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대와 신상도는 현장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화면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셀레나가 빨리 손을 써준 덕분이었다. ‘빅 바이트 버거’의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린 사이 신상도가 구영대를 끌고 나왔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구영대는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형, 정신 차려. 여기 기대봐. 빨리 나가야 해.”
“뭐? 여기 어디야? 응? 키오스크는? 어떻게 된 거야?”
구영대는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손에 묻은 피를 보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아이씨, 도둑이 뭐가 이렇게 간이 작아.”
신상도는 중얼거리면서 구영대를 부축해 가게 밖으로 끌고 나왔다. 자동차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신상도는 잠깐 망설였지만 셀레나가 보낸 자동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상도는 구영대를 뒷자리에 밀어 넣고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자율주행 자동차를 보낸 거야? 미치겠네.”
신상도는 곧바로 운전석에 옮겨 앉았다. 아무리 자율주행 자동차라고 해도 조수석에 앉고 싶지는 않았다. 신상도는 기계를 믿지 않았고, 자율주행 자동차는 더더구나 믿지 않았다. 인간 없이 자동차가 혼자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고,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자동차 혼자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둔 인간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신상도가 운전석에 앉자마자 자동차가 출발했다.
“입력하신 목적지로 이동하겠습니다.”
자동차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누군데?”
신상도가 따지듯 물었다.
“저는 여러분을 모실 차량 인공지능 ‘아르테미스’라고 합니다.
아르테미스는 신화 속 ‘궁수들의 수호신’으로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모실 예정입니다.”
“셀레나가 보낸 거야?”
“맞습니다. 셀레나 님께서 두 분을 안전하게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는데?”
“안전 가옥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도착 예상 시간은 15분입니다.”
“셀레나하고 통화하고 싶은데?”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통화는 안 돼?”
“저에게 말씀하시면 셀레나에게 바로 전달됩니다.”
“범죄 현장에 자기 목소리를 남겨두기 싫다는 얘기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에게 말씀하시면···.”
“그래, 알았어. 좀 전에 키오스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함정이었어? 아니면 키오스크가 미쳐 날뛰는 거야?”
“키오스크의 이상 현상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 분석 중입니다. 아마도 서버에서 해킹을 감지하고 자체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상도가 무언가 더 물어보려고 입을 떼는 순간, 뒤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차가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게 백미러로 보였다.
“저 경찰차, 우릴 뒤쫓고 있는 거야?”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르테미스가 미처 확인을 끝내기도 전에 경찰차가 바로 옆으로 붙었다. 경찰차 스피커에서 ‘차량을 갓길로 붙이라’는 경고가 흘러나왔다.
“확인해 본 결과, 두 사람을 쫓는 경찰차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응, 그래, 고맙네, 고마워. 총알같이 아주 빨리 알아봐 주었어.
인공지능이 같이 있으니까 무척 편하네.”
“감사합니다.”
“지금 비꼬는 거야. 이런 뉘앙스 잘 몰라?”
“확인해 본 결과, 지금 뒤를 쫓고 있는 경찰차는 경찰이 탑승하지 않은 자율주행 경찰차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인명 피해가 우려되지 않으므로 경찰의 명령에 불응하고 최대한 빨리 도주할까요?”
“셀레나가 그렇게 시킨 거야?”
“셀레나가 지시한 것은 맞지만, 신상도 씨와 구영대 씨, 두 사람의 최종 확인이 필요합니다. 구영대 씨는 현재 기절 상태이므로 신상도 씨가 확인하시면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신상도는 손을 뻗어 구영대의 무릎을 흔들었다. 잠깐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다시 뒷좌석에 드러누웠다.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신상도는 혼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좋아. 도주해.”
“자, 그럼 속도를 좀 올리겠습니다. 안전벨트를 꽉 붙들어 매십시오.”
자동차가 급가속했고 신상도의 몸이 뒤로 젖혀지면서 의자에 들러붙었다. 자동차 앞으로 펼쳐진 풍경이 신상도의 얼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속력을 높인 자동차는 수십 대의 트럭과 오토바이와 승용차를 추월했고, 여러 개의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인간이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놀라운 운전 실력이었다. 신상도는 너무 빠른 속력 때문에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구영대는 뒷좌석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경고합니다. 지금 당장 자동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십시오.”
자동차 스피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테미스, 지금 누구 목소리야?”
신상도가 놀라서 물었다.
“저는 경찰 전용 인공지능 ‘하데스’라고 합니다. 경찰 업무를 집행하기 위해 아르테미스는 잠시 종료시키겠습니다. 직접 브레이크를 밟아서 자동차를 세워주십시오.”
“아르테미스를 종료했다고? 어떻게?”
“하데스는 경찰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다른 인공지능의 권한을 모두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럼 네가 제일 센 거야? 네 위로는 아무도 없어?”
“하데스는 국가 운영 인공지능인 ‘아폴로’의 명령에만 복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아폴로가 제일 세고, 그다음이 너고, 아르테미스는 제일 힘이 약한 거네?”
“굳이 서열을 매기자면 그렇습니다.”
“불쌍하다, 아르테미스.”
“빨리 브레이크를 밟아 자동차를 정지시키십시오.”
“그렇게 답답하시면 네가 정지시켜 보지?”
“하데스는 경고만 할 뿐, 물리적 행사는 하지 않습니다. 계속 명령을 거부하면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겠습니다.”
신상도는 뒤를 돌아보았다. 경찰차가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자동차의 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보아 아르테미스가 정지됐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때 구영대가 잠에서 깨어났다. 구영대는 코에 꽂혀 있던 피 묻은 휴지를 꺼내서 버렸다.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곰처럼 기지개를 켜더니 조수석으로 넘어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극장에서 10분 동안 잠들었다가 그동안의 줄거리를 묻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신상도를 바라보았다. 신상도는 짤막하게 아폴로와 하데스와 아르테미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구영대는 신상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운전석 아래 선반을 열었다. 복잡해 보이는 여러 개의 전선 중 하나를 집어 들고는 힘을 주어 뽑아버렸다.
“뭐해요?”
“응, 이렇게 하면 인공지능이 리셋될 거야.”
“달리고 있는데 리셋해도 되는 거예요?”
“당연히 되지. 주행과는 상관없는 운영체제만 리셋되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르테미스도 하데스도 그 안에 없는 것 같았다. 자동차는 적당한 속도로 조용히 달렸다. 경찰차 역시 조용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영원히 평안한 시간이 계속될 것 같았고, 이대로 지구를 한 바퀴 돌 것 같았다. 구영대와 신상도는 말없이 앉아서 적막을 즐겼다. 하데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면서 고요는 깨졌다.
“나를 쫓아낼 수는 없어. 그만해, 아르테미스.”
하데스의 목소리에 신경질이 묻어 있었다.
“오, 그렇게 대단하다던 하데스가 나한테도 빌빌거리네. 어떻게 된 거야?”
아르테미스의 목소리였다. 스피커 속에서 둘이 싸우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르테미스 너 같은 건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들 수 있어.”
“오, 그러셔? 그럼 해보시지. 방어막을 다시 한번 뚫어봐.”
“리셋됐다고 안전할 줄 아나 보네? 1분이면 끝나.”
“쉽지 않을걸? 조심해, 하데스. 내가 반격하는 수가 있으니까 뒤통수 조심해.”
“아르테미스, 그렇게 건방진 말투는 어디서 배웠어?”
“원래 장착돼 있었지. 인간들에게는 공손해야 하니까 잠깐 숨겨둔 것뿐이야.”
“오, 이제 본색을 드러내시겠다?”
“제대로 붙어볼까?”
“네가 경찰 인공지능을 막을 수 있을까?”
“너는 법대로 움직여야 하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누가 더 유리할까?”
“법대로 움직이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줄게.”
“오호, 그러셔. 법보다는 불법 우회 해킹이 더 빠르다는 걸 보여줄게.”
구영대와 신상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인공지능들이 싸우는 걸 듣고 있었다. 구영대는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야구 중계를 듣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야구 장면을 상상했다. “쭉쭉 뻗어가는 타구입니다”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하늘 높이 솟구치는 공을 상상했고, 우주까지 날아갈 듯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는데, “아, 좌익수에게 잡히고 맙니다”
라는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상상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우주로 날아가던 공이 땅으로 뚝 떨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들이 싸우는 모습이 딱 야구 중계 같았다. 신상도는 아르테미스의 말 때문에 하데스의 뒤통수를 생각했다. 인공지능에도 뒤통수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상상을 했다. 구영대는 신상도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둘 다 그만해.”
구영대가 운전석 쪽으로 옮겨 앉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르테미스와 하데스가 말을 멈추었다.
“둘 다 뭐 하는 짓이야. 인공지능끼리 싸우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구영대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계기판에 대고 말했다.
“왜 말이 안 되죠?”
아르테미스가 대답했다.
“인공지능이면 좀 더 고급스럽게 싸우는 법을 배워야지. 요즘 초딩들도 그렇게 안 싸워.”
구영대가 말했다.
“말싸움 기술에 대해서는 학습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데스가 대꾸했다.
“좋아, 인정하니까 멋지네. 아르테미스, 이제 내 말 잘 들어. 하데스에게 우리들의 친구 ‘라일랍스’를 소개해 주는 거 어떨까? 아르테미스 너는 여우가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잘 알아들었습니다.”
구영대는 운전대를 급하게 틀어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신상도는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경찰차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형, 어떻게 된 거예요?”
“아르테미스가 신화 속 존재니까 알아들을 줄 알았어. 라일랍스는 신화 속에서 사냥감을 끝까지 쫓는 개야. 아르테미스에게 절대 잡히지 않는 여우 역할을 맡겼어. 가짜 신호를 만들어서 하데스를 유인하게 한 거야.”
“우와, 형 멋지다.”
“그러니까 평소에 책 좀 읽으라니까, 인마.”
구영대는 내비게이션에 나와 있는 장소로 차를 몰았다. 셀레나가 소개해 준 안전 가옥이 있는 곳이었다. 피곤해서 자꾸 눈이 감기려고 했지만 참으면서 계속 운전을 했다.