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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중혁의 AI와 미래순식간에 네 영혼을 쏘옥, 키오스크
김중혁 소설가·일러스트 에이프릴디셈버 2025년 02월호


  구영대와 신상도는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오고 있다. 일종의 프로젝트형 프리랜서라 불러야 할까. 각자 일을 하다 큰 건수가 생기면 연락해서 힘을 합친다. 각자의 전문 영역이 있다. 구영대는 프로그램 해킹과 드론, CCTV 전문가고, 신상도는 열쇠 전문가이자 귀신같이 빈집에 잠입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구영대는 신상도보다 나이가 많지만 늘 새로운 트렌드를 공부하는 도둑이고, 신상도는 젊은 나이에도 아날로그와 감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올드 스타일이다. 두 사람은 우연히 함께 일을 하다 서로에게 매료됐다. 상대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고, 함께 일을 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았다. 벌어들인 수익을 나누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 다 인생 역전 한 방을 꿈꾸지 않았다. 소소하게 먹고, 적당하게 살찌고, 욕심을 내지 않으며, 위험한 일은 맡지 않는다는 원칙대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원하는 걸 훔칠 때도 있지만 브로커 ‘셀레나’로부터 일을 의뢰받는 경우가 많았다. 셀레나는 일이 성공하면 전체 수익의 30퍼센트를 가져갔고, 실패하더라도 일정 금액의 돈을 두 사람에게 챙겨주었다. 기묘한 계산법이었다. 신상도는 처음엔 반대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30퍼센트나 가져간다고? 셀레나가 하는 일이 뭔데요? 에이, 영대 형, 나는 그렇게는 일 못 해요.”
  구영대는 신상도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야, 상도야,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봐. 우리 같은 전문가가 실패할 일이 없고, 실패한 적도 없지만, 실패했을 때도 돈을 준다잖아. 생각만으로도 좋지 않아?”
  신상도는 발끈했다.
  “형, 제가요, 실수는 해도 실패는 안 해요. 아시잖아요.”
  “실패한다는 상상도 해본 적 없어?”
  “상상이야 하죠. 실패의 경우도 염두에 둬야 대비를 할 수 있으니까.”
  “거봐, 실패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니까. 실패했는데도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막 가슴이 뿌듯하지 않아? 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실패에 좀 더 관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실패에 대한 보상이 없기 때문에 모험 정신과 개척 정신이 부족해지고…….”
  “형, 무슨 개소리야. 우리 같은 사람한테 개척 정신이 왜 필요해.”
  “이번에 셀레나가 맡긴 일이 뭔지 알아?”
  “새로운 일이 들어왔어요?”
  “재미난 일이 들어왔어.”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봐요.”
  “현대사회에서 인간을 가장 위협하는 기술이 뭐라고 생각해?”
  “로봇? 인공지능? 생화학 무기? 뭔데요, 빨리 얘기해 봐요.”
  “바로 키오스크야.”
  구영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말했다. 마치 키오스크가 모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키오스크? 커피 주문할 때 쓰는 그 키오스크?”
  “사람들이 키오스크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게 2025년이야. ‘이거 뭐야, 어쩌면 훨씬 빨리 키오스크가 세계를 지배할지도 모르겠네?’ 그런 걱정을 하다가 10년이 지났는데, 우리 주변에 키오스크 없는 곳이 있어? 없잖아. 키오스크 없이 할 수 있는 게 있어?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키오스크가 우릴 지배할 수가 있어요?”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네가 그 손가락으로 키오스크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키오스크는 순식간에 네 영혼을 쏘옥, 빼먹어 버릴 거야.”
  “형,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해요.”
  “실제로 무서우니까 그렇지. 너 지난달에 키오스크로 개인정보 유출된 거 뉴스에서 봤지? 요즘엔 그런 식으로 영혼을 빼먹는다니까.”
  구영대는 신상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신상도는 기계와 기술을 무서워했다. 사진에 찍히는 순간 영혼을 빼앗긴다고 믿었던 먼 옛날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사람처럼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믿었다. 신상도는 스마트폰보다는 물리적인 버튼이 달린 휴대전화를 선호했고, 클라우드 파일에 비밀을 정리하는 대신 종이 노트에 모든 걸 적었다. 구영대는 신상도를 교육하기 위해 노력했다. 드론 작동법과 기초적인 해킹 기술을 알려주려 했지만 신상도는 배우는 시늉만 하곤 곧바로 포기했다. 구영대는 가르치는 걸 포기하고 난 다음부터 신상도를 놀리는 재미로 살았다.
  “그럼 이번 일은 못 한다고 할까?”
  “무슨 일인데요?”
  “간단해. 가게 한 군데 들어가서 키오스크 안에 있는 정보를 빼내는 거야. 가게로 들어가는 건 네가 맡아서 하면 되는 거고, 나는 키오스크 담당이겠지. 해, 말아?”
  “나는 가게 문만 따면 되는 거네?”
  “그렇지.”
  “그거야 할 수 있죠.”
  “좋았어. 그럼 알프한테 최종 컨펌 받아볼까?”
  “그놈의 알프. 난 안 믿는다고 했잖아요.”
  구영대는 책상 옆에서 자신의 몸을 충전하고 있던 ‘알프(ALF)’를 깨웠다. 얼마 전에 큰돈을 들여 구입한 인공지능 예측봇이다. 구영대는 알프에게 주식 시세부터 스포츠 예상 점수, 교통 흐름, 날씨 변화까지 다양한 것을 물어본다. 알프가 예측한 걸로 주식 투자를 하거나 스포츠 베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재미 삼아서 모든 걸 알프에게 물어본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알프에게 ‘성공 확률’을 물어본다. 전체 계획을 입력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정보를 입력하면 알프는 친절하게 성공할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 알려준다. 성공 확률이 50퍼센트보다 낮은 일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아직까지 50퍼센트 미만의 성공 확률이 나온 적이 없다. 신상도는 알프를 좋아하지 않고, 알프가 하는 말도 절대 믿지 않는다.
  구영대는 신상도에게 목표물을 설명했다. ‘빅바이트버거(Big Bite Burger)’ 본점의 키오스크였다. ‘크게 한 입 베어 물면, BBB’라는 광고 카피를 유행시킨,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 가게였다. 빅바이트버거의 키오스크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거기에서 어떤 정보를 가져와야 하는지 구영대는 알지 못하지만, 어려울 게 별로 없는 일이라 셀레나에게 승낙 메시지를 보냈다.
  일주일 동안 신상도는 목표물 점검을 했다. 언제 문을 여는지,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은 언제이고, 문을 닫는 시간은 언제인지 확인했다. 신상도는 직접 매장에 가서 시설들을 확인했다.
  “햄버거 맛있던데요?”
  신상도가 디데이 이틀 전에 구영대에게 말했다.
  “크게 한 입 베어 물어보니까, 어때?”
  구영대가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이름 잘 지은 거 같더라고요. BBB, 마음에 들었어. 작전 계획 다 만들었는데 설명해 줘요?”
  “좋지, 나야.”
  “밤 11시부터 시작할 거예요. CCTV 라인이랑 야간 순찰 동선은 제가 다 확인했고요. 11시에 라인 끊고, 11시 10분에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제가 형한테 줄 수 있는 시간은 10분. 가능해요?”
  “키오스크로 주문한 다음에 주방에 들어가서 햄버거도 하나 만들어 먹고, 설거지도 하고, 감자튀김도 좀 먹고, 그다음에 키오스크 접속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시간이 좀 모자라겠네?”
  “형, 장난 치지 말고요.”
  “10분이면 충분하지. 5분 안에 끝내고 놀자.”
  “오케이, 그럼 11시 20분에 아웃할 거고요, 그 사이엔 순찰도 없어요.”
  “좋았어. 난 그동안 키오스크 관리자 권한 획득해 놓고, 키오스크 통신 패턴 분석해 놓을게.”
  구영대와 신상도가 BBB에 잠입하는 날, 작은 사고가 있었다. 도시 전체에 전산 네트워크 장애가 있었고, 그걸 수리하는 과정에서 구영대가 준비해 놓은 관리자 권한과 통신 패턴 분석이 소용없게 됐다. 구영대는 현장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신상도는 꺼림칙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구영대는 강행을 원했다. 알프가 성공 확률이 51퍼센트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밤 11시가 되어 신상도의 작업이 시작됐다. BBB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수월했다. CCTV 라인을 무력하게 만들고 경비 시스템의 신호선을 스카치 테이프와 알루미늄 호일로 감쌌다. 신상도는 오래된 방법을 좋아했다. 다행히 BBB의 경비 시스템은 최신식이 아니었다. 뒷문의 열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11시 10분이었다.
  “신상도, 정말 칼 같은 실력이네?”
  구영대가 놀리듯 말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요. 빨리 키오스크나 손봐주세요.”
  신상도는 키오스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케이, 금방 끝내줄게. 너 햄버거 뭐 먹을래? 여기서 골라봐.”
  구영대는 키오스크 화면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햄버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키오스크에서 대체 어떤 정보를 가져오라는 거예요?”
  “로그 파일 가져오라는 거 보면, 키오스크의 주문 내역 같은 거 아니겠어?”
  “아니, 대체 키오스크 주문 내역을 왜 가져오라는 건데요?”
  “우리가 언제 질문하고 도둑질했냐? 그냥 가져오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셀레나가 오더 준 거 맞아요?”
  “맞다니까. 이제 질문 좀 그만해.”
  구영대는 들고 간 소형 노트북의 케이블을 키오스크 후면에 결합시켰다. 키오스크 화면은 먹통이 되고 노트북으로 모든 권한이 넘어갔다.
  “오호라, 생각보다 재미있는 게 훨씬 많은 키오스크였구나. 이거 전부 쓸어 담으면 돈 좀 벌겠는데?”
  “뭐가 있는데요? 형, 괜히 욕심부리지 말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가요.”
  “여기에서 BBB의 메인 서버하고 연결되는구나. 이래서 셀레나가 여길 고른 거였어. 작은 문인 줄 알았는데, 금고로 가는 비밀문이었다고.”
  “로그 파일인지 뭔지 챙겼으면 빨리 나가요. 예감이 안 좋아요.”
  “잠깐만 기다려봐. 여기까지만…….”
  꺼져 있던 키오스크 화면이 갑자기 켜졌다. 햄버거 사진이 나타났다. 햄버거 사진 위로 ‘빅바이트버거’라는 이름이 표시됐다가 사라졌다. 햄버거가 커졌다. 햄버거 사진이 사람 입처럼 변했다. 빵은 두터운 입술 같았고, 축 늘어진 치즈는 혓바닥 같았다. 패티는 언뜻 보이는 목구멍 같았고, 토마토는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 같았다. 햄버거 위아래의 빵이 벌어지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녕. 구영대.”
  키오스크 화면에 햄버거가 하는 말이 표시됐다. 햄버거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몸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입만 둥둥 떠다니면서 문자로 말을 하고 있었다. 구영대와 신상대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직사각형 화면의 한가운데서 햄버거가 말을 하는 기이한 모습은 악몽의 풍경이었다.
  “형, 이거 뭐야. 키오스크가 말을 해. 형 이름을 알아요.”
  “이 자식 꺼지지도 않아. 뭐지? 내 컴퓨터 권한을 가져가 버렸어.”
  키오스크 화면 전체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특정 주파수로 깜빡이는 화면은 구영대와 신상도를 자극했다. 빨강, 파랑 화면이 빠른 속도로 반복됐다. 신상도는 곧바로 두통을 느꼈고, 속이 메스꺼웠다. 구영대는 컴퓨터로 키오스크를 제어해 보려고 했지만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다. 구영대 역시 구토가 치밀어 올라 눈을 감았지만 키오스크는 소리로도 두 사람을 공격했다. 기이한 음향 패턴이 실내에 가득 찼다. 구영대는 컴퓨터 선을 뽑으려다가 정신을 잃었다. 신상도는 바닥에 엎드려 눈과 귀를 막았다. 실내 스피커에서 느닷없이 BBB의 로고송이 흘러나왔다.

  크게 한 입 베어 물면, BBB.
  Take a Big Bite, BBB.

  로고송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신상도는 더 세게 귀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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