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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여울의 나란히 한 걸음강인하고 아름다운 도시, 화해와 재건의 상징
정여울 『데미안 프로젝트』, 『감수성 수업』 저자 2025년 02월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처참하게 붕괴된 도시이면서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완벽하게 복원된 도시는 바로 독일의 드레스덴이다. 드레스덴을 일컬어 사람들은 ‘엘베강의 피렌체’라고 부르지만, 막상 가보면 굳이 피렌체에 비교할 필요 없이 드레스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드레스덴은 여러모로 화해와 재건의 상징으로 거듭난 도시다. 드레스덴 폭격으로 도시가 심각하게 붕괴된 이후 시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오랜 복원 과정을 거쳐 재건됐다. 드레스덴 사람들은 무너진 건물의 조각난 벽돌 하나하나에 일일이 번호를 매겨 언젠가 그 아름다운 옛 건물들이 복원될 수 있기를 기원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드레스덴은 독일 통일 이전에는 동독의 역사적 중심이었는데, 통일 이후 이제는 베를린과 뮌헨에 이어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문화적·역사적 중심지로 거듭났다. 전쟁 당시 폭격으로 독일의 대도시가 대부분 옛 모습을 잃어버린 것에 비해 드레스덴은 과거 문화적 전성기 때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복원하는 데 성공한 매우 희귀한 도시다. 통일된 독일의 문화적·역사적 중심이자 독일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중 하나로 매번 최고 순위에 뽑히는 곳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복원된
작센 지역의 역사·문화 중심지


드레스덴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방문하면 드레스덴의 온갖 상점들이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반짝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마침 내가 드레스덴에 갔을 때는 막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작되는 시즌이었다. 드레스덴 사람들은 마치 각양각색의 크리스마스 전구들과 사랑에 빠진 것만 같았다. 낮부터 수줍게 반짝이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전구들은 밤이 되자 총천연색으로 빛나며 도시의 어둠을 몰아내었다. 
 

나는 드레스덴의 예스러움이 좋다. 오래된 돌들이 깔린 골목길의 고즈넉함, 프라우엔교회와 젬퍼 오페라하우스 같은 고풍스러운 건축물의 웅장한 아름다움, 건물 곳곳에 검게 그을린 것 같은 벽돌들이 품고 있는 역사의 흔적이 좋다. 군밤장수 아저씨의 푸근한 미소, 오색찬란한 양초와 옛 조명 장식을 파는 사람들, 독일식 소시지와 핫도그를 파는 사람들, 글뤼바인(와인을 각종 과일과 허브에 곁들여 끓인 겨울 음료)을 파는 상인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만찬을 먹는 것처럼 핫도그와 맥주 한 잔을 들고 추위에 떨며 서 있는 사람들까지도 금세 친구가 되는 것만 같다.
 

 
드레스덴은 작센 지방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중심지이기도 한데, 특히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그림이 있는 드레스덴 국립미술관이 유명하다. 드레스덴 국립미술관에는 내가 페르메이르의 그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누군가의 글을 아주 오랫동안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려온 한 여인의 설렘이 이토록 아름답게 형상화된 그림이라니.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설렘이란 이런 것, 기다림이란 이런 것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글쓰기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볼을 저 그림 속 인물의 볼처럼 발그레하게 물들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 설렌다. 여인의 드레스는 외출이나 파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실내 생활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늘 집에만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어떤 설렘과 기다림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은 볼 때마다 새로운 상상력과 싱그러운 이야기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세상의 온갖 따스함을 담아내는 도시

드레스덴은 일조량이 부족한 독일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에서도 생생한 활기가 넘치는 도시다. 겨울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음악회와 전시회가 열리고,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겨울밤의 고독을 달래준다. 깊어가는 저녁, 나는 거리의 바이올린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며 노을 지는 엘베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겨울 여행의 묘미는 ‘차가움 속의 뜨거움’ 그리고 ‘잿빛 속의 화려함’을 찾아내는 것이다. 겨울 날씨는 당연히 춥지만 그 속에서 따스함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몸짓은 더욱 아름답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사람들,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트리 주위로 모여드는 사람들, 엄마 아빠의 품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려는 아이들, 연인의 팔짱을 낀 채 한겨울의 추위를 잊는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차가움 속의 뜨거움을 찾는 사람들을 만난다.
 

잿빛 속의 화려함은 다채로운 색채를 향한 인간의 본능에서 나온다. 잿빛으로 흐려진 하늘에 지친 나는 끝없이 따스한 빛들을 찾아다녔다. 가로등의 불빛, 간판의 불빛,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 알록달록한 우산들의 색채마저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겨울 여행 속에서 나는 드레스덴의 빛, 화해와 재건과 용서의 빛을 찾고 있었다. 겨울은 단지 봄을 기다리는 과정에 그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추위를 견디며 몇 달 동안 비바람과 폭설을 견뎌내는 나목(裸木)을 바라보며 나는 겨울을 이겨내는 자연의 강인함을, 그리고 겨울 그 자체와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드레스덴이라는 도시 자체가 겨울을 견뎌낸 나목처럼 강인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 겨울의 한가운데서 세상의 온갖 따스함을 담아내는 드레스덴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우리들의 찬란한 봄을 기다린다.  
 
글·정여울 『데미안 프로젝트』, 『감수성 수업』 저자
사진·이승원 『공방예찬』, 『학교의 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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