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계 최대 전자 IT 전시회로 꼽히는 ‘CES 2025’가 열린 베네시안 엑스포 내 유레카 파크에 국내외 스타트업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글로벌시장에 도전하려는 국내 초기 기업들도 줄지어 자리했다. 그중 한 구역에서 커다란 장갑을 낀 손을 움직이자 모니터 속 손의 위치가 변화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었다. 붉고 푸른 점을 붙인 장갑의 센서를 이리저리 설명하던 인물이 이정우 퀘스터 대표다.
청년 ‘과학도’에서
핸드트래킹 장갑으로 세계 무대 도전하는 ‘혁신가’로
이 대표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학부생이면서 다중센서 핸드트래킹 장갑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로 세계 무대에 섰다. 현장에서 만난 이 대표는 처음 CES에 참가한다는 설렘, 긴장과 함께 우리 기술이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섞인 표정이었다. 과학고 출신의 청년 ‘과학도’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로, 다시 세계 무대를 노크하는 ‘혁신가’로 발돋움한 이 대표를 이끈 것은 세 가지 ‘질문’이었다.
#첫 질문
이 대표는 창업 4년 차. 시작부터 핸드트래킹 장갑을 만든 것은 아니다. 처음엔 각종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과학실험을 더 안전하게, 더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실험 시뮬레이션 콘텐츠 개발사였다. 그 자신이 과학고 시절 실험을 마음껏 못 했던 게 큰 이유였다. ‘대면수업이 아니라도 실험수업을 실감나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질문이 창업의 불씨가 됐다.
“코로나19로 실험수업을 못 하게 되자 아쉬움이 컸어요. 창업 후 콘텐츠 경험에 실감을 부여하는 핸드트래킹 기술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렇게 퀘스터가 개발한 것이 ‘모티글로브(Motiglove)’. 손동작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센서 융합형 핸드트래킹 장갑이다. 이 대표는 “주로 가상세계와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하거나 로봇 혹은 다른 장치를 원격 제어하는 핸드트래킹 기술은 VR(가상현실)산업이 발달하고 원격 조작을 필요로 하는 산업군이 많아지면서 활발하게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술을 차별화하기 위해선 난제가 있었다.
#두 번째 질문
핸드트래킹은 장갑에 장착한 센서로 가상콘텐츠나 로봇을 원격 조작한다. 이 대표에 따르면 가상콘텐츠 조작은 크게 카메라를 이용한 비전(시각) 방식, 특수장갑을 쓰는 핸드트래킹 방식으로 나뉜다. 핸드트래킹은 다시 센서 종류에 따라 관성자이로 센서(IMU)와 동작인식 센서로 구분한다. 비전, IMU, 동작인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카메라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고, IMU는 자기장을 이용하는 만큼 전자기기에 접촉하면 신호가 교란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질문’을 거듭하다 카메라 영상(비전)과 핸드트래킹 센서를 결합한 기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른바 비스트(VIST) 기술이다. 명칭 그대로 비전(V) 센서와 IMU 관성 센서를 결합했다. 비전 영상을 통해 손의 위치 정보를 얻고, 관성 센서로는 손의 운동 정보 및 예측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는다. 두 센서가 상호 보완하면서 보다 정확한 동작 인식이 가능하다.
국내외 논문을 뒤지다 이 기술을 발견한 이 대표는 뛸 듯이 기뻤다. 그 길로 비스트 기술을 개발한 이동준 서울대 교수에게 요청했다. 이 기술을 사용하고 싶다고. 흔쾌히 받아들인 이 교수로부터 기술을 인수했고, 이 교수는 퀘스터의 기술고문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이 대표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세 번째 질문
2023년 8월, 이 대표는 삼성전자의 2024년 ‘C랩(C-Lab) 아웃사이드 대구’ 공모를 접했다. C랩은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으로 특히 비수도권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대구 스타트업을 찾고 있었다. 곧장 공모에 지원한 그의 세 번째 질문은 바로 삼성과의 협업을 위한 도전이었다.
“삼성과의 협업 기회를 간절히 원했던 저희 팀은 바로 지원을 결정했어요. 1차 서류 합격 소식을 듣고 현장 실사 형태의 대면평가를 거쳐 후보 기업으로 공식 추천됐죠. 그해 11월 마침내 삼성전자 수원 본사에서 최종 발표 평가를 했습니다.”
여러 부서의 임직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이 대표는 상당한 부담도 느꼈다. 심한 독감 탓에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퀘스터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아 2024년 1월 최종 합격했다. 이 인연은 CES 2025 참가로 이어졌다.
C랩을 거쳐간 스타트업 중 퀘스터를 포함해 12곳이 CES 2025 혁신상을 받았다. 이들 중 일부와 혁신상 수상기업은 아니지만 장래가 유망한 스타트업 등 총 15개사가 CES에 동반 진출했다.
기술 알리고 시장 니즈 파악하는 단계···
의료·로봇·방위 산업 등으로 확장성 커
“CES에서 많은 잠재 고객을 만났습니다. 국내외 대기업들도 우리 부스를 방문했고요. 사실 이번에 시연한 제품은 아직 개발 중인 프로토타입 단계예요. 이 기술을 알리고 시장의 니즈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다양한 산업 관계자들과 소통했고, 제품 개선을 위한 인사이트를 얻은 것 같아요.”
핸드트래킹은 가상의 직무 교육이나 모션캡처 게임 등 실감형 콘텐츠부터 의료, 로봇, 군사 방위산업 영역까지 활용할 수 있어 확장성이 크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퀘스터의 기술은 아직 ‘개발 중’이며, 더 많은 난관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다. 대학생이면서 경영과 기술개발을 병행하는 것부터가 간단치 않다. 글로벌 경쟁의 파도도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처럼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집요하게 질문해서 답을 구할 줄 아는 청년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것이란 믿음을 줄 만하지 않을까.
“매일 일과를 기록하고, 낭비된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줄일까 고민해요. 그날 목표를 이룰 때까지 여가시간도 미루는 편이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저만의 목표를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1월 10일, CES 2025 전시를 마치는 날 이 대표를 다시 만났다. 그는 여기서 접한 더 넓은 세상을 퀘스터가 장악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해외에서 우리 기술을 긍정적으로 봐주니 동기부여가 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시장 수요도 확인했어요. 나흘 내내 기술검증을 한 셈이에요. 귀국하면 팀원들과 새로운 개발 방향도 논의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