경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각종 업무가 디지털화하면서 GDS(항공 예약·판매 시스템)가 구축됐다. 현재 서너 곳의 글로벌 GDS 기업이 이 업무를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GDS도 한계가 있다. 좌석정보는 좌석정보대로, 운항 스케줄은 스케줄대로 다른 소스에서 정보를 불러온다. 그 대안이자 보완방안으로 떠오른 게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개발한 NDC(신항공권 유통 기술표준)다. 차세대 유통 기술로도 불리는 NDC는 운항, 운임, 좌석 등 데이터를 보유한 항공사의 시스템을 통해 티켓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항공사의 운항 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대응하거나 좌석 예약 외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누아는 이 같은 NDC 기반 자동화 솔루션을 여행사뿐 아니라 항공권을 판매하려는 금융사 등 비여행업계에 제공한다. 대표적인 게 ‘누아 애그리게이터’와 ‘누아 오피스’다. 누아 애그리게이터는 항공사와 여행사 등을 직접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다. 누아 오피스는 여행사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솔루션이다. 이를 통해 항공권 예약·발권·변경·취소 등의 과정을 자동화하고 여행사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다. 중소형 여행사도 이를 이용하면 업무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NDC는 실시간으로 변경·취소를 할 수 있도록 항공사 데이터를 API 형태로 자동화해서 지원해 주고, 좌석과 기내식도 결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면세품의 경우도 출국할 때 산 다음 해외에서 들고 다닐 필요 없이 귀국편에 바로 실을 수 있을 겁니다. 고객은 편리해지고, 여행사와 항공사들은 부가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예요.”

누아가 처음부터 여행항공업계에 뛰어든 건 아니다. 서울대 수학과 출신인 서 대표는 컴퓨터 마니아로 자연스레 개발자의 길에 입문했다. 2000년대 후반 첫 직장은 싸이월드였다. 그 후 2012년 전자교과서 플랫폼 스타트업 누아를 창업했다. 너무 앞서갔던 것일까. 첫 아이템으로 야심 차게 시작했던 전자교과서는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피벗(pivot, 사업전환)이 절실했다.

2014년 중국인 방한객을 위한 지도앱 ‘워짜이날’(여기 어디?라는 뜻)은 그렇게 태어났다. 우연은 아니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혁신적 사고의 산물에 가깝다. 기자와 대화하던 그는 10여 년 전 조사했던 명동 거리의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어느 순간 외국인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한국어 간판보다 중국어, 일본어 간판들이 이렇게 가득 있는 거죠.” 

‘느낌’은 데이터가 증명했다. 당시는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가 10여 년간 계속되던 때다. 중국인 입국자는 5년간 연평균 30% 이상 증가했다. 중국에서 만든 한국 지도앱은 조악했다. 잘 만든 워짜이날은 광고 없이도 입소문을 타며 퍼져나갔다. 중국인 자유여행객 중 20% 정도는 워짜이날을 휴대폰에 이미 깔고 올 정도였다고.

그렇게 위기를 박차고 날아오르려던 누아에게 2016년 사드 악재가 닥쳤다. 한중 민간 교류가 위축되자 사업도 힘들어졌다. 이때 서 대표의 대응은? 주저앉지 않는 것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었다. “이 역경을 기회로 만들고 시장을 더 근본적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기술 트렌드를 고민했습니다. 그랬더니 1990년대 대세는 윈도우 기반 서비스, 2000년대는 월드 와이드 웹(WWW), 2010년대는 모바일이었고, 2016년 기준으로 2~3년 후에는 AI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2016년 ‘알파고 충격’이 있었지만 딥러닝, 머신러닝, 거대언어모델(LLM) 등 지금 기술시장을 휩쓴 개념은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새로운 것을 알고 싶으면 단행본보다 논문을 먼저 읽는다”는 서 대표가 나름대로 기술변화를 예측했는데 그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인공지능 R&D 챌린지’ 대회를 열었고 누아는 이 대회에서 3위를 수상하며 관심을 끌었다. 그 덕에 연구비를 확보했고 인재들도 영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로 격변에 있던 여행업에서 틈새 찾아

“누아가 본격적으로 항공 유통 솔루션 쪽으로 가게 된 건 코로나19가 터진 뒤예요. 여행업의 본질은 항공과 호텔 분야죠. 그 전엔 기존 밸류체인이 너무 강력해 끼어들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밸류체인이 망가진 상황에서 오히려 뭔가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누아는 패키지 여행상품의 가격구조를 살폈다. 이내 NDC를 활용하면 원가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봤다. 연구개발 끝에 2021년 IATA로부터 NDC 인증을 받았고 최근 솔루션을 출시했다. 그러자 여행업계는 물론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됐다. 금융권은 은행 앱에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는 ‘슈퍼앱’을 지향하는 추세다. 앱에서 클릭 몇 번으로 간편하게 항공권을 예약할 뿐 아니라 부가서비스도 접목할 수 있는 NDC 방식이 주목됐다. AI를 활용하면 맞춤 일정 추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서 대표가 생각하는 혁신은 뭘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남들이 못하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 기피하는 일을 할 때 혁신이 일어나더라”고 말했다. 그럴 때 우리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은 외국과 비교해도 꽤 경쟁력이 있다. 워짜이날의 경우 한국관광공사 등 정부의 지도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열어놓은 API를 활용해 저용량으로도 고품질 서비스를 구축했다. 

서 대표는 다만 새로운 기술로 승부하는 스타트업이 마음껏 도전해 볼 수 있는 사회문화적 여건이 성숙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미 승차공유, AI 법률서비스, 비대면 원격 진료 등 혁신기술이 뜨거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서 대표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점도 시장을 흔들기보다 상생하겠다는 의지다. “NDC를 갖고 시장을 바꾸겠다기보다 NDC도 시장의 한 요소라는 생각입니다. 기존 여행업계, GDS와 협업하면서 혁신을 이루고 싶어요.”

2012년 창업 후 14년 차 기업. 누아는 여러 위기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새 길을 개척해 왔다. 여행을 혁신하는 기술로 비상하려는 누아가 높이 날아오르기를 응원한다. 
 
글·김성휘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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