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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음세대 용감하고 다정한 놀이풍경뉴욕 센트럴파크엔 가장 독특한 ○○○가 있다
지정우 이유에스플러스건축 대표건축가 2025년 01월호
뉴욕을 대표하는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1876년에 완공된 센트럴파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장소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 그 이름만이라도 갖고자 ‘센트럴파크’ 단어를 붙인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그렇게 많을까.) 특히 거기에는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세상에서 유일한 형태의 독특한 놀이터(playground)들이 있다. 그 놀이터가 있었기에 그곳에서 성장한 뉴욕 시민이 자신들의 도시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960년대 조성되기 시작한 다양한 디자인의 놀이터,
그 중심에 선 리처드 다트너


원래 뉴욕 맨해튼은 평평하고 길쭉한 섬이다. 인디언들이 가로질러 다니며 사냥을 하던 섬이었지만, 이민자가 유입되고 여러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 문제가 심각해지자 인공 조경인 지금의 센트럴파크가 만들어지게 됐다. 센트럴파크와 밀도 높은 도시 구역이 만나는 경계에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동물원 같은 다양한 문화시설을 만들어 시민들을 공원으로 유도했고, 인근 주택가 어린이들이 쉽게 길 건너 찾아갈 수 있는 놀이터들도 이에 한몫했다. 

이러한 놀이터 조성의 중심에는 당시 20대 후반이던 건축가 리처드 다트너가 있었다. 당시 뉴욕도시국장이었던 로버트 모지스는 많은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면서 4S(Sandboxes, Slides, Swing sets, Seesaws)만 넣으면 놀이터는 끝이라는 모토 아래 표준화된 놀이터를 확산시켰는데, 다트너는 1964년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를 차리고 『Design for Play』라는 책을 쓰면서 다양한 놀이터 디자인을 뉴욕시에 적극 제안했고 총 6개의 놀이터를 센트럴파크 경계부에 만들게 됐다.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모래 놀이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어린이 놀이터는 20세기 양대 세계대전을 거치며 체력 단련의 장, 모험 놀이터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했다. 특히 조각가, 조경가, 건축가 등이 합류해 창의적인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리처드 다트너는 그 시기에 새로운 유형의 여러 놀이터를 설계하면서 어린이 공간에 대한 이론적 기반도 확고히 다져갔다고 했다. 그 덕에 뉴욕시로부터 학교 등 다른 어린이 공간, 나아가 공동주택 같은 생활공간 설계를 제안받으며 뉴욕시 발전 시기에 공공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건축가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통을 지속하며 놀이터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공정성을 이유로 공모나 입찰을 거쳐 설계와 시공이 따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에 따른 여러 문제를 사용자, 의뢰자, 설계자 모두가 지적하고 있다.

1966년 다트너가 설계한 센트럴파크 서쪽의 모험 놀이터(Adventure Playground)는 자연 재료를 그대로 사용했다. 당시 뉴욕에서는 유럽 대륙으로 자원과 물건을 수출하고 되돌아오는 배가 무게를 맞추기 위해 싣고 온 코블스톤을 이용해 주요 도로를 포장했다. 다트너는 그 돌을 놀이터에도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코블스톤뿐 아니라 콘크리트와 목재도 사용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놀이터에는 콘크리트나 석재를 쓰기 어렵다. 안전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업계 인식 부족 등에 따른 한계로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일색의 놀이터가 흔하다.

뉴욕의 상징적인 건축재료가 쓰인 이 놀이터는 고대 문명에서 영감을 받은 피라미드, 원추, 나선 등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패턴으로 구성돼 그 배경이 되는 센트럴파크 그리고 그 너머의 뉴욕 마천루와 함께 강력한 장소성을 형성한다. 단순한 형태의 공간에서 논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놀이를 어린이들 스스로 창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몸의 감각과 장소성의 기억이 어우러져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단단한 느낌을 어린이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심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센트럴파크의 자연 그리고 마천루와 어우러져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을 북돋는 놀이터


센트럴파크 남쪽에 위치한 헥셔 놀이터(Heckscher Playground)는 뉴욕 배경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바위 옆에 1972년 세워졌다. 1920년대부터 이미 놀이터가 있었던 이곳에 다트너는 앞에서 살펴본 모험 놀이터에 활용한 원추형 구조물을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쓰면서 그 사이사이를 다리로 연결했다. 이로써 더욱 입체적인 놀이가 가능해졌다. 

이곳 역시 코블스톤과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한다. 여기에 광택 없는 회색 철재가 더해져 전체적으로 무채색을 띠지만, 배경이 되는 센트럴파크의 찬란한 수목과 놀이터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마천루의 다양한 마감재, 무엇보다 그곳에서 노는 아이들의 알록달록한 옷과 그들 각각의 개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사회관계와 상호작용의 놀이를 만들고 있다. 

리처드 다트너는 장소의 특성에 맞는 고유한 놀이터를 설계하는 것 외에도 공장 생산을 통해 다양한 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 모듈형 놀이 구조물도 고안했다. 그중 하나가 1968년에 본격적으로 개발한 플레이큐브(Playcube)다. 우리나라 통일신라 시대의 주사위인 ‘주령구’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정삼각형 8개와 정사각형 6개로 이뤄진 14면체 형태에 각 면마다 원형의 구멍을 뚫어 내부가 통하게 만들었다. 보스턴 차이나타운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한 플레이큐브는 여러 개가 조합된 모듈에서 아이들이 오르내리고 서로 통과하며 다양하게 놀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장소나 여건에 상관없이 동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세계 여러 곳에 세워지게 됐다. 반면 아쉬운 점은 어디서나 놀이가 비슷해지기 쉽고 장소성이 생기기 어렵다는 것인데, 주변 풍경에 따라, 그리고 다른 놀이터 요소와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이 문제는 보완될 수도 있겠다. 최근에는 펀칭메탈을 재료로 써 더욱 강하면서도 가볍고 건조가 빠른 형태로까지 진화했다. 

리처드 다트너는 필자와의 인터뷰 말미에 필자를 비롯한 건축가들이 주도하는 한국 놀이터의 새로운 변화에 무척 흥미를 표현했고, 자신은 더 이상 놀이터를 디자인하지 않지만 그런 젊은 건축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동시에 이런 이야기도 전했다. “내 손녀들도 더 이상 바깥 놀이터에서 놀지 않아. 다들 아이패드에 코를 박고 있기 바쁘지.” 노건축가의 바람과 탄식 사이에 우리 도시의 다음세대 놀이풍경도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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