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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평트럼프 정부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송준혁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 2025년 03월호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준비해 오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CBDC에 줄곧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트럼프의 취임으로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서 CBDC의 유용성과 활용 가치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CBDC는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를 의미한다. 디지털 기술 측면에서는 비트코인과 유사할 수 있으나, 거래의 최종 결제 수단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지급 수단이나 투자 자산으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여타 코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대 경제에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 통화는 결제 수단으로, 민간이 발행하는 예금 화폐는 지급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며 경제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능을 분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본원 통화는 화폐의 신뢰성을 보장하고 예금 화폐는 금융 거래의 편의를 제공하면서 신뢰성 있는 화폐를 필요한 만큼 경제에 공급하는, 민관 협력적 화폐 금융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거래의 편의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뱅크런이, 화폐제도의 신뢰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유동성 위기가 초래되기도 하므로 본원 통화와 예금 화폐 간 분업과 협력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현대 금융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다. 이러한 분업 구조는 디지털경제에서도 이어져 본원 통화는 CBDC로, 예금 화폐는 예금 토큰이라는 디지털 형태로 변할 것이다. 

트럼프는 CBDC 도입이 개인의 자유로운 금융 거래를 정부 감시 아래 두는 통제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이에 반해 트럼프는 비트코인 등 가상 자산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향후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전략 준비 자산에 비트코인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트럼프의 반CBDC 입장은 엄밀하게는 CBDC가 추구하는 가치나 목적보다는 연준이 주도하는 CBDC를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트럼프가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 그리고 CBDC에서도 도매 금융과 소매 금융에 대해 각각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퍼블릭 블록체인의 분리를 통해 금융 프라이버시 보장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견해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남북전쟁 기간 중인 1863년 「국법은행법」을 제정하고, 국법은행이 은행권을 발행할 자격을 얻는 조건으로 국채 보유를 의무화한 바 있다. 이 법은 당시 링컨 대통령이 주법은행을 국법은행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국채를 인수하게 해 남북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됐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연동해 가치를 유지하는 디지털 자산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 증가는 이자를 지급하는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어쩌면 트럼프 행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이 마치 과거의 국법은행처럼 기능하게 하고 장기 달러인 미국 국채를 결제 수단처럼 사용하면서 연준 주도의 통화정책과는 다른 정책 채널을 구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최대 수출품이 달러라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의 관점에서 달러 패권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다른 경쟁 국가보다 뒤처져 있는 디지털 법정통화를 서둘러 도입하기보다는 디지털 달러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글로벌 규칙이나 제도를 정비한 후까지 발행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 정부가 반대하는 암호화폐 정책이 디지털 달러인지 연준 주도의 CBDC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응해 우리의 CBDC 추진 방향을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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